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잔재 버리기.

잠이 안오는 밤이다. 요즘엔 왠지모르게 새벽에 자주 깬다. 그리고 내가 주로하는 것은 과거 돌아보기. 요즘처럼 안정된 생활도 없으면서 한편으론 정말 쉴틈없이 달렸던 과거가 자주 생각나는 요즘이라서 그런 것 같다.

무슨 이상을 찾으려고 그렇게 달렸던 것일까. 오늘 학교에서 커리어에 대해서 발표를 하면서 스무살 이후의 나를 쭉 돌아봤다. 15년이란 시간, 어쩌면 길고 어쩌면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기억이 나는 시점인 대충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 보면, 이후에 줄곳 나는 어떤 이상을 향해서 달려오긴 했다. 어쨌건간에, 인터넷을 빠르게 접하고 시화신도시란 구석에서 자라서 정말 계속해서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을 접하고, 더 많은 지식을 다룰 수 있도록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물은 결과, 지금은 정말 지적인 탐구를 끝없이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길었다. 15년이 뭔가, 25년이나 걸렸던 이 이상과 현실의 중간을 위한 나의 여정이랄까. 미국에 왔을 때, 학부를 다녔을 때의 나의 모습은, 정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모습과는 상반되게도 즐거워 보였다. 난 분명 많은것을 실패했다. 미국 유학도, 스타트업도, 하물며 결혼생활 초기도 녹녹치 않았다. 그렇게 방황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면서 내게 분명하게 남은 것은 110키로에 육박하는 살이다. 15년의 방황이 1년에 1년치만큼 내 몸속에 녹아내린 것 같다.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어쩌면 정말 벗어버리고 싶은 일종의 과거이기도 하다.

과거란 그래서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사실 난 아직도 술에 대한 완벽한 조절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에서 오는 술은 먹지 않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꽃이는 방향이 있다. 그런데 왜 난 알콜을 탐닉하게 되는 것일까? 최근에 알콜중독에 대한 다큐를 몇편 봤는데, 분해되지 않은 알콜이 혈류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뇌의 뉴런의 전달을 방해해서 그게 결국 취한다는 느낌이 되는 것이고, 기억하는 작용을 하지 못해서 결국 blackout이 온다는 것이다. 이말은 즉, 세상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 머리의 작용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한편의 환각을 만드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거의 몸은 무의식적으로만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몇차례의 blackout에서 아찔한 경험이 많았다. 특히 밖에서 그런 고주망태가 되는 행동은 거의 고쳤다고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집에서의 경우였다. 지금은 많이 고치긴 했지만, 어쨌건 난 한치앞을 알 수 없는 미래와,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해서 고민했고, 대부분의 결과를 난 술을 통해 억지로 만든 환각에 의존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미래에 대해서 아무 걱정이 없고 올라갈 일만 남은 상황에서는 무엇이 술, 정확히는 알콜을 탐닉하게 되는 것인지 사뭇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그 술에 대한 경험이 깊게 남아서, 예컨데 시원한 아사히 생맥주라던가 막걸리라던가, 그래서 어떤 음식점이나 마트에 가면 정말 나도모르게 술을 시키고 마시고 있다. 하지만 몇번 먹다 보면 괜히 머리가 아프고 다음날 숙취가 이제는 더 짜증나게만 느껴진다. 알콜이 더 이상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맥주를 시원해서 찾는다? 홉의 맛때문에 찾는다? 막걸리의 효모때문에 찾는다? 사실 요즘엔 무알콜 맥주도 워낙 잘 나와서 이런건 아무런 핑계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난 왜 냉장고의 무알콜 맥주를 먹지 않고 굳이 알콜이 함류된 맥주를 먹는것인가? 특히나 약간의 번아웃 상태나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는 더 그렇다. 몸이 무의식에 의해 지배되고, 그럼 결국 정말 나도모르게 술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강하다. 이걸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글이 술에 대한 생각으로 향해갔는데 사실 내가 과거의 사진을 뒤적이고 일기와 블로깅을 뒤적이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이것도 어쩌면 과거의 ‘좋았을’ 때를 생각하면서 현실을 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쎄, 하는일이 잘 안풀릴 때에는 이런 행동이 내게 힘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의미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답을 못찾아서 방황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계획한다고 삶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닌것을 이해한 지금은 특히나 그렇다. 지금은 그저 과거를 보면서 당장의 성공에 조금 취해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 그게 맞는 것 같다. 허나 또 다시 내가 나아가지 않으면 물론 지금까지 이룬 것을 단시간에 잃지는 않겠지만 적절한 긴장이 있어야지 또 다른 발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알콜’을 굳이 탐닉하는 나를 정말 잊고 싶다. 마치 담배같다. 스무살때 멋모르고 겉담배로 시작했던 담배는 5년이 지나서야 완벽하게 끊을 수 있었다. 그때도 아침에 한갑을 사고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몇시간 뒤 다시 쓰레기통을 뒤지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떠한 큰 계기도 없지만 어쨌건 그런 행위를 수백번 반복하고 나서 난 비로서 끊을 수 있었다. 담배도 결국 술처럼 뉴런의 전달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서 기분좋음을 일으키던게 아닌가, 알콜도 이런면에서 똑같다. 알콜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20세 전에 나는, 스트레스가 있으면 그냥 만화를 보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잊곤 했다. 술담배 말고도 좋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난 아직도 과거의 잔재속에서 허우적 되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과거의 잔재 속, 즉 알콜을 탐닉하는 것과 내장지방을 없애므로써 난 결국 완벽하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난 과거가 만들었던 잔재를 없애고 진짜 새출발을 하고싶은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범죄자가 새삶을 시작하듯이 말이다. 난 범죄자였다. 가끔 주변사람도 괴롭게 만들었고, 가장 문제는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내겐 새 삶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새 삶은, 과거의 내가 믿던 것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맹목적으로 믿던 스타트업은 2019년 8월의 사건으로 증발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과거를 말하는 것도 과거를 지향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2021년을 기점으로 그 전은 바라보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버릴 수 있는 과거라는 점이다.

이렇게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행동도 언젠가는 마무리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삶의 주안점이 되는 때가 있겠지. 어쨌건간에, 지금의 나는 35년 삶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하긴 하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행복을 삶의 중심으로 두고싶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이게 나의 regular한 삶인 것처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삶을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즉 올 한해 초반에 정말 취업을 위해서 미친듯 달렸는데 막상 되고나니 과거의 고생이 보상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이게 원래의 나의 삶이라는 생각 말이다. 계속해서 overwrap되는 것이다. 굳은살이 배는 것처럼, 결국 나도 지금의 조직에서 올라가기 위해서 하나 둘 힘든 과정을 거치겠지만 어쨌건 힘들다는 생각은 많이 들지 않는 것처럼. 벗어났던 삶의 지향점을 align시키고 나서, 마치 하나의 커리큘럼이 만들어지고 나서,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이다 라는 느낌이 드는 지금처럼. 그렇게 더 발전적인 삶을 살고싶다. 그러므로 정말 숱하게 했던 과거 돌아보기는, 정말로 작별하자. 저 우주 멀리. 즐겨듣던 뮤즈의 map of problematique는 이제 없어진 것이다. 그것이 내 문제의 지도였고, 그 문제는 모두 없어진 것이다. 그 혼돈의 시작이었던 2012년, 나의 글을 돌이켜보면서 난 정말로 혼돈과의 작별을 고한다. Au re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