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단체여행 끝, 넓어진 마음

인간은 누구나 “변화” 라는 것을 겪게 된다. 


변화라,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이 단어. 20살 이후부터 거침없이 변해온 내 삶 속에 나는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거침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올해 그 시발점이 된 것은 다름아닌 토플성적. 교환학생 커트라인을 넘은 나는 내심 기뻐하며 학점도 낮추고 GPA를 목표 대학에 원하는 만큼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교환학생을 포기했다. 왜? 아무리 교환학생이라도 돈이 한두푼 드는 것이 아닌데 차라리 인정받고 대학원을 미국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이다. 그래서 급격히 유럽여행으로 방향을 돌렸다. 정말 “급격하게”. 2개월 전 나의 선택은 지금의 엄청나게 성숙한 나의 모습을 만들었다.

꿈 = 거짓

프로그래머를 꿈꿨다. 그리고는 디자이너를 버렸다. 어려서부터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내겐 디자이너의 그 창조에 있어서 고달픈 과정, 그것을 나 자신에게 핑계로 들이며 나를 프로그래머가 되야 한다고 몰이켰다. 프로그래머의 삶을 공경해서도 아니다. 그저 사회속에서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중에 보다 더 성공 확률이 높은 쪽으로, 그리고 지금의 내 전공으로 맞춰세운 것이다.

27년만에, 유럽여행을 하며 나는 왜 이것을 알게 된 것일까.

즐거운 생활이 많았다. 유럽여행에서, 위법이 아니고서야 술먹는 것은 자유고 춤추는 것도 자유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피아노 외에 나는 할줄 아는 것이 없다며 내게 한계점을 세웠다.

그런 내가 40여명의 호주, 캐나다 친구들 앞에서 내 소개를 할 때 DJ를 연습중이라고 자청했다. 그리고 단 1회였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을 믹싱하여 틀어줬다. 물론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나는 틈틈히 버스에서 국가를 이동할 때에 음악을 믹싱하곤 했다.

그리고 춤을 췄다. 클럽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가 “갑”이였던 이 클럽에서 나는 그저 되지도 않는 춤 실력으로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는 “자신감”으로 밀고나갔다. 그런 나를 외국 친구들은 반겨줬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내가 그랬다면 어떠한 오버하는 존재 혹은 비호감이었을 텐데, 그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외면

한국사회를 살면서 나는 수 많은 외면을 당하고 살았다. 벤처를 할 때에는 20살밖에 안되는 놈이 사업을 한다는 외면, 춤을 춘다면 “90kg에 육박하는 네가 무슨 춤이냐” 는 외면, 몸매도, 얼굴도 못생긴것도, 잘생긴것도 아닌 그저 그렇다는 이유로 내가 멋지게 보이고 싶은 자리에서는 항상 외면을 당하기 일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외면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들리는 단지 몇마디의 소리에 나는 그렇게 민감했던가, 그리고 내면의 벽을 나 스스로 만들고 거기에 같혀서 산 것이다.

그것의 존재를 알고서도 난, 탈출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탈출하는 내가 두려웠다. 본래 살던 대로 살고자, 더 나아가 사회의 일반적인 룰 속에 나 자신을 가둬버린 것이다.

결국엔 내가 바라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인데, 삶이란 왜이리 웃길까. 하하.

일으킨다.

내게도 장점은 많고, 내게도 생각은 많다. 나를 좋아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많은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하는 행동, 그것에도 분명 “멋”은 있다는 것을.

느낀대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간다, 나는. 그리고 일으킨다.

즐거운 일을 할꺼야. 머리아픈 프로그래밍 이론따위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겠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할꺼야. 나도 그 필요성은 알아. 하지만, 지겹고 귀찮아. 홈페이지를 만들 때처럼 나를 미치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찾을꺼야.”

이런 생각을 미친듯이 또 미친듯이 한달 내내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만 할거다 정말. 더 이상 가식따위도 필요 없고, 20대 후반인데 한번 내가 좋아하는 일 멋지게 해보는게 나이들어서는 못갈 여행을 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