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후, 놓치고 살았던 것.

벌써 9월이 성큼 다가왔다. 시간이 빠르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는데 다음달이면 회사를 다닌지 일년이다. 벌써 일년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니 시간이 갑자기 빠르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일년을 기점으로, 나는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1월에 새집에 이사를 가고, 3월까지는 열심히 살았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아이가 태어날 것을 생각해서 좀 많이 여유있게 보냈다. 4월 한달을 육아휴직으로 쉬고 5월에 평가도 잘 받았다. 그리고 5,6,7,8월까지 양가에서 부모님들이 오고가시면서 아이를 돌봐주셨다. 나도 회사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작업을 열심히 하곤 했다. 크게 문제는 없었다.

양가 부모님이 가시고 나와 와이프 둘이서 아이를 돌보면서 동시에 서로 회사일도 하면서부터 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특히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줄곧 새벽수유 등을 도맡아서 했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부모니깐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중이 되서야 내가 상당히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적어도 새벽수유를 제외하면 아이를 돌볼 필요는 없었는데, 진짜로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순전히 나와 와이프의 손으로만 아이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시금 살펴봤을 때, 특히 소아과 의사의 여러가지 조언 이후 아이를 관리하는 방법이 180도 달라졌고, 다행이 아이가 잘 적응을 해서 지금은 7시-4~5시의 9~10시간의 수면패턴은 확실히 잡혔고 덕분에 나도 수면이 회복되니, 다시금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에 대해서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의 지난 5개월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흡사 최면에서 벗어난 것처럼, 어떠한 환각(?) 속에 잠시 있다 온 것 같다. 아마도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올해는 9월이 다가왔다. 지난주에 향균 물티슈를 들고 집안을 이리저리 닦는데 이사 이후 거의 처음으로 닦는 것이더라. 물론 청소는 습관처럼 주말에 열심히 했었지만, 내가 이렇게나 정신이 없었을까. 정말 냉장고 하나를 정리하는데에도 그동안 요리한 적이 거의 없어서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가물가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난 나 스스로의 관심사를 놓치고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작년말쯤에 나는 머신러닝 공부를 중단하기로 결심했었고, 사이드프로젝트도 중단하기로 했었다. 육아와 회사를 제외한 것은, 특히 ‘개발’에 있어서는 회사에만 온갖 노력을 붓기로 생각하고, 이를 위해서는 업무시간을 끝마치고 나서는 개발을 안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개발과는 별 상관없는 음악공부를 그동안 간간히 했었다.

결론적으로 이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왜 회사에서의 삶을 공과 사를 구분하려고 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이겠지만, 본래 나는 개발을 좋아하고 우리 회사의 tech stack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즐길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한 것인데 공사의 구분이라니, 이건 너무나도 크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개인개발이나 개발공부, 테크공부에서 손을 뗀지 일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 그토록이나 자신감 넘쳤던 나는 회사에서 왠지모르게 점차 찌들어갔다. 그리고 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래서 더 지난 시간들이 마치 환각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딱 일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개발에 있어서의 열정이 꽤나 사글어들었다. 나는 회사를 위해 개발력을 집중한다 생각했는데, 개발공부와 개인개발 등이 오히려 개발력을 감소시킨 것이다. 그토록이나 많이 저장해뒀던 회사 내의 레퍼런스는 벌써 수개월째 읽히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정말 이토록이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낼지 누가 알았는가.

음악공부를 하다보니 느꼈지만 첫째로는 음악으로 먹고산다는 것은 내가 천재가 아니고서는 무모한 짓인 것 같고, 둘째는 어떤 곡을 만들기까지는 기술부터 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개발만 거의 12년 정도 해서 지금의 스킬이 만들어 진 것인데, 음악은 피아노를 치는 것 이외에는 딱히 공부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온전히 ‘취미’로는 상관없겠지만 나는 왜 이를 통해서 부차적인 수익을 생각했던가, 이게 가장 아이러니했다. 개발만 열심히 해도, 그리고 난 스스로 개발을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고, 개발은 평생 할 수 있을텐데 왜 스스로의 장점을 자꾸만 죽이려 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육아때문에 그랬겠지 싶다. 아니, 그렇게 핑계를 대고 싶다. 그래도 이제라도 나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반년의 시간, 역시나 모든 일에는 익숙해지는 데에 반년이상은 걸린다는 내 이론이 맞았다. 하지만 이 음악공부는 더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다시 머신러닝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음악공부도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주’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굳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절대로, 회사에서 승진이나 공/사를 구분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런 성향의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회사가 그런 성향이 아니다. 나는 덕업일치를 위해서 회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동기부여는 불법적인 행위가 아닌 이상, 여러모로 공부하고 개발하면서 윈-윈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발력, 이제 다시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