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속 나의 현실화를 위한 과정 속에서의 고찰

1996년, 당시 막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던 나는 그간 사용해 오던 DOS의 여러 명령어를 뒤적거리다가 우연찮게 내 PC에도 윈도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86이던 당시 PC에 하드용량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만지다가 실행한 윈도우에서 나는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PC통신을 접하고, 최초로 ISP를 통한 인터넷 접속에 성공하였다. 물론 한메일이 시작된 87년에는 내가 태어난 시점이니깐, 아마 나는 그 세대의 대학생,직장인들과 우리 세대 친구들과 그 중간보다 조금 더 빨리 접했다고 할까.

인터넷이라는 세계는 정말이지 신세계라서, 내가 그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서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한 책 중 하나는 “인터넷 가이드” 라는 각종 주제별로 URL을 정리해 놓은 책이었다. 당시의 카테고리 방식의 검색 엔진, 심마니나 야후 등의 검색엔진을 좋아했던 이유도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제”별로 쉽게 알 수 있어서였다.

현실 속 나를 바라보다

그렇게 내가 인터넷을 접한 것이 15년이 넘었다. 인터넷 중독으로 살아가던 그날을 생각하며, 20대가 꺽였던 올 한해는 점차 내가 온라인 속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현실속의 나를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인식하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채찍질 해 나갈 수 있도록 탈바꿈 하고 있다. 더 이상은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아바타가 아니오, 이루지도 못하고 망상만 하고 있는 공상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상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정도의 1/10만 해도 좋다. 공상이라 해도 그것은 나의 소망이오, 이루고자 하는 목표이니 말이다. 솔직히 나의 공상에 불만도 없고,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다. 락커가 되고 싶은 꿈, 멋진 웹 서비스를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꿈, 꿈있는 개개인들의 삶을 바꿔놓고 싶은 꿈 등. 내 안의 수 많은 공상들은 25년간 나는 목적으로써 가꿔 나갔기 때문에 되려 쉽게 세울 수 있는 목표보다는 나 자신이 왜 이를 이루고 싶은지를 뼈속까지 깊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실속이다. 올 초에 나 자신의 외관(Appearance)을 바라보며 최소한 내가 바라는 사회속에서의 내 모습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살은 쪄져 있고 그다지 가꾸지 않은 모습이 대부분이다. 여지껏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어떻게 공상 속의 내 모습대로 나아갈 것인가? 그런 생각에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개발력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했던 회사에서는 내가 능력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대외적으로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가름하는 척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예를들어 대회나 시험, 자격증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런게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모든 것이 객관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기본 요소 중 하나인 돈도 마찬가지로, 그런 돈이 우리 삶의 품질을 결정하는게 아니던가.

공상 속의 나를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가

물론 위에 두 가지는 지금은 작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이뤄냈다. 허나 그 과정은 정말로 힘들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하고, 끈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나는 한 가지에 꾸준한 집중을 잘 못하는 성격이 있다. (프로그래밍은 다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보다 더 큰 집중을 가지게 하려면 일단 쉽게 만들어야 하고, 재밌게 만들어야 한다.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강한 이미지 트레이닝과 특히 운동을 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들을 미친듯 들으며, 운동을 쉽게 만들 기 위해서 너무 단 기간에 급격한 효과를 보려 하지 않고 대신 하루에 30분~1시간이라도 꾸준히 했다. 강한 동기부여를 위해서 남성지를 구독해보며 내가 원하는 남성상을 지속적으로 추려 나갔고, 나태라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 유발되는지를 계속 살폈다.

개발 또한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내게 미친듯한 개발력을 주는 것은 기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프레임워크의 설계와 디자인이다. 거의 혼자서 대부분 개발하는 내게 이 부분은 정말 깊게 창작의 고통에 대해 야기해 주고 있다. 여하튼 올 초에 좋은 성과를 거둔 대회에서는 이를 극복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세계시장에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만드려면 일단 한국어로는 힘들다. 그렇기에 영어를 해야 하고, 영어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정말 다양한 길이 있다. 이것 역시 일전에 이룬 것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쉽고 재밌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내가 그 동안 그렇게나 안해오던 공부인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어차피 꾸준히 해야 하긴 하지만, 어떻게 내 실력을  발전시켜 나가고 평가해 나가야 할까?

그래서 아마 시험이란 것이 존재하나 보다. 토익이나 토플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한답시고 토익공부에 영국발음이 즐거워서 따라읽기도 하고 단어도 외우고 독해도 하고 문법 강의도 듣고 받아쓰기도 하고… 하루에 기껏해야 2~3시간 정도밖에 공부를 못하는 내가 뭘 그리 무리해서 한다고 했는지. 방법을 좀 더 깊게 알고 들어갔었어야 했는데 인강을 제대로 듣는데만 1시간 반이 걸리더라. 교재나 강의의 난이도조차 헷갈리고 말이다.

 그래도 마냥 좌절할 수는 없다. 보다 더 빠르게 옳은 길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긴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끝없이 옳은 길을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제보다는 오늘의 내가 더 낫다는 기분만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발전이고, 그게 공상 속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서로 다른 성공과 행복에 대한 척도

여튼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내게 서로 다른 모습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다. 그러한 혼돈 속에서도 나의 모습을 잡아가는 것이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사람은 저마다 경험한 바가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고 전파하는 과정이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키워드를 잡고 그것에만 오로지 매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러다 보면 전에는 일주일 내내 미친 듯 하던 운동이 지금은 단 몇분, 몇 번의 운동만으로 유지가 되는 것처럼 몸에 익게 될 것이다. 

 
익숙함, 나태, 정체기, 새로운 자극

최근 일기를 쓰며 자주 쓰는 말이 바로 “이슈의 상실” 이다. 목표를 세우면 끝장을 볼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다 보니 목표의 중간 쯤 가면 마치 내가 다 이룬 것처럼 느끼고 생각하다가 어느새 목표는 원점이 되어 돌아가 있다. 익숙함이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자만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는 반드시 새로운 자극, 변화가 필요한데 처음 만큼 강한 의지력이 생기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이것 또한 내가 극복해야 할 길이다. 정체기에서 나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그런 길 말이다. 아마 올 해의 마지막으로 내가 자기관리에 있어서 생각하고 방법을 정립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자극을 어떻게 줄 것인가? 또한 매우 자주 나 자신을 평가하는 행위는 과연 올바른 행동인가? 나태해진 내 모습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등.

만약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욕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저 본능대로만 살아갔을 것이고 굳이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 무소유의 개념과 행복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반대로 욕심을 가지고 학업적, 물질적, 사회적인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방향과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최종적으로는 사람들의 위대한 업적을 위해 그 자신의 삶을 보다 더 잘 잡을 수 있고 반성할 수 있는, 그런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 사명이고, 이를 위해 나는 아이젝트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