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일단락 된 미국행.

역시나 오랜만의 글이다. 안정적인 삶 없이는 나 스스로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것 같다. 3년간 사업을 할 때, 이후 3년간 병특, 이후 3년간 학교. 9년간은 그럭저럭 평범하게 블로깅을 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도통 생산적인 글을 잘 쓰기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실수에 대해 수시로 상기하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난달부터 연이은 실패에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고 허겁지겁 이를 시정하기 위한 길에 나섰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 너무나도 많았다. 원하던 대학은 다 떨어지고 남은건 그저 미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만이 존재했던, 그런 곳들. 그리고 결국, 동부와 서부의 모 대학에서 각각 accept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군데만 붙었을 때는 몰랐는데, 두군데가 되다보니 선택의 폭이 조금이나마 넓어진 것이 좋다. 어쨌든간에, 명확히 미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니깐.. 참으로 뭐랄까, 나도 이나라를 애써 떠나기 위해 이리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매국노같다. 하지만 스스로, 미국을 극복하지 않으면 기술의 최전방에 있고자 하는 나의 초심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니깐. 그리고 그럴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도, 대학원과 현지취업의 기회를 노릴 수 밖에 없다. 최소한 그것은 앞으로 가장으로써, 그리고 아들로써, 한편으론 보다 더 다른 프로그래머의 커리어패스를 설계하자는 의미에서 이는 반드시 이뤄야 했던 나의 20대의 목표와도 같았으니깐.

대학원 준비의 과정은 정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는 확실히 남는다. 더 집중하고, 마구잡이로 돈을 버리면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절실히 느낀다. 왜 토플, GRE등의 시험이 비싼지 그 이유까지도 알겠다. 아무나 응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2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 금액이 비싼만큼 자신있을 때 시험을 보라는 것. 게다가 GRE가 1년 5회 제한이 있는 자체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나는 이를 간과하고 어디 소풍이나 가는 심정으로 작년에 GRE를 응시했으니, 결과는 매우 안좋았을 뿐 아니라 그때마다 오는 좌절감이 나를 잡아삼켰다.

저조한 어학성적과 더불어 나의 피상적이었던 SOP도 한 몫 했다. 그저 교수 컨텍 자료만 만들고 있었을 뿐, 정작 SOP에 공들인 시간은 매우 짧다. 중요한것을 뒷전으로 하고, 재밌다고 컨텍자료에나 올인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지금와서 다시 보면, 12/15 데드라인까지 지원했던 20개의 SOP모두가 한결같이 같은 내용이고 그 말은 20개가 모두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SOP라는 것이, 결국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나의 장점을 드러내는 것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상하면서 추상적인 전문용어를 들어다 괘상하게 말을 꼬아놓았다. 게다가 교정을 맡겼기 때문에 말투 또한 나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저조한 어학성적과 이상한 SOP, 그리고 번번한 GPA, 일반적인 추천서 이 모든 요소가 나를 평균 이하로 깎아내린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것 때문에 내가 이상하게도 안전빵이라 생각했던 학교들 조차 떨어지게 만들었으니.. 당최 무언가 바꾸려 하지 않고 데드라인에만 연연한 나 자신을 통해서 반성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합격은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이, SOP와 CV를 수정해서 제출하고 얻은 결과라 만족이다. 물론 그리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수 개월에 걸친 과정을 통해 나는 진정 내가 하고픈 것은 알았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난 포스팅등을 통해 나의 문제점을 고찰해봤고, 고치려고 노력했다. 심신이 지쳐서 제주에 내려가서 약 3주동안 폐인처럼도 지내봤다. 이제야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정말이지, 무언가 ‘편할’ 때 미래를 위해 준비해 놓아야 된다는 생각을 이제와서 정말이지, 절실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미국에 가서, 그래도 한번쯤 편입을 노려볼 것이다. 어차피 만약 올리젝을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다시금 준비하려 했다. 여기서 준비라는 것은 어학성적 정도이지만.. (아직도 나는 어학성적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뭐랄까, 이제는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떨어져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는 몰랐다. 그래, 어찌보면 나는 바닥 끝에서 돌아갈 곳을 찾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속감, 그것이 내게 가져오는 아주 모호한 안정감을 말이다. 게다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더더욱이나, 그것이 필요했다. 여튼 어학성적을 만드는 자체는, 결국 영어라는 산을 넘는다는 것을 의미할 테이니 말이다.

한편, 공부에 대해서는 일전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내가 좋아했던 CS 과목들을 한번 더 공부하고, 그간 약했던 수학에 특히 초점을 두고싶다. 한편, 지금 당장은 이런 이론들과 더불어 작품을 하루빨리 만들고 싶다는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간에 내가 최소한이라 생각하는 공부의 시간인 2년은 이런 기초를 다지기엔 충분한 시간일 테니 말이다. 🙂

이어 나는 취업을 하고싶다. 지금입장에서는 phd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다. 물론 이건 또 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간에 내 초심은 미국 인터넷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실무적 실력을 계속 유지하는 자체는 내게 크게 중요하다. 결국 뭐랄까, 삶에 크게 욕심없이 내가 원래 바라던대로 가정에 조금 더 충실하면서 지내고 싶다는게 내 생각이다. 수년간의 중소기업에서의 내가 본 개발자의 삶이 그러지 못했으니깐.. 글쎄, 이것도 현실도피일까..

내가 미국에 처음 가서 처음 사귀었던 Mike는, UPenn CS를 나와 캠핑카 한대를 사고 캐나다에서부터 현재 3년째 여행을 하며, 호스텔에서 VM으로 대기업 밴더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인상깊었다. 우리나라였으면 그게 가능했을까, 6년간 내가 일해온 바로는, 문서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IT는 구두로 이뤄지고 상주와 파견이 거의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곳에서 내가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인간다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족에 충실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우리 가족이다. 특히 우리 어머니, 30여년동안 나를 키워주시고 뒷바라지 해주셨는데 나는 자꾸만 떠나려고 한다. 사업한다, 병특한다고 변변찮게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집에 늦게오길 일수였다. 작년부터 뒤늦게 느끼기론, 어머니가 꼭 챙겨주시려고 하는 그 식사 한끼를 내가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는 것.. 이런 나의 모습이 나중에 가서 변한다는 장담은 없으니, 더더욱이나 내가 신경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끌로이와 함께하는 삶에서는, 끌로이의 많은 짐을 덜어주고 서로가 하고싶은 것을 응원해주고 싶다.

약 5년 정도 실무능력을 배양하고 나서, 나는 다시 사업에 도전하려고 한다. 충분히 나의 자제력이 갖춰지고, 내가 생각한 아이템이 만들어질 때 말이다. 이런 나의 꿈을 위해, 지금의 작은 어드미션은 내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온다.. 좌우간 보다 더 노력해서, 지금의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쓸때없는 시간보다는 더 노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