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아이는 100일을 훌쩍 넘겼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긴 하지만 어쨌든 어느정도는 우리도 부모로써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 든다. 중요한 것은 삶이 어느정도 패턴을 잡아가고 내가 어느 시간이 일을 하고 집중할 수 있는지, 어느 시간이 운동하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지를 알 것 같더라.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안정적이고 체력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실을 100일간 크게 실감하였다.

최근에 부모님이 미국에 오셨다. 그리 오래계시지는 않지만, 우리 부부가 미국에 온지 7년만에 처음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감회가 새롭다. 여느 미국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6년간 신분문제부터 다양하게 고생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고생이 작년에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올해 아이가 태어나고 집을 구입하고 나서부터 어쩌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 결혼 후 7년만에 끝났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곁에 있어주었던 가족한테 가장 미안하고 고마웠다. 와이프나, 부모님에게서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오시고 나름 아들이 안정을 가지고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렸을 때, 비로서 미국행의 목표가 일단락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그간 얼마나 내가 안정감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그 안정감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내가 많은 욕심을 내려놓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안정적이라는 공간, comfort zone에서 나왔을 때, 끝 없이 나 스스로와의 대화에서 비로서 벗어날 수 있었을 때, 그때 찾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삶이라는 자체가 본래 이런일도 저런일도 있는 것을 이해했을 때 비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좀더 심오한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안정감이 찾아오고 나서 내가 가장 신기한 것은 다른게 아니라 시간이 느려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술을 끊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었는데, 차츰 이것이 내가 삶을 정적으로 바꿔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속감과 안정감이 중요하나 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불안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내가 도전하는 것이 실패해도 상관없게 만들면 되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올라갈 일만 있고, 그 올라간다는 의미는 나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 자리에 남아있어도 상관은 없다. 욕심부려도 된다. 모든게 내 자율적인 것이다. 선택에 따른 결과기 미국에서 추방되고 그런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안정감을 더없이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지나갈까, 글쎄 엔지니어링 적으로는 꼭 한번 매니저가 되어보고 싶다. 그간 PM격의 일은 많이 했었지만 EM은 CTO때를 제외하고는 없다. 한편으로는 SWE로써 기본기를 줄충하게 갖추고 조직에 엔지니어링적인 기여를 많이 하고싶다. 그러려면 꾸준한 공부밖에 없는 것 같다. 다행히 회사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무한대의 교육이 주어지기 때문에, 지금이야 사실 조금 쉬어가는 단계긴 하지만 올해가 지나고 나서는 좀더 엔지니어링적인 그 큰 그림을 계속해서 배울 것이다.

한편으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 다른것보다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불안감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게 경제적이던 심리적이던 말이다. 이것도 결국 나 스스로가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일관된 생활패턴과 일정한 사회적 위치. 허나 한편으로는 사회의 간접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내가 고생을 했던 것이 부모님이 내게 적어도 부모님의 아래에 있을 때에는 안정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해주셨지만 결혼 이후 독립을 하려던 내가 느낀 것이 그것이었다. 생각보다 홀로서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었구나 라고 말이다. 그래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고,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쉬운 행복수단(=술)만 찾은 것이다. 그 증거가, 지금의 비대해진 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런 안정감과 독립에 대한 비율을 계속해서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건강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간 건강을 너무 놓고 살았다. 중간중간 운동을 하긴 했지만 꾸준히 한 것이 극히 드물다. 내 몸의 상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몸무게가 큰 폭으로 증가했던 만큼 이상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꾸준한 운동을 해야한다. 유산소든, 근력이든 말이다.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게으름은 더 이상 핑곗거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극도의 안정감을, 스스로에게 가져올 것이다. 몸이 부지런한 것, 그것만큼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다시금 일어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