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안정이 주는 의미는 무의식속에서의 답인가.

요즘의 시간들을 나는 열심히 그냥 본래 할것들만 하면서 보내는 것 같다. 작년이야 육아 초반이라고 해서 어쩌면 집도, 직장도 안정되고 나서 조금 더 여유를 둘 새도 없이 새가족을 들이는 자체가 settle down되기까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릴줄은 몰랐다. 사실 지금도 온가족의 기침과 감기에 고생을 하고있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루에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루틴이 생기니 나로써도 이젠 전과는 다른, 적어도 지난 글에서 말한 관리안된 상태가 아닌 스스로를 무탈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결국 안정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모든게 다 때가있나보다. 그 ‘때’까지 기다리는게 사뭇 생각보다 힘들었다. 미국온지 어느덧 8년, 사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잖게 남아있지만 그건 차츰 하면되는 것이고 아주 막 P0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정말 어떻게던 아이를 재우고, 11~12시에 깨더라도 다음날 4시에 일어나서 내 할일을 묵묵히 하고, 다시 잠에 들더라도 그 4~6시의 시간을 보낸다는게 그렇게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몰랐다. 가족의 루틴이 생기고, 더는 내가 예상하지 못하게 뭔가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고.. 어쩌면 이게 그토록이나 내가 이 블로그나 일기에서 가지고 싶던 안정감이 아니었을까.

내가 안정을 추구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그냥 뭔가 흐름이 끊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삶이 불확실한 것은 맞다. 그래도 적어도, 대비는 할 수 있다. 당장 내가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내 건강이, 혹은 가족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사기를 당할수도 있고, 아이가 아플수도 있다. 2주전에 아이가 아퍼서 갑작스래 돌봐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모든게 좋다고 해서 막 좋은것도 아니다. 어차피 삶은 나와 가족 중심적으로 가야하고, 그렇게 보수적인 상황이 되어야지 일차적으로 내가 안정되고, 내 가족이 안정된다. 그래야 따뜻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곳이 어쩌면 나를 비롯해서 모든 가족구성원이 돌아올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10대, 20대를 거치면서 30대 중반까지 너무나도 자주 야생에서 놀았던 것 같다. 정해진 path보다는 나는 무조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차례의 사업이 그 가장 큰 예이며 병특도 하나의 예시이다. 물론 병특은 나름 성공적이었으나 사업은 모두가 실패였다. 모든걸 계획하에 진행해야 하는 나의 성격상, 사업계획서가 하나둘 무너져나가면 나의 멘탈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더라.

나 스스로를 잘 관찰해보니 난 risk-tolerance가 아주 낮다. 현저히 낮다. 리스크 테이킹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상황을 내 투자적 성향에서 직감했다. 충분한 리서치가 없이는 리스크를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기존까지는 충분한 공부가 없었으니 당연히 불확실, 불안정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했던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미국에서의 삶도 충분히 책이나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미리 알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러지 못했으니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와이프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게 하나의 인생의 우여곡절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정말로 상당히 보수적이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책임져야 할 식구가 생기고, 비단 미국생활 뿐만은 아니겠지만 눈뜨고 코베이는 상황에서, 막말로 차타고 한 30분만 나가면 각종 총기와 절도가 판치는 동네와 맞닿아 있는데 내가 무엇을 믿고 그저 안정속에서만 스스로를 지키고 있을까? 당장 우리 동네만 해도 잠깐 방심하면 택배가 절도되고 있는 상황인데.

보수적이라, 정말 태어나서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 스스로가 보수적 성향이 될수록 안정이 찾아오고, 난 거기서 또다시 꾸준함을 가지고 하나 둘 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적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이상 미뤄왔던 모든것들이 꾸준함을 요구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뭔가를 조금 하려하면 어떤 큰 일이 생겨서 흐지부지되고 그런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뭐 사실 모든게 핑계라면 핑계로 들 수는 있다. 아니, 그냥 핑계긴 하다. 모르겠다. 핑계인지 아닌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게 핑계던 아니던, 내 마음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회사를 가기만하면, 집을 사기만 하면 삶이 안정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 내 마음 자체가 여러가지 요건들이 준비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집을 처음 사고 가구를 들였을 때의 느낌과 지금이 다른 것이 그렇다. 안정이 된듯 보이면서도 나는 과거의 습관을 계속 찾고있던 상황은 결국 안정이 안되었던 것이었다. 적어도 마음이 그리 가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전 봤던 법륜스님의 말씀이 정확히 내 안정에 대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생각은 의식, 마음은 무의식. 마음에 감동이 오면 무의식과 바로 연결이 된다. 감동을 하면 변화가 쉽고 생각으로 이해하면 거품처럼 꺼져버린다. (되돌아 갈 가능성이 있다.) 죽을 각오로 의식(=생각)이 있어야 무의식이 바뀐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이제서야 대부분의 것들이 보이는 이유는 하루하루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야할 일들만 하다보니, 그 의미를 찾지 못해서인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삶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어떤 요소가 바뀌고 그런것보다는 그저 나는 마음이 어느정도 준비가 되기까지, 즉 무의식속에 내가 정말로 ‘안정이다’ 라고 느끼기 전까지 기다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건데, 그것밖에 없다. 그래서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계획, 즉 생각은 그냥 의식을 하는 것이지 결국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무엇을 하는가? 술먹는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몇 주간 크게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조금씩 그 무의식 속에서 술에 취해서 사는 나 스스로를 끄집어 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여하튼, 나는 이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짓이든 할 것이다. 무엇보다, 삶을 너무 더 크게 변화시키고 싶지 않다. 마치 5년~10년을 연구하는 연구자처럼, 난 지금처럼 4시에 일어나서 책상에서 사색하고 하고싶은 글을 쓰고, 공부하는 것이, 그리고 나서 일과 가족을 위한 삶을 보내는 것이 결국 내가 원하던 삶이다. 그렇게 나는 평생을 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블로그에서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그 안정을 찾기위해서 그토록이나 생각과 고찰을 하던 삶은 이제 없을거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온전한 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이 그토록 내가 바라던 하루 3시간의 기쁨을 매일 기록하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