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것의 익숙함.

 

 얼마전부터 나는 사무실에 6시에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사무실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개인 공간임은 틀림없다. PC, 키보드, DJ 컨트롤러, 스피커 등 내가 그간 수집(?)해왔던 모든 장비들이 이곳에 존재한다. 일종의 나 자신의 스튜디오와도 같은 샘이다.


 새벽에 나가게 된 이유는 새벽을 즐기고 싶어서이다. 작년부터 꾸준히 4시 기상을 실천하고 있는데(전날 9~10시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수면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다.)원래는 6시에 영어학원(SDA 어학원)을 줄곧 다녔지만 보다 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무작정 6시까지 사무실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3시이다. 오늘은 집에서 일찍 잠에 들어서 저녁 11시에 깨고 바로 사무실로 나왔다. 3시간 가량이 지난 지금, 나는 다음주에 있을 시험을 공부하면서 “공허함” 을 느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음향장비와 데스크탑 PC를 꺼버렸다. 소음을 유발하는 모든 것들을 꺼버리니 이 공허한 공간에 나혼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일어나서 바라보던 새벽 4시에도 이정도까지 공허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집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지만, 이곳에는, 오로지 나 혼자뿐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집중이 잘된다 뭐 그런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뭐랄까, 공허한 우주 속에 붕 떠있는 나를 발견하는 느낌이다. 3인칭 시점에서 나 자신을 지켜보게 되고,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내 내면의 소리들이 자꾸만 크게 들린다. 


 한편으론 유혹의 목소리도 들린다. “잠을 더 자자” “영화나 보자” “페이스북이나 하자” 예전같았으면 이러한 내면의 소리에 쉽게 의지가 흔들리고 시간을 소비했을 텐데, 혼자있는 지금은 그런 본능보다는 내가 지금 왜 이곳에 혼자 존재하고 있는지, 왜 굳이 외로움을 스스로 창출해서 오로지 외로움과 친구가 되어 있어야하는지, 그런 생각뿐이다. 유혹은 그저, 잠깐의 올라오는 욕구일 뿐이지 공허한 공간 속의 본질적인 존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 나 혼자 있을 때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지만 정말 세상이 잠든 이 시간,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자칫 헷갈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내게는 점차 정답을 알려주고 있다. 내가 원하는것, 내가 나아갈 방향,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목적같은 것들을 말이다.


 결국 삶이란 것은 공존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인데 이를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외로움 속에 가둘 필요가 있나보다. 적어도 나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받음” “공존” 을 느꼈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열정이 치솟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며, 삶의 대부분은 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 극복하고 익숙해 져야 하는 것이 외로움이다. 나의 본질,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나 혼자 존재했을 때,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기고찰인 것 같다.

CMU MSSM 21' 재학중. AI기반 습관관리 서비스 유라임 (urhy.me) 대표. 전 금융권 소프트웨어/데이터 엔지니어. 대학원 생활, 실리콘벨리, 유라임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데이터과학과 시각화, 대용량 아키텍처,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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