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잡자.

최근에는 살짝 공허함의 연속이었다. 정확히 말해 여기서 공허함이란, 뭔가 즐거운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중순까지는 내가 워낙 일도 많고 신경쓸일이 많아서 바쁘다가, 6월에 한차례 옐로스톤을 다녀오고 와이프가 바쁘기 시작하자 어디 쉽게 나가기도 힘들고, 덕분에 집에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는 거의 끝났지만, 이제 정말 다음주면 끝난다. 한 6월쯤이었나 그때도 비슷한 고찰을 했었는데 이젠 5년간 연달아 다니던 학교를 ‘정말로’ 떠난다니 감회가 새롭다. 뭐 그래도 지난번 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겨우 5년만에서야 정말 학교가 나랑 안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니 참, 어이없기도 하고 그만큼 내가 시간관리를 제대로 못했구나 싶기도 했다.

미국에 오니 심심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플스4도 사고 피아노도 사고 여러가지 취미를 위한 도구를 샀지만, 사실 ‘캠핑’ 이나 여행 만큼 내게 즐거운 것도 없었다. 몇차례 게임도 시도해 봤지만 예전에 게임회사를 실패한 경험에서일까, 게임은 오래하면 그당시의 트라우마가 생각나더라. 희안하게도 말이다. 그래서 정말 많이 마음먹고 하면 30분 정도? 아무리 단계를 깨고 발전해 나간다 해도 ‘중독’ 수준은 전혀 오지 않았다. 글쎄, 최근에 게이밍용 헤드셋을 구입했는데, 이조차도 몰입감은 좋아지언정 역시나 중독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다큐나 미드도 마찬가지다. 벌려놓은 미드만 네개고, 다큐는 짧은 다큐 이외에는 시간낭비라고 생각되어 보지 않는다. 주말마다 시사 프로그램인 궁금한이야기 Y나 그것이 알고싶다는 꼬박 챙겨보지만, 이건 내게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건에 대해 네이버 뉴스도 실상 가십이라고 잘 안보는 내게 어떠한 창구가 되어주는 편이다.

미국에 와서 초반에는 정말 하고픈게 많았다. 개발도 하고싶은게 산더미였고, 여행도 취미생활도. 그런데 그런 생활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가장 망가졌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혼술’ 이었다. 물론 내가 주도를 잘못 배운 탓도 있겠거니와는,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있어서 스스로 잘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2~3회 있던 술자리가 말그대로 한달에 한번 정도로 줄다 보니 이를 대비하지 못한 것도 크고, 물론 와이프랑 함께하는 술자리가 즐거웠지만 한번 술이 들어가면 어느정도 양을 채워야 하는 버릇 때문일까, 결국엔 혼술을 또 하게 되거나 또다시 술을 찾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사실 이 이면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대학원 이었다. 보통 수업이 저녁 늦게 있고 집에 9시는 넘어서야 들어오게 된다. 저녁이라도 굶은 날에는 자꾸만 야식이 생각나고, 밤 10시쯤 늦은 시간에 요리를 하기 위해 해산물 등 식재료를 사왔다. 그리고 꼭 요리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두 잔으로 시작한 술이 점차 늘게 되어 한병, 두병이 되는 날이 흔하디 흔했다. 결혼 전에는 집에서 밤에 술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는데, 미국에 와서는 이러고 있다. 물론 밖에서 안머는게 어딘가 싶긴 하지만, 그런 생각에 ‘집에서 오랜만에 먹는데’ 라는 생각이 나를 크게 잠식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힘들었다. 특히 대학원 스트레스와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들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여태 그런 스트레스에 대한 훈련이 되지 않아서일까, 정해지지 않은 밀에 대해서, 막연한 앞날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 왜이리도 힘들었는지. 지금도 새벽에 가끔 깨면 불안한 심리가 계속된다. 그러다 잠을 자지 못하고, 또 다시 잠을 위해 술을 찾는다. 최근에야 밤에 술을 한 적이 거의 없지만 2년간 정말 수도없이 많이 그래왔다. 내가 이정도로 애주가는 아닌데 (…) 라는 생각과는 별개로, 그냥 습관이었다.

허나 2년간 정말 많은 미국에 진출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인지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 미국이란 공간은 스스로를 철저히 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사실 자기관리 하면 누구보다 자신있던 나인데, 5년 전 복학때부터 조금씩 무너지더니 미국진출을 희망하고 나서는 더없이 무너졌었다. 내가 자기관리 관련 사업을 하자고 한 것과는 너무나도 상반된다.

2017년을 계속해서 돌이켜 보고 있다. 예년보다는 그나마 나았던 생활이었다. 하지만, 결국 ‘술’ 이라는 존재가 많은 곳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 보니 술이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의지의 문제였다. 운동도, 공부도, 개발도 모든 것이 결국 의지 문제다. 어떻게 보면 술은 그 중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었다. 최근 배가 너무 나와 내 식사 패턴을 확인해보니, 건강하게 잘 먹으면서도 자주 단 음식을 먹게 되더라. 단것, 술, 식사할때 못해도 1.5인분을 먹고, 운동을 하나도 안하는 날도 있고,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살이 안찌고 버틸까. 게다가 미국와서 평균 하루 정도는 새벽에 과음하고 나도 몰래 요리를 해먹고, 또 그 요리가 보통 큰 것도 아니고 꽤나 고칼로리를 찾게 되고 말이다.

계속해서 이런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번 잡은 마음이 꾸준히 가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중 하나를 불규칙적인 생활에서 본다. 그리고이런 불규칙적인 삶을 만든 자체가 ‘학교’ 라고 본다. 아 물론, 좋은 핑계거리라는 것을 잘 안다. 분명 학교라고 본다면 핑계가 분명하다. 결국 내가 스스로 시간관리 못하고 지속적으로 벼락치기적 삶을 만든게 잘못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학교 5년 회사 5년을 다녀보니 내게 잘 맞는 것을 분명히 찾을 수는 있었다. 회사를 다니던 그 시간이, 꾸준함이 나 스스로를 만들었다. 조금 느리긴 했지만 꾸준히 나는 목표한 대로 나갈 수 있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규칙적인 시간 패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생으로서, 수업들을 물론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학교를 공부의 수단보다는 사회적인 수단으로 생각했던 내게는 당연히 학업이 뒷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을 오니 일차적으로 누군가와 어울린다는 자체도 힘들었고, 미국에서의 목적이 ‘공부’가 주가 되어야 했는데 방향이 계속해서 셌다. 시행착오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과목이 쉽다 느끼고 대충대충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필수과목 하나가 삼수강이라는 초유의 상황까지 발생하며 졸업이 한학기 늦춰지는 상황까지 갔다. 그런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나는 도통 공부에 손이 가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문제가 컸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처음에 잘못 선택한 이 ‘Computer Engineering’ 이라는 학과 자체가 더 큰 문제였다. 커리큘럼 자체가 로우레벨이다 보니 아무리 해도 내가 왜 하드웨어와 더 가까운 부분을 공부해야 하는지, 관심의 정도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좋아하는 것만 한다’ 라는게 나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느낌이다. 사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현실 회피였을 뿐이었다. 최근에 4개월간 유라임만 했던 원인도 그렇다. 취업준비도 해야하고, 따로 공부할 것도 꽤나 많았고, 건강관리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놓고는 유라임이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으니 사이드로 빼고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조금씩 다시 공부하다 보니 꽤나 지식을 습득하는 흥미도 느껴지고, 코딩 문제들을 하나 둘 풀다 보니 예전과 다르게 ‘재미’ 라는게 느껴졌다. 비로서 내가 원하는 지식을 습득한다는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에서 나는 조금의 깨닳음을 얻었다.

최근에 시작했던 요가도 그렇다. 어쨌든 빡세게 운동을 하고 나면 복잡한 생각들이 많이 없어진다. 책을 읽어도 그렇다. 따뜻한 물 속에 반신욕을 해도 그렇다. 아무 생각없이 mooc를 들어도 그렇다. 지금까지 보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가 고민했던 것이 허다했고, 그중 대부분은 내 노력에 의해 꾸준히 바뀔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었다. 내가 술먹고 그 상황을 췻기속에 날려버린다고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시금 나를 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일단 한번 마음을 먹으니 조금씩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느낌이다. 더는 학교때문에 밤늦게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없고, 늦게 누군가와 만날 필요도 없다. 시간이야 내가 조절하기 마련이니깐. 5년을 학교를 다니며 삶을 잡으려는 노력이 안되었기 때문에 안되면 일단 접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일단 내일이 어떻게 되던 간에, 10시취침 4시기상, 요즘에는 잠을 7시간으로 늘렸으니 9시취침 4시기상을 하려고 한다. 근 10년간 계속해서 노력해왔던 것들인데, 새벽이 있는 삶이 있어야지 어떻게던 스스로 집중해서 뭐라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새벽에 쓰고있고, 새벽을 위해 전날 8시에(주말이라서) 취침했다.

새벽에 일단 일찍 일어나면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나의 경우는 워낙에 생각이 많은 놈이라 어쨌든 머릿속을 글로써 풀어줘야 한다. 손으로 보통 일기를 쓰곤 하는데, 이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블로그에 자기반성을 하건 다른곳에 글을 쓰던간에 글로써 계속해서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맑아지고 비로서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런 복잡한 생각을 주체할 수 없어서 술을 찾았다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어쨌든 변화가 있으려면 외적 요인도 없고 그저 내 의지밖에 없다. 내가 지금 당장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모든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스스로와의 타협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미래를 바라봤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그 순간을 잡아야 한다. 결국 참는 것. 충동적인 그 상황 속에서 참아내는 것 말이다. 당장에 나는 술때문에 행복할 수는 있어도 그 이후의 후폭풍들은 어떻게 감당할텐가. 지금처럼 부풀어올라버린 몸 자체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들까.

일차적으로 나를 잡는 데에 가장 큰 요인은 아마도 정상체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트에는 몇몇 복잡한 ‘꾸준함’ 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식사조절, 술조절, 꾸준한 운동 등. 그간 5년간 해야지 해야지 하고 미뤄뒀는데, 나는 이것을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어, 계속해서 하고싶던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 사실 그거밖에 없다. 취미생활? 가끔 가는 여행이면 된다. 아니면 평소에 하던대로 음악을 좀 할 뿐이다. 더도 덜도 없다.

2018년의 계획을 세우다 보니 그렇더라. 취업 이외에는 별달리 ‘성취’ 하고자 하는 것도 없다. 전처럼 뭐 학점 어느정도, 대학원 합격, 토플 몇점 등등, 이런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알았다. 특히나 취업 준비에서는 벼락치기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살아감에 있어서 벼락치기로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그래서 정말 더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 같다.

결국 꾸준함. 거창한 목표보다는 어차피 평생 공부고, 평생 운동이고, 평생 자기관리다. 수동적 삶이 아닌 능동적인 삶, 올해 연말에는 이를 좀 더 고찰하고 본격 시작에 앞서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잡는하루하루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잡는 것, 별다른 것 없다.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 것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