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

요즘, 뭔가 머릿속이 복잡한 듯 하면서도 간결하기도 하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은데, 이 또한 나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제는 학교에 가니 다시 학생비자로 돌리려면 무려 4개월을 기다려야 한단다. 4개월을 한국에 있으라는 말인가, 학교는 어떻게 다니지, 쉬울 것만 같던 취업도 물건너 간 얘기같더라. 비자라는 것이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주변에서 이때문에 시달리는 얘기는 꽤나 많이 들었지만 이정도로 스트레스 일 줄이야. 정말 한치 앞을 모르는게 미국 생활이라는 것을 다시금 직감하게 만들었다.

또 다시 술을 들고 싶었다. 술과 함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새벽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었다. 침대에 누우면 온갖 잡다한 생각 때문에 아무리 졸려도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시 일어났다. 술을 먹으면 잠이 올까, 그러면 또 내일 늦게 일어나겠지. 왜 또 그런 악순환 속에 나를 가둬야 할까, 아 그래도 잠은 자고싶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침대에 눕는다. 왜 그리도 삶이 불안할까, 아무 생각도 안하고 정말 조용히 공부하고, 개발할 수는 정말로 없는 것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좋은 와이프와 좋은 인도 친구들 덕분에 금방 위로가 되었다.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현실에만 안주했다. 잠이 안오는 오늘 밤, 내내 강의를 보며 끝냈다. 그간 머릿속으로만 ‘해야지’ 하던 것들을 하나 둘 했다. 뉴스도 보고, 미드도 한편 봤다. 대두랑 얘기하면서, 너무 불확실한 삶 속에 잠도 안오고 스트레스만 쌓여간다고 푸념했다. 애도 아닌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너무 힘들다고. 대두는 말한다. 사람 사는게 자기만 잘된다고 되는게 아니다. 보통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지.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진 않으니, 후딱 털어버리고 차선책으로 달려야한다고.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모두 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지껏 얼마나 많은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해서 벼랑끝까지 갔다 왔는지 모른다. 내 전공과 무관하게 정보올림피아드라는 것을 선택해서 무려 4년동안 잡고 포기했고, 특성화고로 분류되는 고등학교를 두려움 없이 선택하고, 도전했다. 고2까지는 공부도 안하고 공모전과 대회를 나갔지만 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다 고3 막바지에 정말 딱 1년만 미친듯 하자고 생각하고, 공부를 해서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던 내 수능 등급을 두세배로 올리고, 대학 진학을 일궈내긴 했다.

그때도 참으로 마음을 졸였다. 내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됬건 대학에 왔고, 와서도 성적은 바닥을 쳤다. 사업한다고, 친구들 모아서 이리저리 사람들 도움 받아 회사를 차렸다. 3년간 했는데, 정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쫄닥 망했다. 포기했다. 다시는 사업을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사업을 망하고 보니 스물셋, 군대를 해결해야 했다. 아버지와 약속한 시간은 3개월 남짓, 군대를 너무 가기 싫어서, 10월부터인가 병특 가려고 이리저리 공부하고, 1월부터 이리저리 입사지원을 했다. 큰 회사들은 사실 연락도 안왔다. 현역 병특은 TO도 적을 뿐더러, 대부분 뭐 이리저리 빽으로 차고 있었겠지.. 2월까지 결과가 안나오면 군대를 가야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2월말에 작은 회사지만 합격했다. 물론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어쨌든 그 빡세던 회사에서 1년 반을 버텼다.

1년 반동안 나를 군인 취급하며 괴롭히던 사장, 과장, 대리 모두 버티고, 5개에서 10개, 20개로 늘어난 유지보수 프로젝트를 버텼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너무 힘들게 되서 회사 몰래 전직을 알아보고, 합격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날 그냥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비동의전직 처리를 했다. 옮기기 전 회사가 거절하면 자칫 법적 소송까지 갈 수 있는 상황. 게다가 처리 도중에 합격한 회사에서 입사를 취소하면 정말 붕 떠버리는 상황. 2개월 동안 하루하루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잘 되었지만, 아마 이때의 상황이 지금과 가장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회사를 옮기고, 편하게 다니다가 또 한번 공모전 때문에 몇일 밤을 지새우고, 다이어트 한다고 또 몇개월 열심히 운동했다. 회사가 편하니, 일할 맛도 나고 아마 이때가 내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생겼던 때가 아니었을까. 유라임 아이디어도 이때 생각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병특 끝나고, 학교 다니면서는 크게 이렇다 할 이슈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2년 다니다 대학원에 뜻이 생겨서 (사실은 취업이 목적이었지만) 정말 못하는 영어 실력으로 토플 GRE공부하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경력등으로 밀어붙이려고 이리저리 발버둥 쳐봤다. 2014년 12월 학부 정규과정 끝내고 지금 대학원 합격까지 무려 5개월을 하루하루 마음을 조마조마 하며 보냈다. 매일같이 Reject메일을 받는 데에도 지치고, 교수님들께 추천서 부탁드리는것도 지치고, 시험 성적 올려야 하는데 이 또한 마음이 잡히지도 않고, 뭔가를 하긴 해야하는데 것또한 잡히지도 않고, 술만 먹고 그렇게 보냈다. 그나마 결혼준비 한답시고 뭔가 하긴 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대학원에 붙긴 붙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하고싶던 것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유라임 만들기였다. 근데 그놈의 법인 만들기부터 해서 걸리는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여기 일처리에 비하면 한국은 양반인듯.. 2015년 말에 또한번 비자등등 때문에 조마조마해서 한두달을 보내고, 결론적으로는 잘 처리되서 2016년 중반부터는 또 맘편히 보내고, 유라임도 어느정도 만들었는데 또 올해는 올해 초부터 비자부터 해서 엄청나게 걸린다. 자칫 미국에 있는 우리 가정까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 지금의 상황이다. 대학교, 병특과 전직, 대학원 그리고 비자까지. 아마 20대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 이 순간들을 기억하기로는, 어차피 술 따위가 해결해 주지 못한다. 글쎄,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경험담, 혹은 차선책 등이 생겨서 다른 방편으로 대비를 할 수는 있겠지만 술이나 나태 등이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삶이란게 그런 것 같다. 어차피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나도 아마 그랬다면 대학도 복학 안하고 옮겼던 병특 회사를 계속 다녔겠지. 하지만 나도 뜻이 있지 않은가, 한국보다 더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의 직장에서 내 아이디어를 맘껏 개발하고 싶은 생각. 물론 돈버는 것에도 목적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사업성공과 개발자로써의 커리어를 쌓고 싶은 생각,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 결국, 모든 고비들이라는 것이 내 능력 이상으로 무언가를 얻고자 할때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나한테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수 많은 변수가 있고, 최선책이 안되면 차선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니 나는 그것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 상황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나다.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고, 나만이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결국, 불면증이나 머릿속에 수 많은 생각들, 술, 게임, 미드 등 이런 것들은 배부른 생각, 그리고 사치일 분이다.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에 나는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새벽기상을 잘 못하고 있다. 걱정도, 근심도 많아서 그런가, 아침에 운동도 못하고. 이 생활이 꽤 지났다. 하지만 나는 분명,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그리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그 속에서 나의 시간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다. 내가 가고싶은 길을 끝까지 간다. 되던 안되던, 간절한 바램은 언젠가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긍정의 힘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미국에 갈 수 없었는데 그저 긍정의 힘 하나만 믿고 이곳에 오도록 노력했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래, 모든 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 좌절하지도, 주저앉지도 말자. 하나 하나씩 차근차근 정복해 나가면 언젠가는 내 길을 이루리라.

그런 생각을 해보는, 여섯시간동안 잠을 못자는 오늘이었다. 내일부터는 분명,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간절히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