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인사총무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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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모 게임회사에서 인사/총무/경리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회사에 제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몇번의 실패 끝에 PM(프로젝트 매니저) 에서 졸지에 인사총무팀장으로 전락한거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2008년 제가 이 직책을 처음 맡고 2~3개월이 지나자 솔직히 슬슬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저희 회사는 신생업체인지라 직원은 23명, 관리직은 사장님과 저 땡~ 입니다 ; 팀장이고 팀원이고 전부 개발자였죠.

사실 제가 PM시절에 직원들의 뒷바라지는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사무기기,사무용품,PC기기,인사처리 등등은 다 제가 담당하긴 했습니다. 물론, 4대보험이나 정산정도는 아니었지만요.

작년, 사장님은 저의 PM직을 인사총무 팀장(팀원도 없는데 팀장이라니..)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PM을 겸임하셨습니다. 저는 몰랐죠. 사장님이 분명 기존에 하는 일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더군요. 정말 1년간 인사총무일 하면서 별 별 스트레스를 다 겪어봤습니다.

게임회사 인사총무경리 담당의 일반적인 업무
참고로 중소기업임을 인지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경리)
– 직원들 영수증 처리
– 은행 가서 돈찾아오고 돈관리
– 각종 공과금/고지서/세금 납부
– 전표 작성
– 식사 후 계산

(총무)
– 신문, 우유 관리
– 각종 다양한 품의서 작성
– 문서 양식 관리
– 서적, 비품 관리
– 사내 파일 서버 관리
– 신입사원 오면 컴퓨터 죄다 세팅
컴퓨터 하다 안되는거 있으면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죄다 수리(A/S기사..)
– 팀원들 불만사항 접수
소프트웨어 관리
– 직원들 컴퓨터 모니터링(불법 소프트웨어, 파일 유출 등)
– 시무식,종무식,월례조회 등 진행
– 회식 날짜 정하고 회식 자리 예약
– 사무용품 떨어진거 구매
– 식료품(쥬스 등) 상시 구매
– 택배 관리
– 잡상인 관리
– 우편물 관리
– 청소

(인사)
– 신입사원 4대보험 등록
– 4대보험 관련 각종 처리
– 인사기록카드 관리
– 신입사원 인사 처리
– 신입사원 안내
– 사내규칙 체크
– 퇴직 처리

인사/총무 업무가 정말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뭐 제가 하는 일은 한 인사총무업무의 10%도 안될거긴 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정말 “총무”에 관련된 일은 그야말로 “잡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어쩔땐 도배 전문가, 어쩔땐 A/S수리공, 어쩔땐 경비, 어쩔땐 택배기사가 되어야 하는게 총무일입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신입사원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UI디자이너입니다. 10시 출근에도 불구하고 저는 7시 반에 출근, 회사에 남는 모니터 죄다 되나 안되나 체크하면서 남는 PC 5대에 그래픽 카드 7대를 수시로 교체해가며 “되는” 컴퓨터를 찾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훌쩍 9시가 되더군요.. 윈도우 깔고 오피스 깔고 알씨리즈 깔고 포샵 깔고..
10시에 신입사원 출근, 우선 간단히 인사에 관련된 문서들 설명해 주고 이메일 세팅해주고 직원들 연락망을 줬습니다.

한 11시쯤 되어서일까요, 모니터 색깔이 안좋아서 바꿔달랍니다. 뭐 이런일 한두번도 아니니깐요.. 하지만 낼모래면 한명 더 입사하고 해서 남겨둔 모니터는 쓸수 없고.. 우선 제꺼로 교체해드렸는데도 안좋답니다. 4번은 교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몰려오는 영수증들, 직원들이 야근, 철야하면서 남긴 식대영수증이니, 목욕비영수증이니.. 전부 정산하고 1시입니다.

저희회사는 컴퓨터 안되는 것에 A/S가 없습니다. 죄다 제가 고쳐줍니다. 물론 제가 PC에 대해서는 좀 많이 알긴 하지만.. 어쩔때는 수리에만 3~4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은행 갔다오고.. 돈찾아서 정산해주고.. 직원들 근태보고하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7시가 다되죠.

정말 2008년을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면서 버텼을까? 라는 생각이 참 깊이 듭니다. 하지만서도, 인사 총무일은 회사에서 참 중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이런 인사 총무 일을 2월1일이면 저도 끝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 해주어야 겠지만.. 너무나도 제가 회사에서는 “편리한”존재가 되어버렸는데, 다음 타자는 어떻게 제 바톤을 받을지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정말 사소한 것 까지(PSP가 안되는거 수리, 아이팟 안되는거 택배 보내주기..) 제가 담당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 부탁을 거절 못하는 제 성격 탓인거 같지만.. 정말 yes보다 no가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인사총무 업무였다는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다른 게임회사는 몰라도, 신생회사의 인사총무 업무를 맡게 된다면.. 정말 각오를 깊이 다져야 합니다. 이건 “전문”적인게 아니라 “짬뽕”입니다. 전문과 비전문의 짬뽕.. 결국 이게 제 결론인 것 같군요.. 그리고 저는 다시는 인사총무 업무를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서도, 추후 경영인을 꿈꾼다면 이런 인사총무 업무(정말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죠..)는 알아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는 늘 생각됩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비추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