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ly life -> lively life



 퇴직과 더불어 찾아온 것은 다름아닌 “나태의 유혹”이었다. 퇴직하고 어느새 1개월이 다되가는 이 시점에, 정신없이 대회준비다 면접준비다를 진행하다 보니 나 자신은 어느새 본연의 아이젝트(개인 프로젝트)를 상실하고 그저 생리적 현상과 외부의 happen에 따른 생활이 지속되고, 나는 내 자신의 정신의 꼬리줄을 어느순간부터는 상당히 희미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죽은 듯한 삶, 정말 내 자신이 어느순간부터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된 오늘, 잘되는듯 싶었으나 병든 듯한 얼굴과 정신 상태, 그리고 졸리다 싶으면 자고, 심심하다 싶으면 뭐 하고, 내가 언제부터 이런 아주 단순한 삶, 그리고 나는 이러한 삶을 “죽은 듯한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항상 그래왔다. 무언가를 진행하려 하면 최소한 한달은 여유기간이 잡혀야만 하고, ‘연초 1월1일’,’몇월1일’,’월요일’ 이런 곳들에 나의 결심은 항상 묶이고, 향상된 꾸준함 없이 매일 새로운 계획들의 연속, 그러나 새로움이 전혀 없었고 발전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게 금단현상일까? 그렇다고 담배를 다시 펴? 그건 또 웃기면서도 어이없는 말이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고치는데 뭔가를 끼고 돈다는 것은 단순한 강한 동기부여의 목표일 뿐이지, 그것이 목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는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반복되는 하루하루도 아니다. 그저 되는대로 사는 삶의 연속이었다. 내가 바라는 삶이 이런 것인가? 아니다. 지금 되돌아 보니 이것들은 단순한 ‘나태의 유혹’에 그쳤었다. 그리고 그 삶의 순간에서 나는 ‘아이젝트는 죽었다.’를 남발하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될 말인것인가! 나태해져도 이렇게 나태해질 수는 없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뭔지를 알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고있지 않는가? 그저 이것들이 머리속에 맴돌기만 한다면, 그것들은 10년이 지나도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 자신은 알고있지 않은가?


 지금 나는 내 자신에게 엄청난 채찍질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의 회사 경험에서 나는 느꼈다. 강인한 정신력과 평소에 엄청난 긴장이 없는 삶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삶이고, 그 사이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는 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니, 그것을 느낀 나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러한 지난 3주간의 나의 삶을 냉철하게 고찰하는 것이다. 죽어버린 삶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 내면에 가득차는 그날엔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고, 결국 나는 죽어버릴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사람은 변하는게 사람이다. 그래, 잠깐의 방황은 있을 수 있다. 아니, 방황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거창하다. 잠시 나는 나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쇠사슬의 자물쇠를 잃어버린 것일 뿐이다. 이미 방황은 몇달간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이뤄 왔던 것들, 한 순간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다.


 얼마전 동생이 보았던 성격 검사 테스트에서 나는 “꾸준한 운동으로 항상 굳은 의지를 길러야 한다.” 라고 나와 있었다. 어찌 보면 나태의 원인은 운동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태라는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다는게 사람마다 누구나에게 찾아올 수는 있지만, 그것을 얼마나 어떻게 빨리 극복하느냐가 개개인의 차이일 것이고, 아니 어쩌면 이러한 나태가 찾아온다 할지라도 인식을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즉각 defence하는 사람, 이러한 두 분류의 사람이 현세에는 존재하고 이로인해 사람의 인생이 판별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태한 삶을 매우 역겹게 생각하는 나로써는, 이러한 나 자신에게 찾아온 죽은 자의 삶을 살며시 타이르며 생동감 있고, 진정 살아있는 삶으로 바꾸려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고, 나는 이 글을 씀으로 있어 그러한 나태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