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시계를 없애고 나서. (ft. 찬물샤워)

작년부터 내가 습관들인 것이 있다면 바로 알람시계를 없앤 것이다. 10시취침 4시기상이라는 것에 대해 20살부터 뭐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류의 책들을 보면서 내가 정립(?)한 이 시간들에 대한 일종의 obsess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어쩌다 아이폰을 초기화하면서 10년 넘게 쌓아둔 Sleep Cycle의 데이터가 날라가 버리면서부터 갑자기 ‘데이터’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개인데이터에 꽤나 obsess되어있었다. 수면데이터는 12년, 몸무게도 15년, 운동기록, 식사기록 등 일전의 글에 언급한 ‘체크리스트’ 에 적어도 10년간 기록을 했었다. 그런데 그 기간동안 내가 이룬게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t at all. 그럼 나는 데이터를 왜 모았을까? 왜 매일같이 수면, 운동, 몸무게, 코딩시간, 식사 등을 기록했던 것일까.

나는 뭔가 과거의 기록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과거의 히스토리가 쌓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배운 머신러닝 기법에서는 결국 아무리 과거의 히스토리가 쌓여서 머신러닝을 돌려서 뭐 예측하는 그런것을 만들었다 치더라도 삶에는 워낙 방대한 변수들이 존재하고 이 변수들에 대한 feature engineering을 한다는 자체가 적어도 하나의 ‘개인’으로써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kaggle에 데이터를 공유해서 crowdsourcing을 통해 해결하는게 낫지. 아 물론, 내 몸무게 같은 것을 공개한다는 자체가 좀 꺼려지긴 하지만.

알람시계나 데이터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니 오히려 수면의 질이 높아지고 충동적인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사실 육아를 하면서 육아 스트레스, 특히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하면서 개인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에 대해서의 회의감을 술과 티비로 대변하면서 살았는데 어느순간부터 이런 잘못된 보상을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들었고,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 관리나 수면의 질 등에 대한 고민들이었는데 회사에서 감사하게도 수시로 버클리대의 심리학 교수들을 초빙해서 스트레스 관리 등에 대한 강연을 한 것이 있었다. 거기서 꽤 많이 배웠는데, 특히나 기억나는 것은 알람시계보다 body alarm을 따르라는 것과, 10-2시사이에는 꼭 수면을 지킬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시간 동안은 커피를 마시지 말것, 새벽운동이나 저녁운동이나 그게 그거라는 점, 머리가 복잡하면 딱 3번만 심호흡 해보라는 점,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라는 점 등. 이런 일종의 ‘좋은 말’ 에 대해서 좀더 객관적이고 최근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즉 evidence-based한 행동 강령(?)을 익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다른건 몰라도 내가 꼭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알람시계 없애기, 탄수화물 줄이기(=샐러드 섭취 늘리기), 일어나자마자 커피 마시지 않기, 물 많이 마시기. 거기다 찬물샤워까지. 결과적으로 이는 정말 좋은 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 계획을 없애자는 생각도 하고, 데이터나 뭔가 ‘할 일’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사실 지금까지고 걱정인 것은 내가 이런 ‘집착’을 버리는 행동 때문에 게을러지는게 아닌가 싶은데, 오히려 나는 집착을 버림으로 인해서 머릿속이 ‘정적’이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내가 굳이 목표를 세워서 뭐 술을 끊는다던가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에 불안함은 남는다. 계획을 없앤다는 것, 알람시계를 없애고, 데이터 수집을 중단한다는 것. 그럼 너무 삶이 흘러가는 대로 가지 않을까? 그럼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을까? 결국 지금의 내 생각의 추구는 그런 것 같다. 삶을 흘러가게 놔둬야 하는 것 말이다. 어차피, 삶이 생각대로 돌아가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큰 틀에서의 그것만 굳게 다지고 흘러가게 놔두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는 시간에 습관을 잘 녹이는 것 말이다. 그게 아마도, 나의 남은 삶을 더 견고하게 다지는 시간 장인으로써의 역할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