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주말에 약간은 무리를 해서 청소를 하고 난 내방은 사뭇 글을 쓰게 만들고 싶기도 하고, 생각의 늪에 잠겨있게도 만드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새벽같이 많은 생각을 그것도 고요하게 끌어오는 시간이 어딨으랴,  그런 소중한 시간을 나는 추위에 벌벌 떨며 새벽에 출근을 하였다. 


 새벽 공기가 주는 신선함은 좋았고, 커다란 달이 내게 주는 의미 또한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맑지않은 대림천을 보며, 새벽의 약간의 무서움과, 하물며 사무실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의 그 술집 골목을 지나갈 때이면 아직도 하루를 마감하지 않고 술과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과 유흥가들의 그 빨간 전광판을 보고 있으면 내가 왜 이시간에 이 고생을 해서 사무실에 가야하는지, 아무리 고민을 해도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주를 보내고 난 내 느낌은 마냥 색다르지만은 않다. 회사를 다니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나지 않아서 회사와 이야기를 해서 이시간에 일을 시작한 것인데 실제로 이 시간에 일을 해본 결과는 참담하다. 공부가 미뤄지면 일보다는 공부를 하기 바뻤고 채 절반도 나는 회사일에 매진하지 못했다. 공부 진도는 따라갔을지 몰라도, 회사 진도는 늦춰졌다.


 사실 시간이란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나 이외에 GRE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혹은 3학년이 끝나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 혹은 나처럼 직장을 다니면서 GRE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은 분명 나와 비슷한 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학원 과제를 모두 끝내고 널널한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물론 모든 것을 내려넣고 오로지 GRE만 전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해야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리고 그 욕심을 미화시키기 위해선 희생을 감수해야한다. 그것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말이다. 잠을 줄이고, 친구들과 만남을 최소화하고, 그러면서도 꼭 챙겨야할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은 챙겨야한다. 


 가끔보면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사회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탈출하고자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유학을 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외로움을 탈피하고자 하는 행동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이고,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 것에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미국같은 곳에 가면 땅덩이가 넓은 곳에서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을 것이니 사회적임을 탈피할 수 있다는 내 가정은 사실 터무니없는 것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가 만든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맞는 것 같다. 2주 전에는 새벽에 공부를 했지만, 지난주에는 새벽에 출근을 했다. 경험을 해봤으니,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음주가 되면 설날이 다가오고, 학원은 당장 종강을 하고 그 다음주에나 다시 개강을 하는데, 그러면서 분명 또 시간이 바뀔텐데, 정적인 삶 속에 나를 가두고 안심시키려는 행동은 어찌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회사생활을 했던 지난 7년여의 시간속에 나는 9시와 6시라는 틀안에서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던 것 같다. 정말 거의 7년간 이어진 이 9시간의 틀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학생+직장인이 되고 나서 정말 끝없는 방황의 연속이었고, 지금은 거의 이에 대한 답을 내릴 시점까지 온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변하는 시간, 최소한 지금 내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보장을 해두는 것 말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짧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긴게 시간이다. 결국 짧은 시간 안에서도 내가 얼마나 이를 위해 노력을 했는가, 정적인 시간할애보다는 나는 거기서 의미를 찾는다. 조급해 할 것 없다. 하지만 내 삶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