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식으로 커리어를 정의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연휴가 다가오는 요즘, 도통 나지않는 시간속에 한번은 다시금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써본다.

참 어쩌면 이 삶이란 자체가 끝없는 커리어 재정의의 연속인 것 같다. 연말이 되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쉽게 내 커리어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회사에 5년은 근무하려고 하는데, 마음같아서는 솔직히 평생 일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스타트업을 떠나오고 나서 그곳의 그때가 그리운 것이 사실이긴 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내 힘으로 창조했을 때의 그 즐거움이 말이다.

불확실성 가득했던 스타트업의 삶을 떠나온지 어엿 2년째, 요즘엔 다른 방향으로 스타트업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멘토, 어드바이저로써의 활동. 내가 뭐 성공한 스타트업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0여년을 바쳐 진행하던 세 차례의 스타트업 속에서는 내가 왜 ‘실패’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경험만큼은 값지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은, 나도 말을 해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는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는 고팠나보다. 어드바이저를 아무리 한들 그게 내 작품은 아니니깐. 하지만 스타트업이 과연 작품으로 대변되는가, 어쨌든 사업은 누군가의 자금을 들여서 이익을 내야하는 것이다. 일종의 투자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일전에 하던 사업들은 진정한 의미의 사업은 전혀 아니였다. 그냥 예술작품을 추구하던 것일 뿐이었지.

사업, 즉 스타트업이 동반되어야 할 것은 한사람의 천재가 아니다. 어떤 유기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기업이란 자체가 그렇다. 지금의 내가 소속된 회사도 막상 들어오고 나니 거대한 커뮤니티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 회사의 소속이라는 사명감과 함께, 특히 미래의 그것을 만든다는 사명감 하나로 일한다. 적어도 인터넷,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는 최고라는 생각 하나와 함께, 본인들의 전문성과 회사가 만들어둔 교육과 틀 안에서, 어떻게 보면 기계장치 속 톱니바퀴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 기계장치를 만들어가는 자체가 직원들이라면 말이 다르다. 이런 커뮤니티 속에서 직원들과 영광스럽게 함께할 수 있는 자체가 좋고, 그 커뮤니티 속에서 회사의 이득도 이득이지만 사람의 삶에서, 특히 미래에서 어떻게 좀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을 우리의 기술력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커뮤니티’ 속에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회사 내에서 내가 배우는 것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하다. 하루가 다르게 지적 욕구가 끝없이 충족된다. 물론 내가 부족한것도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blame하지 않는다. 스스로 꺠우치도록 기회를 준다.

어쩌면 그 부분이 스타트업과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수를 용납하는 커뮤니티, 근태보다는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그러다 보니 회사를 다니던 처음에는 이런 것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이 남는다고 심심해 했다. 대기업이 원래 프로세스가 느리구나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결국 작은 그것에서 시작된 기업, 즉 커뮤니티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큰 신뢰성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잘된 회사들을 보면 대부분 워라벨이 좋다는 이유는 심리적 안정성과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이것이 기반이 되어서 더 큰 아이디어가 나오고 안정적인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좀더 이런 기반을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근래 근처 회사들에서 들려오는 레이오프 이야기는 처음에는 조금 두려웠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결국 어떤 경제적 흐름에서의 그것이고, 결국 스스로 경쟁력이 없으면 그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도 정말 필요한 인재를 무턱대고 매크로이코노미 핑계대고 레이오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떤 회사, 어떤 팀을 선택하는 것은 내 선택이고, 어떤 회사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공짜로 돈을 주겠는가. 아무리 그 작업이 익숙하다 하더라도, 어느정도 몸값을 하지 않는 사람을 챙길 회사는 자원봉사라고 치부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올 한해 내가 가장 노력했던 것은 아이가 생기고 육아휴직이라 해서 그것으로 팀과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감사하게 주어진 18주의 육아휴직을 정말 계획적으로 사용했고, 내 레벨 윗단계의 기대치까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봤다. 물론 100%의 만족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괜찮은 퍼포먼스를 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매니저와의 대화에서도 그랬다. 아직까지 나는 매니저나 사수(TL)의 기대치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일년이 걸렸지만 어쨌든 팀과 회사의 개발 전 과정의 파이프라인도 잡았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하는지도 감을 잡았다.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나아가야 할지도 말이다.

이런 과정은 꽤나 힘든 과정이었다. 막연히 나는 18주 휴가가 있으니 스르륵 하고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하고, 충분한 계획성 있는 휴가를 가지고 싶었다. 내년 초에 2개월을 쉬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팀에 얘기를 해둔 것이다. 즉, 일년 전에 수시로 팀에 상기를 시켰고, 이에 대해서 어떤 부분을 내가 채우고 가야할지, 내 커리어 (+1 level)를 위해서 어떤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시간만 나면 얘기를 많이 나눴다. 다행히 우리 팀은 그렇게 큰 팀이 아니었고, 매니저와 TL과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매니저가 마이크로매니징 스타일도 아니었다. 충분히 나를 믿어주고, 나는 지속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조금 지겨울 정도로 업데이트 했다.

그 결과, 나름대로 팀에서 충분한 신뢰가 쌓였고 내게 할당되는 업무도 눈에 띄이게 범주가 넓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실 회사가 큰 만큼 내부 기술도 수없이 많고 공부할껏도 산더미이긴 하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cut-off하고 바운드리를 좁혀야 할지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적어도, 나는 SWE로써 내 경력이 발전되어 감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내가 +1을 계속해서 원하는 이상, 회사에는 기대치에 대한 투명한 metrics이 존재하고 이는 나 스스로를 발전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가 지금 바라는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되기까지는 크게 번아웃이나 도태됨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매니저가 되고 나서는 더 즐거울 것 같았다. 점차 SWE라는 자체를 명확하게 이해하니 그것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당장에 매니저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역량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싶고,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매니저를 달기 전까지는 지금의 회사 혹은 비슷한 규모에서 일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가고자 하는 결론을 내렸다.

기술적 커리어로는,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것들이 인하우스이기 때문에 뭔가 이 회사를 나가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있었지만 지난 글에서 말한것과 같이 뭔가 순수 SWE라기보다는 약간은 내부의 solution engineer같은 역할이기 때문에 개발 파이프라인과 여러 기술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도메인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좀더 소프트웨어 공학적인, 훨씬 포괄적인 것이다.

난 이 또한 하나의 기회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회사에서 표준으로 지정하는 자체는 좀더 잘 포장되어서 오픈소스나 GCP등으로 외부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그 내부의 컨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를 이룬 기반이 되는 기술 자체가 그렇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아니던가? 웹개발이던 어쨌던 개발을 하다 보면 결국 끝없는 기술적 욕구충족을 위해서 나아가는 그 최종점은 최초 그 기술이 시작된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빅데이터와 클라우드에 대한 기술적 충족을 그토록 바래왔고, 메이저한 기술을 ‘시작’ 한 곳에 들어간 지금으로써는 더 없이 좋은 배움의 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움’이 실제로 내가 해야하는 기대치와 적절히 충족되는 환경에 있는 이상, 그래서 나는 지금의 회사에 5년, 10년 있고자 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접한 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를 살펴보면 그저 뭐 하나 만들고 싶어서 밤낮으로 그것에만 매달리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밤새도록 게임엔진 하나 개발해보고, 중학교때 php로 게시판 회원가입 하나 만들어보고, 대학교때, 스타트업을 할 때에 밤새도록 해서 내가 생각하는 대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그때의 행복함은 지금도 기억속에 한가득 하다.

그런데 그건 스타트업이 아니다. 난 사실 스타트업, 사업과 내가 즐거워 하던 것의 정의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경제적인 기반이 성립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유기적으로 잘 돌아갔을 때의 즐거움은 확실하다. 하지만 경험상 스타트업은 1%도 안되는 도박인데, 내가 만약 재산이 1억이 있으면 1%의 확률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 확률 1%로 정말 미친듯 잘되서 뭐 한 100배의 수익, 10배의 마진, 하지만 기간이 5년이 걸린다면 그 시간동안의 심리적, 신체적, 물질적 투자를 모두 감안한다면 결국 이건 1%보다 훨씬 낮은 가능성의 도박인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내가 하는 스타트업의 정의는 그저 ‘도박’으로 정의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해보니, 진짜 시간이 5년 남아돌고 그간 충분히 먹고살 수 있고, 아무일도 안하고 5년간 이를 위한 충분한 자금여력이 있고, 정말 철저히 조사된 시장가능성이 있는 제품이 있다면 모를까. 아니, 그렇게 되도 글쎄 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미만큼은 분명히 있긴 할 것이다. 마치 게임처럼. 어쩌면 내가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렇게 스타트업을 했을 때의 생각을 계속하던 것은 마치 금단현상과 같다. ‘창업중독’ 이라는게 있다고 하지 않던가? 돈은 둘째치고, 밤새 개발하며 하던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와는 180도 다른 지금의 회사나 지금의 정적인 (=안정적) 삶 속에 극한의 재미를 가져오는 쾌락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스타트업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대신, 나 스스로를 예술가로 칭하기로 했다. SWE, 아빠, 남편 등의 여러 역할이 삶의 90% 라면 10%는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음악을 한다. 음악도 사실 쉬운건 아니다. 생전 처음 공부하는것이 투성이다. 내가 무슨 음악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배울것도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재밌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서 큰 돈을 벌자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만들고자 하는 그 세계가 확실히 존재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가진 풀스택 개발과 데이터 시각화와 전자음악을 접목하는 인터렉션을 말이다.

글이 엄청 길어졌는데, 어쨌든 난 지속적으로 충동적으로 느껴지는 스타트업 자체는 어쨌든간에 가정이 생기고 안정적 삶으로 돌아가면서, 또한 금전적 파이프라인을 만들면서 더 이상 불확실성(=도박)을 삶에 가져올 여유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막말로 아이가 올해 생기고, 커가면서 아이와 노는게 즐겁지, 아이는 뒷전으로 하고 사업만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예술이나, 지적인 욕구의 충족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올 한해 아이를 돌보며 회사일과는 별개로 음악공부를 시간날 때마다 했었는데 난 좀 더 시간을 내고 싶다. 욕심일까, 욕심일 것을 분명 알고 있다. 그래도 갈수록 아이를 키우는 것이, 지금은 거의 100%의 책임을 지고 있는데 학교를 가고 하면서 조금씩 나의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뭔가, 솔직히 요즘엔 새벽운동도 새벽기상도 못하겠는 것이 모든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후회롭지도 않지만 나 스스로가 더 부지런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함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 같다. 자책해도 난 충분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더 부지런하고 더 스스로의 시간을 내서 어차피 스타트업을 자의든 타의든 못한다면 지적 욕구와 예술을 위한 시간을 통해, 지금까지 끝없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들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요즘엔 책을 더 많이 읽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내게 가져오는 것이 참으로 큰 것 같다. 처음에는 몇 차례 오늘만 참으면 아이가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밤에 힘겹게 재우곤 했는데, 결국 이런 삶이 하루 이틀 한달 두달 그렇게 9개월이 되었다. 그래서 보면 시간이란 자체가, 내겐 일정한 시간표라는 자체가 하루하루 흘러간다. 그렇게 미래가 연결되었다. 적어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20년 이상의 삶이 그럴 것 같다. 그럼 나는 이 하루하루속에 어떤식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주입해야 할지, 그것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것 같다. 한 예로 수면에 대해서 육아 초반에는 꽤나 불규칙적인 수면과 불면증 등이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알람을 없애버리고 찬물샤워를 시작하고 나서 거짓말처럼 모든게 사라졌다. 그렇게 아주 작은 변화와, 작은 시간 속에 내가 어떻게 내가 원하는 예술과, 지적인 욕구충족의 시간을 넣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긴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최근에 내가 원하는 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을 잡게되는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지만 어쨌건, 지금의 내 목표는 안정적 삶 속에서 어떤 작은 전환점이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만족을 이뤄줄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답은 나왔다. 계속해서 고민해볼 수 밖에 없다는 결론.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꾸준히 글을 쓰면서 어떤 부분에서 내가 발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