잠이 오지 않는 밤.

요즘, 뭔가 머릿속이 복잡한 듯 하면서도 간결하기도 하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은데, 이 또한 나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제는 학교에 가니 다시 학생비자로 돌리려면 무려 4개월을 기다려야 한단다. 4개월을 한국에 있으라는 말인가, 학교는 어떻게 다니지, 쉬울 것만 같던 취업도 물건너 간 얘기같더라. 비자라는 것이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주변에서 이때문에 시달리는 얘기는 꽤나 많이 들었지만 이정도로 스트레스 일 줄이야. 정말 한치 앞을 모르는게 미국 생활이라는 것을 다시금 직감하게 만들었다.

또 다시 술을 들고 싶었다. 술과 함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새벽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었다. 침대에 누우면 온갖 잡다한 생각 때문에 아무리 졸려도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시 일어났다. 술을 먹으면 잠이 올까, 그러면 또 내일 늦게 일어나겠지. 왜 또 그런 악순환 속에 나를 가둬야 할까, 아 그래도 잠은 자고싶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침대에 눕는다. 왜 그리도 삶이 불안할까, 아무 생각도 안하고 정말 조용히 공부하고, 개발할 수는 정말로 없는 것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좋은 와이프와 좋은 인도 친구들 덕분에 금방 위로가 되었다.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현실에만 안주했다. 잠이 안오는 오늘 밤, 내내 강의를 보며 끝냈다. 그간 머릿속으로만 ‘해야지’ 하던 것들을 하나 둘 했다. 뉴스도 보고, 미드도 한편 봤다. 대두랑 얘기하면서, 너무 불확실한 삶 속에 잠도 안오고 스트레스만 쌓여간다고 푸념했다. 애도 아닌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너무 힘들다고. 대두는 말한다. 사람 사는게 자기만 잘된다고 되는게 아니다. 보통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지.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진 않으니, 후딱 털어버리고 차선책으로 달려야한다고.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모두 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지껏 얼마나 많은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해서 벼랑끝까지 갔다 왔는지 모른다. 내 전공과 무관하게 정보올림피아드라는 것을 선택해서 무려 4년동안 잡고 포기했고, 특성화고로 분류되는 고등학교를 두려움 없이 선택하고, 도전했다. 고2까지는 공부도 안하고 공모전과 대회를 나갔지만 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다 고3 막바지에 정말 딱 1년만 미친듯 하자고 생각하고, 공부를 해서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던 내 수능 등급을 두세배로 올리고, 대학 진학을 일궈내긴 했다.

그때도 참으로 마음을 졸였다. 내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됬건 대학에 왔고, 와서도 성적은 바닥을 쳤다. 사업한다고, 친구들 모아서 이리저리 사람들 도움 받아 회사를 차렸다. 3년간 했는데, 정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쫄닥 망했다. 포기했다. 다시는 사업을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사업을 망하고 보니 스물셋, 군대를 해결해야 했다. 아버지와 약속한 시간은 3개월 남짓, 군대를 너무 가기 싫어서, 10월부터인가 병특 가려고 이리저리 공부하고, 1월부터 이리저리 입사지원을 했다. 큰 회사들은 사실 연락도 안왔다. 현역 병특은 TO도 적을 뿐더러, 대부분 뭐 이리저리 빽으로 차고 있었겠지.. 2월까지 결과가 안나오면 군대를 가야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2월말에 작은 회사지만 합격했다. 물론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어쨌든 그 빡세던 회사에서 1년 반을 버텼다.

1년 반동안 나를 군인 취급하며 괴롭히던 사장, 과장, 대리 모두 버티고, 5개에서 10개, 20개로 늘어난 유지보수 프로젝트를 버텼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너무 힘들게 되서 회사 몰래 전직을 알아보고, 합격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날 그냥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비동의전직 처리를 했다. 옮기기 전 회사가 거절하면 자칫 법적 소송까지 갈 수 있는 상황. 게다가 처리 도중에 합격한 회사에서 입사를 취소하면 정말 붕 떠버리는 상황. 2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잘 되었지만, 아마 이때의 상황이 지금과 가장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회사를 옮기고, 편하게 다니다가 또 한번 공모전 때문에 몇일 밤을 지새우고, 다이어트 한다고 또 몇개월 열심히 운동했다. 회사가 편하니, 일할 맛도 나고 아마 이때가 내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생겼던 때가 아니었을까. 유라임 아이디어도 이때 생각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병특 끝나고, 학교 다니면서는 크게 이렇다 할 이슈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2년 다니다 대학원에 뜻이 생겨서 (사실은 취업이 목적이었지만) 정말 못하는 영어 실력으로 토플 GRE공부하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경력등으로 밀어붙이려고 이리저리 발버둥 쳐봤다. 2014년 12월 학부 정규과정 끝내고 지금 대학원 합격까지 무려 5개월을 하루하루 마음을 조마조마 하며 보냈다. 매일같이 Reject메일을 받는 데에도 지치고, 교수님들께 추천서 부탁드리는것도 지치고, 시험 성적 올려야 하는데 이 또한 마음이 잡히지도 않고, 뭔가를 하긴 해야하는데 것또한 잡히지도 않고, 술만 먹고 그렇게 보냈다. 그나마 결혼준비 한답시고 뭔가 하긴 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대학원에 붙긴 붙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하고싶던 것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유라임 만들기였다. 근데 그놈의 법인 만들기부터 해서 걸리는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여기 일처리에 비하면 한국은 양반인듯.. 2015년 말에 또한번 비자등등 때문에 조마조마해서 한두달을 보내고, 결론적으로는 잘 처리되서 2016년 중반부터는 또 맘편히 보내고, 유라임도 어느정도 만들었는데 또 올해는 올해 초부터 비자부터 해서 엄청나게 걸린다. 자칫 미국에 있는 우리 가정까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지금의 상황이다. 대학교, 병특과 전직, 대학원 그리고 비자까지. 아마 20대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 이 순간들을 기억하기로는, 어차피 술 따위가 해결해 주지 못한다. 글쎄,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경험담, 혹은 차선책 등이 생겨서 다른 방편으로 대비를 할 수는 있겠지만 술이나 나태 등이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삶이란게 그런 것 같다. 어차피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나도 아마 그랬다면 대학도 복학 안하고 옮겼던 병특 회사를 계속 다녔겠지. 하지만 나도 뜻이 있지 않은가, 한국보다 더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의 직장에서 내 아이디어를 맘껏 개발하고 싶은 생각. 물론 돈버는 것에도 목적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사업성공과 개발자로써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 생각,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 결국, 모든 고비들이라는 것이 내 능력 이상으로 무언가를 얻고자 할때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나한테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수 많은 변수가 있고, 최선책이 안되면 차선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니 나는 그것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 상황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나다.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고, 나만이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결국, 불면증이나 머릿속에 수 많은 생각들, 술, 게임, 미드 등 이런 것들은 배부른 생각, 그리고 사치일 분이다.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에 나는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새벽기상을 잘 못하고 있다. 걱정도, 근심도 많아서 그런가, 아침에 운동도 못하고. 이 생활이 꽤 지났다. 하지만 나는 분명,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그리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그 속에서 나의 시간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다. 내가 가고싶은 길을 끝까지 간다. 되던 안되던, 간절한 바램은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긍정의 힘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미국에 갈 수 없었는데 그저 긍정의 힘 하나만 믿고 이곳에 오도록 노력했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래, 모든 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 좌절하지도, 주저앉지도 말자. 하나 하나씩 차근차근 정복해 나가면 언젠가는 내 길을 이루리라.

그런 생각을 해보는, 여섯시간동안 잠을 못자는 오늘이었다. 내일부터는 분명,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간절히 바래 본다.

30대, 나의 발걸음.

2016년 1월
1/4 한국 방문, 끌로이 생일과 함께 본가와 처가에서 맛있게 식사를 함. V를 변경하려 했으나 L의 늦장 대응으로 실패. 제주도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와 일주일 정도 즐거운 시간, 일을 도와드림. 교수님,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정작 부모님과 오래 보내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던 순간들.
2016년 2월
V진행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늦어짐. 2월 초 개강, 재수강 하나 포함, 3과목 듣기 시작. 2/11 첫 차 구입, 면허취득 한번 실패, 운동을 나름 꾸준히함. 하지만 개발이 잘 되지 않음. 2/22에 LA에 5일간 여행, 첫 차를 인수받음과 동시에 길들이기 형식으로 LA까지 운전해서 처음 가봄. 헐리우드, 비버리힐즈, 유니버셜스튜디오, 코리안타운, 산타바바라, 산타모니카, 더 게티센터, 그리피스 천문대 등에 다녀옴. 허나 12월에 만들었던 BOA계좌가 갑자기 Risk Department에서 close해버림 엄청나게 당황하였고, 미국의 이런 시스템에 대해 화가 많이남. 산호세에 다시 돌아오고 금방 Wells Fargo에 한국분의 도움으로 계좌를 만듬. 그리고 미국에서 어떤 로드맵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함. 한국 아저씨한테 $200의 사기받으며 캘리면허증 취득.
2016년 3월
208프로젝트때문에 팀플 계속, 새벽기상과 운동을 다시 꾸준히 함. 하지만 밤만 되면 생각나는 술에 대해 잘 조절하지 못함. 영어공부 계획을 열심히 세웠지만 학교 과제 등이 바뻐서 뜻대로 잘 되지 않음. 학교와 회사를 번갈아가면서 힘들지만 잘 다님. 뉴욕타임즈와 WSJ 구독 시작, 첫 중간고사도 시작. 발목을 잡던 V문제도 생일 즈음 해서 풀림. 정말 V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던 3월 한달이라고 생각됨. 생일에 여러 주변에서 사귄 분들을 초대해다가 작은 파티를 열고, 끌로이의 첫 생일상을 맛있게 먹음. 3/27에 V때문에 잠시 한국에 방문, 인터뷰가 제대로 안되서 출국 전날까지도 힘들어했음. 부모님의 스웨덴 여행으로 빈 집을 보게 됨. 오랜만에 딸기제니와의 즐거운 시간들.
2016년 4월
1일 인터뷰후 극적으로 통과하고, 5일날 다시 귀국. 소셜. 한국에서 힘들었는지 사실 잘 자기관리가 되지 않았음. 덕분에 중간고사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생각해보니 이번에도 재수강 과목을 통과 못하면 졸업이 늦춰진다는 것을 이제야 인식함. 나도, 끌로이도 지쳐있던 4월, 4월 말에 잠깐 기분전환을 하고자 무리해서 타호를 감. 산호세의 20도를 넘는 기온에 비해, 눈이 오는 타호에 신기해함. 맑은 호수와, 인심, 맛난 음식 등을 먹으며 재 충전 하고 5월을 시작하기로 함. 끌로이의 면허 취득, 그리고 끌로이의 첫 홀로 운전, 끌로이 차 구입을 위해 몇 군데 돌아다님.
2016년 5월
5월 초 끌로이 첫 차 구매, 208 조모임 막바지로 바쁘게 보냄. 정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음. 5월말에 기말고사로 벼락치기 시도, 5/22 첫 결혼기념일과 즐거운 브런치. 요리를 많이 했던 한달, 마운틴뷰 파머스 마켓, 산호세 로즈가든. 5/26에 끝나고 포틀랜드와 시애틀 여행을 다녀오기로 함. 전날 하루종일 자고 다음날 밤샘 운전을 하기로 시도, 수요일 끌로이 UCBX가 끝나는 동시에, JW형 가족 뵙고 출발. 힘들긴 했지만 꽤나 재밌었던 야간운전, 3시간씩 총 네 번을 운전. 중간에 여권도 잃어버리고 아이패드도 잃어버려서 매우 멘붕이었지만 괜찮았음. Eugene, Eureka, Portland, Seattle을 다녀옴. 포틀랜드의 그 hippy한 문화와 no tax, 수 많은 Brewery는 잊을 수 없을듯.. 돌아오는 길에 캠핑 장비를 처음으로 구매. 여행 전 한국 교수님과 대화하며 빨리 paper를 쓰라는 말씀을 들음. 월말에 성적 나와 확인해보니 재수강이 또 실패. 최악의 성적.
2016년 6월
6월 시작하자마자 교수님 추천으로 Nexenta라는 SDS회사의 특강을 받음. SDN쪽으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함. 200 계절학기 시작, 하지만 교수와 뭔가가 꼬여서, 일전에 재수강 과목을 통과하지 못해서 거의 못들을 뻔 했으나 Dean의 허락을 받아서 겨우 들음. 첫주에 처음으로 요세미티 캠핑을 다녀왔고, 너무 좋았음. 다만 모기는.. 미국 살며 그간 든 돈이 엄청나다는 생각에 스스로 다시 마음을 추스림. 6월 마지막주 즈음에 술로 인한 큰 사건이 터짐. 거의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뻔했으나 어쨌든 집에 옴. 그 뒤로 술에 대해 엄청나게 조심을 하게 됨. 6월 말에 Pinnacles에 두번째 캠핑을 다녀오고, 빅서도 잠시 다녀오고, 몬트레이도 보고, 별도 실컷 보고 좋은 공기 마시며 하이킹도 하고 좋은 시간 보냄.  간단히 써본 스타트업의 아키텍처에 대한 브런치 글이 호응이 좋아서 계속 써보기로 함.
2016년 7월
계절학기 계속. 월초에 발목 부상, 손님들이로 요리도 함. 7월 초, LA다시 방문. 얼마 있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곱창도 먹고, 대학 동기도 보고 좋은 시간. ReactJS공부를 하기로 함. 주말마다 나파에 방문. Lake Chabot 방문. “반찬”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됨. 월 말쯤에 아버지의 입원, 그리고 조금 더 정신 차려서 유라임 개발에 박찰을 가하게 됨. 미국 생활의 전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고, 고찰해봄.
2016년 8월
ReactJS공부 포기. 유라임 개발을 계속하게 됨. 방학이고 해서 정말 열심히 했음. 계절학기 기말고사, B+로 나쁘지 않게 마무리.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Sunset SB 에 세번째 캠핑 다녀옴, 산타크루즈 비치에도 가고, 튜브도 사고 수영도 조금 함. 월말에 처음으로 이리저리 친구들과 나파 피크닉 다녀옴. 날씨가 슬슬 추워짐. 10년만에 골프 레슨을 시작함. 오랜만에 다시 한국 교수님 만남. 대학원 3학기 개강, 총 네 과목을 수강(삼수강 포함), 게다가 DeAnza의 ESL도 시작. 특히 Writing수업이 인상깊었음. 8월 말, 드디어 유라임 프로토타입 완성.
2016년 9월
처음으로 다른 커플과 San Simeon이라는 곳에 캠핑을 다녀옴. 빅서와 해안도로의 그 위험함..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 수업 계속, 소살리토 아트 페스티발 참가. 계절학기때 공부를 좀 좋아하게 되어서 공부에 대한 감을 살짝 잡음. 처음으로 학교에서 한국 분을 만남. 중간고사. 월 말에  감기에 살짝 걸림. 개발을 조금밖에 못함.
2016년 10월
엄청나게 바쁜 일정들, 생각보다 더 바뻤음. 그래도 오페라도 다녀오고 함.. Writing클래스에서 레쥬메를 교정하며 인턴에 대한 생각. YC를 처음 넣어 봤으나 탈락. 몸무게가 100을 넘어섬.. KGroup에 처음 참가해보고 (실망) 10월 중순에, 잠깐의 휴식을 위해 타호에 다녀왔음. 강풍에 비때문에 숙소에만 있었지만 즐거웠음. 좀 정신없는 생활 때문에 중간에 PS4를 구매, 끌로이랑 자주 레고를 함. 처음으로 P&P의 피치에 초대받음. Filori정원에 다녀옴. Palo Alto에 자주감. 중간고사와, 이를 위한 공부에 철저히함. 개발을 거의 못함.
2016년 11월
갑작스런 사무실 이동 통보에 엄청 화가 났지만 이내 정신차림. 끌로이의 exam all clear(!) 비자 연장 프로세스 진행 시작. 스트레스에 술을 많이 먹은듯. 일정이 그야말로 엄청나게 많았음. Things Expo참가, 그리고 과제가 엄청나게 많음. 10월과 마찬가지로 개발 거의 못함. 11월 말부터 엄청나게 팀플에 시달림. 좋은 팀원들이었지만 주말이고 뭐고 맨날 팀플.. 월말에 다시 두번이나 감기걸려서 너무 고생함. 그래도 꿋꿋히 땡스 연휴에 라스베가스 로드트립 다녀옴. 오랜만에 가서 신기하고 좋은 것도 있었으나 너무 많은 지출로 조금 힘들었음. 한국의 대통령때문에 시국이 좋지 않음. 바쁨에도 불구하고 끌로이랑 한국의 이슈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 한때. 끌로이 차 첫 정비.
2016년 12월
학교 발표, 기말고사에 엄청 힘들었음. 첫째주부터 자동차 수리하고, 네 번의 주말 조모임. 12/12에 발표 3건이나 함. 12/16 생에 첫 Pitch 발표(*), 엄청 긴장되고 했으나 너무나도 값진 경험. 크리스마스이브 처음으로 외국인과 영어쓰며 보냄. 크리스마스 당일도 즐거운 모임. 중간에 RFP 때문에 1월 한국방문이 사실상 어려워짐. 그래도 괜찮았음.
내 생에 처음으로 서른이라는 나이를 보냈던 2016년, 그리고 이를 정리하는 시간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올 한해, 역시나 기록하며 느끼지만 너무나도 정신없이 보낸 하루하루들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아주 간곡히 드는 때이다. 회사도 회사 나름대로 힘들었지만 특히 학교가, 너무나도 굴곡이 대단했다.하필 선수과목 한 과목 Fail하는 바람에 졸업마저 한학기 늦춰짐으로써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었다. 덕분에 3학기를 엄청나게 빡세게 보냈는데, 때문에 정말 연 초부터 세워놨던 계획 중 운동과 다이어트, 그리고 자기관리가 정말 아에 제대로 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것들이 많다. 특히 여행, 끌로이와 포틀랜드를 여행하며 내려오며 구매했던 텐트부터 시작해서, 방학때 세 차례의 캠핑, 개강 후에도 한 차례의 캠핑을 떠났다. 우리 부부와, 그리고 처음으로 커플캠핑도 다녀왔다. LA두번, 포틀랜드, 시애틀, 요세미티, 라스베가스를 다녀왔는데 이중 포틀랜드를 제외하면 모두 일전에 우리가 따로 갔다왔던 곳들이다. 뭐랄까, ‘추억’에 대한 기억이었는데, 글쎄, 시애틀이나 LV는 둘다 실망이 컸던 것 같다.
생에 처음이 많았다. 내 생에 첫 차를 구입해 타고, 처음으로 10시간 이상 운전을 했다. 학생시절에도 구입 안하던 게임기(PS4)를 구입하고, 질질 끌던 ESL도 시작했다. 생에 첫 결혼기념일을 보내고, 얼마 전에는 생에 처음으로 Pitch를 해보기도 했다.
개발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진작에 개발이 끝났어야 했던 유라임은 많이 연기되었고, 그나마 프로토타입이 나옴에 감사했다. ReactJS와 AngularJS사이에 갈등하고, 프론트앤드 공부를 하려 했으나 학교 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10월부터 시작된 팀플과 과제의 압박 속에서, 회사를 안나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개발은 10월부터 거의 막혀 있었다. 학교가 역시나 너무나도 크게 작용을 한 셈이다. 2학기때 좀 설렁설렁 한 것에 대한 벌을 받았다 해야할까.. 그래도 다행히, 앞으로 3과목만 들으면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으니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고) 좋은 선택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내 첫 서른이 끝나고 있다. 아직도 후회스러운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토록이나 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을 굳게 했건만, 술과 과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 그런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바쁘고 힘들수록 스스로를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가장 관리가 잘 되었던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수업이 별로 없던 2월, 그리고 방학중이던 6,7,8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학기부터는 조금 더 수업을 조절하고, 내것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나도 이제 나를 잘 안다. 여유가 없이는, 만들어 질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2017년에는 특히나 내가 잘 하지 못했던, 다이어트와 운동, 그리고 공부 이 세가지만 열심히 하도록 해야겠다. 개발 같은 것들은 잘 하고 있으니..
다음번에 좀 더, 2017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도록 하고..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30살이여, 반가웠다.

 

SDN/SDS를 공부하며.

시험기간이지만 잠깐 짬을 내서 글을 써본다. 대학원에 와서 네트워크로 전공분야를 정했다. Specialization이라고 하는데, Networking/Embedded/Security이 세가지 밖에 없어서 당연히 네트워크를 하긴 했는데 그리 깊게 들어가지도, 얉게 들어가지도 않는다. 코스웍 위주의 수업인지라, 프로젝트를 당연히 해야하고, 지금 SDN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 컨셉 자체는 정말로 환상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깊게 들어갈수록 네트워크 장비부터 해서 엄청나게 들어가는게 많다.

그런데 알다시피 나는 하드웨어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네트워크 장비를 별로 안좋아한다. 라우터 정도만 알 뿐이지, 물론 네트워크가 특히나 이 동네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안다. 너도 나도 네트워크 속에 노다지를 찾아서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원체 데이터의 양도 커지고, 당연히 계속해서 증가하겠고, 그런 데이터 속에서 빠르고 저렴하게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노력, 그것도 on-demand로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에서 그토록이나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네트워크를 원하는 것일까? 일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는, 최소한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논문 트리는 포기했고, 석사과정 남은 일년동안 페이퍼 몇 개 쓰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라임 개발을 좀 더 열심히 해서 융합해서 아마 일좀 하다가 박사과정으로 전향하지 않을까, 이게 내 총체적인 플랜이긴 한데 유라임이 원래 데이터 과학 부분인데 내가 네트워크, 특히 SDN을 하고 있으니 자꾸만 딴 것을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네트워크 과목 하나 남았는데 네트워크 보안쪽,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하겠지. 정말로 내가 네트워크를 한다고 하면 여기서 원체 크게 이뤄지는 software-defined anything을 토대로 나아가야 겠지만, 난 자꾸만 그게 어떤 방향인지 헷갈린다. 솔직히 클라우드 컴퓨팅이 나중에 만약 진짜 엔지니어링을 한다면 끌리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데이터 사이언스/시각화도 끌린다. 그리고 솔직히 이쪽이 나한테는 더 맞다고 생각이 드는데, 과연 네트워크와 어떻게 접목을 시켜야 할지 그것조차도 의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소프트웨어-정의 라는게 programmable이라는 것인데, 내가 유라임에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programmable이 가능하다고 봤다. 누군가의 성공한 삶을 정형화 하여 프로그래밍 한다면 그 또한 하나의 소프트웨어-정의 가 되지 않을까. 물론 거창하게, low하게 내려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원체 데이터가 모아지는 자체가 요즘은 빅데이터에서 날라오니, 이 데이터에서 고객 중심의 분석을 하려면 당연히, 네트워크적 정의가 필요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의 시너지가 분명 있을꺼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학교는 따라가기 벅차고, 유라임도 개발하기 벅찬데 이런 시간동안 과연 이룰 수 있을까, 그래서 보면 근 2년간 유라임과 내 학문적인 관심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시간을 많이 들였던 것 같다. 앞으로 분명 그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계속해서 자료를 찾고, 살펴보며 개인에 대한 양자화, 그리고 이에 대한 소프트웨어-정의 를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조합 같지만, 재밌을 것 같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