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N/SDS를 공부하며.

시험기간이지만 잠깐 짬을 내서 글을 써본다. 대학원에 와서 네트워크로 전공분야를 정했다. Specialization이라고 하는데, Networking/Embedded/Security이 세가지 밖에 없어서 당연히 네트워크를 하긴 했는데 그리 깊게 들어가지도, 얉게 들어가지도 않는다. 코스웍 위주의 수업인지라, 프로젝트를 당연히 해야하고, 지금 SDN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 컨셉 자체는 정말로 환상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깊게 들어갈수록 네트워크 장비부터 해서 엄청나게 들어가는게 많다.

그런데 알다시피 나는 하드웨어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네트워크 장비를 별로 안좋아한다. 라우터 정도만 알 뿐이지, 물론 네트워크가 특히나 이 동네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안다. 너도 나도 네트워크 속에 노다지를 찾아서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원체 데이터의 양도 커지고, 당연히 계속해서 증가하겠고, 그런 데이터 속에서 빠르고 저렴하게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노력, 그것도 on-demand로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곳에서 그토록이나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네트워크를 원하는 것일까? 일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는, 최소한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논문 트리는 포기했고, 석사과정 남은 일년동안 페이퍼 몇 개 쓰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라임 개발을 좀 더 열심히 해서 융합해서 아마 일좀 하다가 박사과정으로 전향하지 않을까, 이게 내 총체적인 플랜이긴 한데 유라임이 원래 데이터 과학 부분인데 내가 네트워크, 특히 SDN을 하고 있으니 자꾸만 딴 것을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네트워크 과목 하나 남았는데 네트워크 보안쪽,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하겠지. 정말로 내가 네트워크를 한다고 하면 여기서 원체 크게 이뤄지는 software-defined anything을 토대로 나아가야 겠지만, 난 자꾸만 그게 어떤 방향인지 헷갈린다. 솔직히 클라우드 컴퓨팅이 나중에 만약 진짜 엔지니어링을 한다면 끌리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데이터 사이언스/시각화도 끌린다. 그리고 솔직히 이쪽이 나한테는 더 맞다고 생각이 드는데, 과연 네트워크와 어떻게 접목을 시켜야 할지 그것조차도 의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소프트웨어-정의 라는게 programmable이라는 것인데, 내가 유라임에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programmable이 가능하다고 봤다. 누군가의 성공한 삶을 정형화 하여 프로그래밍 한다면 그 또한 하나의 소프트웨어-정의 가 되지 않을까. 물론 거창하게, low하게 내려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원체 데이터가 모아지는 자체가 요즘은 빅데이터에서 날라오니, 이 데이터에서 고객 중심의 분석을 하려면 당연히, 네트워크적 정의가 필요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의 시너지가 분명 있을꺼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학교는 따라가기 벅차고, 유라임도 개발하기 벅찬데 이런 시간동안 과연 이룰 수 있을까, 그래서 보면 근 2년간 유라임과 내 학문적인 관심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시간을 많이 들였던 것 같다. 앞으로 분명 그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계속해서 자료를 찾고, 살펴보며 개인에 대한 양자화, 그리고 이에 대한 소프트웨어-정의 를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조합 같지만, 재밌을 것 같기 때문에…)

일상, 가을의 단상.

10월이다, 벌써 시간은 흘러가버릴 대로 가버리고 올해도 가을에 다다렀다. 회사가 있는 써니베일에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조금씩 오기도 하는 날씨를 보니 확실히 가을은 가을이구나. 미국에 온지, 그리고 결혼한지 일년이 넘었다니 시간이

그간 나는 무얼 하고 지냈을까, 무심결에 다이어리를 넘겨보게 된다. 서른이 되고서, 그래도 몇십년을 엉망인 자필로 써왔던 일기장을 컴퓨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절약되고 그때의 날씨, 일기 같은 더 많은 정보가 자동으로 들어오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더라. 아니, 그게 내가 요즘 새벽기상을 잘 못하는 이유일까.

최근에는 많이 놀기도, 많이 바쁘기도 했다. 주말이면 무조건 놀아야하고, 주중에는 무조건 빡세게 달려야한다. SI 바닥에 있던 6년 간 내가 한 가장 큰 바램인 이것, 주말만큼은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 시절에 힘들었던 주말 학교가기가 그렇게 싫었고, 학교와 회사를 동시에 다니는 지금도 주말에는 숙제도, 공부도, 개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끌로이와 함께 하는 시간 외엔 말이다.

하지만 바쁨에 있어서는 이야기가 사뭇 달라지는 것 같다. 특히 회사일, 지난 1년간 프로토타입 하나를 만드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이번주에서야 마무리 되었다. 미국에 와서 회사를 만들고 사실 뭐 하나 가진 것이 없는 유령회사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제야 물론 베타이지만 제품 하나가 있다는 자체가 이렇게나 든든한 줄은 미처 몰랐다.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항상 삶이 조마조마 한 것은 사실이다. 경험이 그리 많지도 않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긴장이라고 할까, 그것들이 최근들어, 그리고 베타가 나오고 나서 드디어 한숨을 돌리게 된 것 같다.

10년 전, 처음 창업을 했을 때 스무명이 넘던 직원들과 동거동락 하다보니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나의 근심과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조마조마한 삶은 전혀 온전하지 않았다. 군대도 정해지지 않은 채 친구들 전역파티에 초대받고, 병특을 갈 수 있는 확률이 1/1000 이었음 에도 어떻게든 전략을 잘 짜서 갔다. 운좋게도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나서 지금은 중견기업이 된 그곳에서 약간은 편안한 삶에 안주하다가, 학교로 와서는 다양한 길에서 선듯 선택을 머뭇거리다가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했을 때, 2년간 갖은 고생을 다해서 어떻게든 바라던 대로 되었고, 미국에 와서도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하고싶어서, 지난 일년간 학업과 더불어 준비하고, 이제야 나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조마조마 한 인생을 살아갔지만 대부분 내가 원하는 대로 됬다. 간혹 사업이나 공모전, 그리고 개인적인 몇 몇 목표들이 자주 좌절되곤 했지만, 특히 스무살 초반에는 거의 실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쌓이다 보니 내공이 되더라, 그래서 지금 사업은 꽤나 조심스럽게, 하지만 과감할 때는 과감하게 진행하는 것 같다.

얼마전 브런치에 쓴 글이 공유 700을 넘고, 구독자도 400명이 넘는 쾌거(?)를 보이고 있다. 생각보다 이 블로그에도 하루 평균 100-200명 정도가 방문을 하고 있다. 개발 일지로 쓴 글들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는 모양이다. 결국, 생활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공유하고 하는지에 대해 생각보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기사, 우리들의 삶이란 자체가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겠던가. 작던 크던,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접하고 있는가.

어쨌든 이제는 뭔가 내공이 쌓였다. 왠만한 것에 흔들리지 않고, 어차피 내 생각대로 될 것이라는 생각 외에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흔들릴 시간에, 괜시리 무언가에 걱정에만 사로잡혀서 집에서 술먹고, 푸념하고 그러고 있자니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편이 좋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그런게 성장해 간다는 것이구나, 그렇게 가을이 시작되고 나도 점점 더 커가는 것 같다. 좋다, 하지만 잠깐의 소용돌이 처럼 스쳐갔던 지난 9개월이, 재밌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인생은 재밌을 것이라는 기대속에 살아간다 🙂

자유라는 공간의 활용의 의미.

오랜만에 글을 쓴다. 요즘은 별로 속사정을 어딘가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누군가가 보는 자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Anonymous가 거진 보장된 이곳에 글을 쓰게 된다.

근황은 약간 붕 뜬 느낌으로 산다고 해야할까, 요즘엔 좀 많이 놀고있는 것 같다. 유라임 프로젝트의 베타 오픈을 앞두고 솔직히 좀 손을 놓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저 어떻게 저렇게 해야지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는 그다지 하기가 싫더라. 사실 근래들어 열심히 개발을 하긴 했는데, 그 페이스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미국에 와서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을 많이 잃은 것 같다. 그토록이나 나 자신에게 철저했던 시간관리들이 결혼을 해서 그런지, 이러저러한 핑계로 많이 무너졌다. 당장 새벽기상만 봐도 그렇다. 9월 한달 내내 노는데만 신경이 팔려서 그런지, 주중에는 출근을 해도 학교를 가도 어영부영이었다. 작업은 나름대로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외의 것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특히 개강을 했음에도, 복습이라던가 공부 등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크다.

그래도 요즘 더 생각해보는데, 캘리포니아에 살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 서울에 살았을 때에는, 짜여진 틀이 있었다. 학생 시절에도, 대학교 때에도, 사업하던 시절, 병특 시절 등 모든 시간에는 대부분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거의 정형화된 틀이 있었다. 중고등학교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20대가 되고 나서 사실 처음 입학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물론 고등학교때처럼 1교시라는 것이 있었지만 공강도 있고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많아졌다. 그러다 스물한살때 사업했을 때에 다시 9시출근 6시퇴근이라는 룰이 생겼지만 내가 창업자 이기도 했고, 회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굳이 출근시간의 압박은 없이 지냈다. 하지만 1년 뒤 프로젝트가 어려워지자 나도 결국 출퇴근 시간에 목메게 되었고, 병특을 시작했던 2009년에도 별달리 쉼 없이 바로 출퇴근 시간의 늪에서 살았다.

처음 병특때는 워낙 힘들어서 9시 출근은 칼같지만 퇴근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나마 착한 팀장을 만나서 여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는 날에는 많이 빼주긴 했지만, 보통 10시,11시 쯤에 퇴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때 고생을 해서 지금의 실력이 된 것은 물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 이직한 여의도 모 회사에서, 초반 4개월 정도는 내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사실 이상한 사수가 나를 잡아서리..) 보통 11시, 늦으면 1시에 집에 갔지만 집이 가까웠으니 할 만은 했다. 그러다 2011년 초반부터 파견을 밥먹듯 나갔을 때, 회사의 분위기에 따라 나 스스로의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가산의 모 회사에서는 매번 10시에 퇴근했지만 점차 나 스스로도 프로젝트 한두개씩 잡게 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10시쯤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한 적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 같다. 물론 나름대로는 이 회사에서 정해준 10시/19시 라는 출퇴근 시간을 잘 지켰지만 보는 눈이 없자 점점 나태해졌다. 프로젝트도 워낙 일도 쉬워지고, 병특도 막바지에 다다르자 회사에 출근만 해놓고 노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그때는 ‘회사원’ 이라는 생각이 나를 많이 잡아주었지만 학교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또 다시 학창시절, ‘자유’라는 것을 만끽하기 위해 수업을 주4일에 1교시가 없는 시간으로 점차 맞추기 시작했다. 어떤 학기에는 주3일에 몰아서 넣은 적도 많았다. 수업이 없는 날에 학교가기가 그렇게 싫었고, 가끔 프로젝트때문에 학교에서 밤을 지새긴 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방학때도 GRE나 토플, 여행을 준비한답시고 스스로가 시간을 계획해서 사용했다. 정말이지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는, 그런 자유가 얼마나 내게는 배부르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자유인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존재했다. 회사에서 나온, 프리로 전향한 4년전부터의 시간들이 속속히 내게 뭔가를 발휘하게 만들었다. 즉, 나 스스로 모든것들을 해야했다.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고, 그렇다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대학같은 공간에서는 학점이나 프로젝트 같은게 존재해서 이를 위해 시간조절이 어느정도는 가능하다 쳐도 대학을 마칠 즘, 미국으로 가려고 발버둥 치던 그때에, 나는 비로서 이 무한한 자유 속에는 ‘정답’이 정말로 없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게 미국에 와서 보낸 1년, 정말 많은 시행착오속에 살았지만 놀기도 정말 많이 놀았다. 지금도 놀 계획이 산더미이지만, 왜 한국에서는 그러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간혹 든다. 그게 정말, 무한자유에 대한 무한책임의 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미국에 온지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는 그것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직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시간이 나 스스로 활용하기에 따라 달렸다.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도 나 스스로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이라 내가 ‘나태’하면 나태해지고 아니면 아니다. 모든 것이 내 역량에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고 싶지도 않고, 평소의 흐름은 유지한 채 진행하고 싶어서 그럴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싶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원에서도 물론 프로젝트나 학점의 데드라인은 있지만 되도록이면 나 스스로가 만들어나가고 싶은 생각이다. 물론 ‘협업’의 중요성은 크게 인식하지만 그것이 굳이 나를 밤새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 미국에 와서, 또한 가정이 생기니깐 나 스스로도 책임감이 크게 엄습한다. 계속해서 공부하고, 나아가면 되는데 없지않아 있는 ‘불안감’이 가끔 도사린다. 지난 일년 내내 그랬다. 부모님이 아닌 내가 주인 우리집이라는 공간, 내가 나가서 하는 것에 따라 바뀌는 집안 분위기, 점차 미국내에서도 나 스스로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에 대해 자주 느끼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개발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불안감 같은게 있긴 있다. 허나 한편으로는 게을러지고 싶은 욕심도 있다. 주말 내내 놀러갔다 오면 엄습해오는 피곤함에 새벽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게으름 속에서 허우적댄다. 깨워주는 어머니도 안계시고, 오로지 나 스스로 해야한다. 누가 하나 시키지도 않고, 나 스스로 계획하고 데드라인을 정해서 스스로와 타협을 하던, 철저하게 지키던 그렇게 해서 뭔가를 이뤄야한다.

웃기게도 이런 삶이 내가 바래온 삶이긴 하다. 하지만 갈수록 느끼는 것, 내가 욕심이 많고 벌리기만 많이 하지 실제로 매듭을 짓는 경우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도, 회사일을 통한 프로젝트부터 해서 학교 프로젝트, 논문, 개인프로젝트, 수 많은 공부할 거리들, 다이어트계획, 영어공부계획, 인턴이나 취업까지의 계획들. 벌린 일이 이토록이나 많은데 실제로 마무리 지은 것들이 얼마나 되던가, 책을 하나 온전히 다 끝낸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이제야 느끼지만, 왜 ‘공부’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해서 수행해야 하는 공부는 나 스스로의 ‘자립심’을 키우기에는 얼마나 좋은 수단인가. 내 한계를 알고, 내 시간을 알고 가끔은 무리해서라도, 놀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공부를 하는 것, 그래서 미국이라는 공간이 이토록이나 무한자유 속에 무한책임이 있구나 싶다. 공부라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니깐, ‘내’가 우선이지 남과의 ‘정’이 당장의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은 아쉽다. 한국에서는 의존할, 대화하고 푸념할 수 있는 여러 친구들이 있었지만 여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그것이 서른의 내게 주어진 가장 큰 허들이 아닐까.. 철저한 자기관리가 없이는 자유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천재가 아니고서야, 노력을 엄청나게 해야하는데 지난 1년을 반성하면 그런 것이 정말 전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내가 도시에 살지 않아서 그럴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미국 사람들이 가끔은 엄청나게 게을러 보이는데, 그리고 맨날 놀기만 하고.. 그건 정말로 보이는 것만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집중할 때에는 집중하고 놀때는 신나게 노는 그런 것이 생활화 되서 그런 것일까.

아직은 복잡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는 스스로가 계획한 삶 속에 묻어날 수 있도록 더욱더 나 스스로를 채찍질할 필요가 있다. 부모님이 없다고, 책임을 ‘질타’할 상대가 없다고 나태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나태’속에 빠져살았던 지난주의 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앞으로는 더 스스로의 관리에 만전을 가해야겠다.. 스스로와의 타협 없는 삶,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삶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