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의 버림.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근황은 육아와 회사일을 열심히 하다가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 10일정도의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Lake Tahoe라는 곳에 가족과 아이와 함께 약 1주일 정도를 보내고 있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감기때문에 고생아닌 고생을 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나는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있고 이것이 사실 어쩌면 uncertainty속에서 고민하던 나의 종착점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육아 덕분에 요즘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됬다. 약 8-9시면 잠자리에 들게 되었고 4-5시면 기상을 하게 된다. 요즘엔 아이가 4-5시간의 꽤나 통잠을 자는 경우도 있어서 수면의 질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새벽과 특히 저녁에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업무를 마치는 시간인 5시 이후 약 3시간의 시간, 그리고 새벽부터 출근 전까지의 시간까지. 특히 요즘엔 새벽에 대해 생각이 많다. 정확히는 새벽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내가 그간 집착을 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더 크게 생각이 든다.

집착이란 무엇일까, 사실 내가 사업에 욕심을 걸었던 것도 집착이었다. 스무살부터 두 번의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성공 확률이 0.1%도 안되는 것에 확실한 사전조사 없이 내가 너무 큰 자신감을 걸었던 것이 큰 오산이었다. 취업이나 미국유학, 대학원 등 한번씩은 실패한 경험이 있는 모든것들이 그랬다.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 내가 정말 잘 맞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선택했던 결과였다.

최근 취업 이후 그런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은 많이 꺾였다. 삶이 불확실하다고 생각해서 무턱대고 저지르곤 했는데 사실 잘 찾아보면 어떤 삶에 대한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특히 책에 그런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커피챗 등 가벼운 채팅을 통해서 내 생각을 미리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그런 proactive/feedback-based 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스스로의 변화였고, 결과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예컨대 최근에는 내 커리어를 어느순간에 PM으로 전향하고, 다시 스타트업의 CEO로 돌아가거나 C레벨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회사마다 PM의 입지가 천차만별이고 업무 자체도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하마터면 몇 년을 소비해서 또 다시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던 것을 ‘미리’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지금은 깨끗하게 접고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커리어 뿐만이 아니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집착했던 것들이 그렇다. ‘금주’ 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술은 무조건 끊어야 한다 생각했고, 거기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 아니었다. 단순히 모아니면 도의 사고는 아무 대책이 없는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와 비슷하게 새벽기상이 그랬다. 나는 무조건 4시기상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4시기상이 어디서 왔는가 찾아보니 무려 2008년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책을 찾아보고, ‘3시간 수면법’, ’18시간 몰입의 법칙’ 등의 책에서 얻은 생각이었다. 4시기상=성공 이라고 집착했고, 14년동안 ‘4시’라는 숫자에 집착했다. 그리고 새벽에 꼭 공복유산소운동과, 공복 몸무게 측정에 집착했다.

내가 이것들에 집착한 이유는 사실 어느정도 효과를 초반에 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새벽기상을 통해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나를 기분좋게 만들었다. 예컨데 매일 5시50분까지 토플학원에 가장 먼저 제일 앞자리에 앉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성적이 좋았던가, 매일 몸무게 측정을 해서 내 몸무게가 원하는 수치로 되었는가, 공복유산소운동을 해서 과연 내 컨디션이 좋아졌던가, 매일 수면기록을 하면서 과연 수면의 질이 좋아졌는가.

기록들, 그 기록들이 그랬다. 지금까지 10년을 넘게 매일같이 기록을 하면서 나는 어쩌면 그 기록이란 행위에 집착을 하고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운동하거나, 밤에 몸무게측정을 하면 무엇이 다를까? 아니, 아에 몸무게 측정을 한 1주일에 한번씩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매일같이 달라지는 눈금에 내가 집착을 해야했을까? 운동도 그렇다. 꼭 ‘매일’에 집착해야 했을까? 4시기상도 그렇다. 꼭 4시라는 숫자에 집착해야 했을까.

나는 삶이 흐트러질 때마다 내가 4시기상을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삶이 흐트러질 때 나는 술을 찾았고, 그러면 다음날 늦게 일어나기 일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난 5년을 넘게 난 희안한 것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정작 문제는 내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겠다고 선택한 자체였다. 그것이 지난 5년의 불확실성 속에서의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었다. 웃기게도, 육아 이후 나는 이런 4시기상, 매일운동, 매일기록이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되려 새벽운동이 컨디션 저하를 가져와서 회사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 정말 내게 맞는 것인가.

나는 내게 맞는 생활패턴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은 내가 새벽기상을 하던 안하던, 새벽 운동을 하던 말던 결국 그걸 지켜보고 알아주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 삶은 나의 만족이고, 내 건강은 나의 건강이었다. 그래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게 과연 맞는 시간과, 내게 맞는것들은 무엇인지 정말 ‘나’의 기준으로써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저녁운동을 해보고 있고, 4시 대신 5-6시에 기상하고, 일기도 잠들기 전에, 체크리스트도 잠들기 전에, 심지어 공부도 저녁에 시간이 남으면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게 맞는 삶이기도 한데, 왜 나는 새벽에 그렇게 집착했으며 새벽기상과 일정이 안되는 날에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했는지.

그렇게 나는 점차 집착을 버리고 있다. 요즘에는 ‘미술’이나 ‘풀스택’에 대한 집착도 버렸다. 사업에 대한 집착도 버렸다. 심지어 유라임에 대한 집착도 버려서 예전의 소스코드를 버렸다. (지운 것이 아니라, 만약 개발을 하면 새로 개발을 하기로.) 대신 내게 맞는, 내가 원하는 삶을 더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단은 본래 하고싶던 전자음악부터 시작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은 최대한 회사의 역량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고 있어서 따로 사이드 프로젝트는 안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도 충분히 교육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엔지니어와 매니저로써의 커리어는 회사로 충분한 것 같다. 브런치에 화려한 글을 쓰려던 집착도 버렸다. 출판에 대한 집착, 유튜버에 대한 집착, 모든 집착을 버렸다.

그렇게 집착을 버리니 진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이는, 요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