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되지 않는 잉여한 시간,

물론 나도 아직 잘은 모르겠다. 이러한 잉여한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돌이켜보면, 스무살 이후로 정말 나는 쉬어본 적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어린날의 그릇된 창업이 수년간 내게 가져온 것은 크나큰 압박이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되고, 뒤쳐진다는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몸바칠 각오로 SI를 3년간, 거의 쉬지도 않고 달려왔으며 복학 후 휴학 한번 하지 않고 대부분의 학기를 전공으로 가득 채워서 수강해왔다. 사업을 하던 3년간의 생활도 나는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였으며,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서 보냈다. 정말 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런 삶 속에서도 물론 ‘쉼’은 있긴 했다. 미국여행과 유럽여행을 다녀온 약 3개월간의 시간이 그러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어떠한 프로젝트에도 투입되지 않고 보내온 그 시간. 시간과 공간과 단절되 있는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느껴왔다. 그리고, 지속적인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지금의 미국유학을 갈망하고, 작년 한해를 유학준비 속에서 보내게 하였다.

2015년이 시작되고 나서, 나는 약 반년간의 자유시간을 받았다. 물론, 결혼준비라는 큰 일정을 앞두고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계절학기를 비롯해서 졸업을 위한 모든 것이 끝난 특히 이번주가 나는 솔직히 말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딘가 소속되있는 입장이 아닌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물론 스스로 만든 메튜랩 이라는 자기브랜드가 존재하고, 사무실도 있지만 이번주에는 특히나 나가고 싶지 않더라. 나쁘게 말하면 지금 상태는 ‘백수’다. 그래서 더욱 어색했다. 대학원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되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언제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대학이라는 곳과 사회에 속해있을 때에는 수업시간과 업무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시간을 나 스스로 조절하고 나아가야 한다. 꿈꿔왔던 삶인데, 왜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이번 한주를 보냈다. 새벽 네시에 기상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지만, 새벽녘에 이리저리 정리를 하다 운동을 하고, 조금의 잠을 청한다. 열시즈음, 어머니와 강아지 산책을 나선다. 거의 한시간이 넘도록, 카페에서 어머니와 수다도 떨고 큰 운동은 되지 않지만 어쨌든 걷다가 들어와서 어머니와 동생과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가끔 중간에 아버지도 집에 일찍 들어오신다. 그래서 가끔은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마치 주말같은 주중이 지나간다.

따지고 보면 나는 약 12년간을 집에 제대로 들어와서 보낸 적이 없다. 하루의 2/3 이상이 사회와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으니깐. 집안에서도 내가 없는 시간이 많이 익숙하긴 하다. 하지만 작년부터일까, 나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점차 지쳐갔다. 쉽게 만난 인연은 마찬가지로 쉽게 헤어진다. 돌이켜보면 내게 과연 진정한 친구가 얼마나 남아있던가. 제작년 말에 그런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유럽여행을 하며 만난 40여명의 호주 친구들, 그들조차 짧지만 스쳐가는 인연이었다. 그러다보니 문득, 나는 수년간 나와 함께한 가족의 존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고, 특히나 끌로이에게 무심하고 있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사실 친구들과의 헤어짐이라던가 직장동료들과의 헤어짐은 익숙하지만 가족과의 헤어짐은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들다. 그런데 정작 나는 피곤하다는 것을 핑계로, 집에서 얼마 보지도 못하는 부모님과 동생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년간 고민했다. 내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끝에 끌로이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주에 네차례의 산책을 함께하며, 내가 어머니께 느낀게 바로 그거다. 가족이 함께있을 때, 비로서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확인하고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 작년 말부터 어머니와 자주 강아지 산책을 하면서 사뭇 어머니가 이렇게 작아지셨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머니의 가장 큰 기쁨이 나와 함께하는 것과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니겠던가.

그런 것 같다. 결혼을 앞둔 이 반년이란 시간, 그 시간은 내게 잉여함의 시간이 아닌 더 크게 가족을 챙기라고 마련한 시간인 것이다. 참으로 무의미하다고 느낀 이 시간이, 내겐 더 가족과 함께하고 가족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그런 소중한 시간.. 다시금 가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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