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미룰것들.

최근 아담 그런트의 오리지널스라는 책을 보았다. 책 내용은, 세상과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에 대한 내용. 내용이 상당히 참신했는데, 약간 뭐랄까, 괴짜들에 대한 분석을 저자의 식대로 해석해 둔 것이다. 사실상 괴짜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부류가 아닌 어떤 차선책 등의 대책을 마련해두고 하나의 일에 몰두한다는 얘기. 흡사 내 얘기를 하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특히, 대부분의 비순응자들이 일을 끝까지 미루는 경향이 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게으른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에 최대의 집중도를 보여서, 즉 ‘현명하게’ 일을 미룬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책을 좀 보다가 2/3이후 부분은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않아서 완독을 했음에도 앞부분밖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책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내 개인적으로 느꼈을 때, 지금의 내 머릿속을 아마 현명하게 잘 미루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글을 한번 써본다.

근래들어 두 차례의 글을 통해 나는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고 여유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회사/가족/친구/개인/공부 정도의 삶의 분류를 나누고 이에 따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밸런스라기 보다는 어떻게 보면 나는 너무나도 많은 일을 이 분류 속에 집어넣곤 한다. 가장 간단한 예로는 공부라는 범주에 있어서, 그간 내가 미뤄왔던 많은 것들. 예를들어 하루 한시간 논문 정독하기, 내게 맞는 연구분야 찾기, HCI공부하기, ML공부하기, PL공부하기, 클라우드 컴퓨팅 공부하기, OS/알고리즘/DS/AI 다시 공부하기, SOA공부 등등등. 너무나도 많은 공부분야를 사실상 나는 거의 다 미뤄왔고, 이제와서 여유시간을 가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뤄왔던 공부를 한다고 몰아치다가 결론적으로 하루에 한 분야도 제대로 공부하기 힘든 내 모습을 보았다.

사실이 그러하다. 학교를 다닐 때야 커리큘럼도 있고 숙제, 시험 등이 있어서 억지로라도 커리큘럼에 맞춰야 했지만 독학은 그렇지 않다. 모든게 나 자신과의 약속이고, 혹은 코세라 같은 MOOC를 듣는다면 거기에 맞춘 커리큘럼을 따라가지만 대부분 쉬운 pace이거나 self-pace의 경우가 많다. 그럼 또 5년간 빠른 커리큘럼에 익숙한 나머지, 저정도 페이스는 나도 금방 따라가겠지, 그러는 순간 이과목 저과목 넣다 보면 어느새 금방 포기하거나 미루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어공부도 공부의 일환이지만, 이 또한 시간내서 한두 문장씩 외우자 라던가, 예전 GRE하던 시절에 단어장 보기, 이근철쌤 팟케스트 듣기, 원서읽기 등등. 이런것들 또한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나마 팟케스트는 출퇴근할때 차에서 듣기라도 하지, 다른것들은 전혀 할 시간이 없다.

회사일도 마찬가지. 사실 회사일은 많이 쳐내긴 했다. 특히 약 3년간 미뤄온 그룹웨어 리뉴얼 프로젝트. 이 또한 지난주에서야 2년만에 소스코드를 열어보고, 이에 대해 작업 재개한다고 본사에 얘기를 했는데 무턱대고 드는 생각에는 이 프로젝트를 3개월이면 다 하겠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보니 일주일에 하루도 작업하기 힘들다. 물론 유라임이라는 현재의 가장 큰 주체가 있지만, 이런 페이스대로라면 반년 정도 걸려야지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생기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또 무시할 수 없어서 이또한 우선순위가 높기 때문에, 서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도 제대로 진행될 확률이 적다.

개인적인 일들, 하루에 꾸준히 하는 일들이야 몇년간 해서 적응이 되었다. 특히 요즘엔 ‘건강’에 많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라 요가도 시작했고, 술도 많이 줄였다. 아마 여유시간이 생겨서 가장 꾸준히 잘 관리가 되는 부분이 아닐까. 독서도 매일같이 꾸준히 하고 말이다.

가족에 관계되어서는 사실 결혼 후에 가장 잘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예컨대 내 동생과의 소통이 많지 않고 집안일도 전적으로 내가 다 하는것도 아니다. 요리나 청소 정도는 많이 하지만 설거지나 빨래와 같은 부분은 끌로이가 전적으로 하고 있다.

친구에 대해서는, 사실 미국에 와서 그냥 포기했다. 여기서 생긴 친구정도로 만족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세번, 한달에 10회 이상 있던 모임도 여기서는 한달에 한두 번 정도로 확 줄였다. 대신, 한국에서의 친구들은 진짜로 친하고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소통하지 않는다.

실상 이렇게 따지고 보니 내가 미룬 일들은 ‘다이어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공부에 극한된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배우고 싶은 것”을 무작위로 적어본다면..

  • 전자음악공부. 특히 EDM
  • 역도 (power lift) 시작
  • DJ프로젝트 개발 (앱)
  • 논문(페이퍼)쓰기 혹은 특허
  • GRE취득하기, 박사과정 준비하기, phd진학하기
  • 클라우드 컴퓨팅 공부
  • 머신러닝/딥러닝 공부
  • HCI공부 (주로 인터페이스)
  • 코딩 공부 (인터뷰용)
  • OS공부
  • AI공부
  • Software Engineering공부
  • DataStructure공부 (인터뷰용)
  • 알고리즘 공부 (인터뷰용)
  • PMP 강의듣기 및 자격증 취득
  • Calculus/Linear Algebra 공부
  • Hadoop 공부
  • Swift 공부
  • ES6/React/Redux공부
  • Scala공부
  • 다른 FP언어들(erlang, kotlin등) 공부
  • 영어공부 – ESL
  • 영어공부 – ToastMasters
  • 영어공부 – 전화영어/Skype
  • 스타트업 공부 (사업관련) –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다.
  • 가톨릭 성경 공부
  • UI/UX 디자인 공부
  • 타이포그라피 공부
  • 패션, 스타일(주로 suit) 공부
  • 미국 역사 공부
  • 철학/심리학 공부

사실 이렇게 적고나서 보니 사실 대부분이 내가 2013년부터 그간 미뤄왔던 것들이다. 생각 외로 이룬것들도 많긴 하다. 그래서 그냥, 과감히 쳐낼껀 취소선으로 쳐내버렸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학부때 배웠던 과목들은 물론 내가 그때는 깊게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일차적으로 배웠으니 굳이 이 바쁜 때에 공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몇몇개는 취미로써 배울수도 있다. 뭐 패션이라던가 미국역사라던가, 이런것은 책을 읽음으로써도 해소될 수 있다. 굳이 내가 ‘공부’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물론 어느정도 기본이 무엇인지 알고 나아가야 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당장 배울 필요 없는것들은 과감히 쳐내버리고 공부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면:

  • 습관으로 배움
    • 영어공부 – ToastMasters
    • 논문(페이퍼)쓰기 혹은 특허
    • 코딩 공부 (인터뷰용)
  • MOOC로 배움
    • 머신러닝/딥러닝 공부
    • HCI공부 (주로 인터페이스)
    • ES6/React/Redux공부
    • Scala공부
  • MOOC + Textbook
    • DataStructure공부 (인터뷰용)
    • 알고리즘 공부 (인터뷰용)
  • ‘책’을 통해 습득
    • 스타트업 (사업관련) 책읽기
    • 패션, 스타일(주로 suit) 책읽기

사실 이렇게 쓰더라도 내가 다 배울수는 없는 상황이다. 어제 하루 공부해보니깐, ES6좀 배우고 HCI강의좀 듣다 보니 시간 다 간다. 물론 상황이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진도를 빠르게 빼긴 했지만..

삶이란게 평생 공부만 한다고 삶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그게 진정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것만 하다가는 이리저리 벌리다가 정작 어느정도의 선에서 고비를 요구할 때 막히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글을 적으니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당장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 스스로는 열심히 익히고 닦고 있으니 말이다.

선택과 집중, 잘되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개발과 공부에만 집중하자. 지금은 그럴 시간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