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하겠다.

 첫 학기가 개강하고, 바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두 개의 조모임을 진행하며, 과제까지 하게 되는데 전처럼 나의 미루고 미뤄두었다가 하는 스타일로 하다 보니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발생한다. 과제를 제때 끝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밤을 새게 된다는 것. 그 만큼 나는 일을 미루는 것에 익숙하고,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저 될때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간다. 

 미국에 온지 한달이 넘었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만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은 등 나답게(?) 하고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지난주에도 두시간을 달려 근방의 Carmel이라는 도시를 다녀왔다. 샌프란은 벌써 세네번은 다녀왔고, 금문교와 베이브릿지, 샌마테오 브릿지 등 세 개의 큰 다리는 이미 다 건너봤다. 소살리토, 하프문 베이, 산타크루즈 등 해안도시는 이미 정복했다. 네 번의 주말동안 하루를 꼬박 다 투자해서 놀러다녔다. 랜트한 Jeep의 Patriot을 끌고선 말이다. 때문에 차에 대한 욕심도 많아져서, 이젠 왠만한 미국 내의 차를 보면 옵션이나 모델부터 해서 장/단점은 어느정도 익히 알고있다. 여행도 좋고, 와인도 즐기고 싶고, 심지어 음악도 좀 하고싶다. 책도 많이 읽고, 소프트웨어 공학, AI, 네트워크 등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학교 9학점 이외에도 두 개의 코세라 강의와 Pre-Calculus를 공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으론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 대해 공부하고자 책을 한 권 잡기도 했다. 음악은 아직 한국에서 장비를 가져오지 못해 최소한의 피아노도 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최신 DJ의 음악을 듣고 있다.

 전보다 운동도 꾸준히 해서 최소 일주일에 네번 정도는 헬스장에 가는 것 같다. 와인도 하루에 한잔은 꼭 먹는 편인데, 나파벨리가 가깝다 보니 그곳 와인을 주로 먹는다. 한편으론 전에 다녀온 남프랑스의 로제와인이 그리워 18불이란 비싼 돈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끔 Cote du Rhone의 로제와인을 사먹곤 한다. 와이프와 꾸준히 한국 TV프로그램을 보고, 요즘엔 또 요리에 빠져서는 일주일에 세네번 정도 요리를 한다. 이제 왠만하면 빠에야나 피자 정도는 맛있게 만들 수 있다. 미국엔 하늘이 이뻐서 매번 사진을 찍다 보니 인스타도 열심히 한다. 영어 공부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운전할 때마다 일빵빵을 듣고 있다. 아직 귀트영과 입트영은 꾸준히 듣지 못한다. 교보e북으로 전자책을 열 권 정도 사두고는 천천히 읽고 있다. 원래 읽던 에스콰이어나 지큐 등의 잡지도 읽는다. 미드가 재밌기도 하지만 공부가 된다는 생각에 하루에 한두 편의 CSI를 보고 잠에 든다. 게다가 최근엔 천문 관측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겨서 망원경을 사고 열심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커피도 좋아해서 필즈커피니 블루보틀이니 이런 것들은 먹어봤다. 

 정말 이렇게 쓰고 나니 그간 나는 뭐 마치 놀지 않은 사람처럼 여가생활을 해대는 것 같다. 물론 이 와중에 공부도 간간히 껴 있지만, 정작 내가 이런 여가생활을 즐기러, 마치 노년 생활처럼 이곳에 왔던가? 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또 아닌 것 같다.

 미국인들의 생활은, 정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열심히 일한다. 생각보다 퇴근 이후에도 재택으로라도 집에서 많이 일을 하거나 자기개발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처럼 불금과 토,일요일에는 또 열심히 쉰다. 그런 문화가 아주 보편적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당장 지난주를 살펴봤을 때 월-수 를 학과생활 등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일단 생활패턴이 무너져서 아침에 10시에 일어난다. 수업이야 보통 저녁이니 괜찮지만, 약 6년째 한국에서 보통 4-5시에는 일어나 새벽일과를 보낸 습관이 있는데, 그러지 못함이 가져오는 정신적인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일종의 자기성찰의 시간에 일기도 쓰고 좋은 글도 많이 읽고 하루도 계획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당장 일과가 밀린다. 그럼 결국 생각나는 일 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그렇게 숙제가 밀렸고, 그렇게 조모임에 준비해야 할 자료준비가 늦어졌다. 이런 악순환이 분명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당장에도 2주 후 퀴즈와 3주 후 중간고사가 있고, 이 기간동안 한두 차례의 조모임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내가 미국에 온 이유에 대해서이다. 내가 미국에 온 이유는 두가지 이다. 스타트업과 취업을 위해 온 것이다. 뭐 사실 거창하게 스타트업이라고 할 것은 없고, 그저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이곳에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온 것이고, 취업은 워낙 가고싶은 회사들이 많으니 이곳에 온 것이다. 그 중, 대학원 생활 동안 나는 논문보다는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곳에 와서 한달동안 최소한 기초기획 문서조차 만들지 못했다. 물론 그 동안 신기술을 익힌답시고 이리저리 공부한 것이 사실이지만 공부가 과연 주인가, 이미 학부를 마치고 나서 나는 그 정도의 지식 선에서 어떤 개발을 하고자 한 것이지 여기서 더 지식의 폭을 당장에 막 빨리 넓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루라도 빨리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하지 말이다.

 웃기게도 나는, 초기 정착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든다. 만들어야 할 것이 100이면, 그중 1을 만들기 위해 개발환경이나 운영환경 등을 설계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 과정이 '기획'이라 하면 크게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설계와 디자인, 개발을 모두 해야하는 입장에서 완벽한 기획이 개발보다 앞서야 한다면 그건 과연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을까? 특히나 나처럼 정말 혼자서 하려고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할 나위 없이 스스로의 그런 균형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스스로 중요한 것을 먼저 인식하고 대부분이 끝났을 때 그때부터 나의 여가를 즐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여가를 과감히 쳐내야 할 것은 쳐야 할 필요가 있다. 한두 개도 못하면서 어째 백가지를 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와이프의 말대로 한번에 다 해버리면 그건 재미가 없다. 가지고 싶은 것도 충분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가졌을 때 그 가치가 배가되는 것처럼 말이다.

 성급하지 않되, 그렇다고 놓지는 말자. 미국에 온 이후로, 모든 것들은 전부 선택의 순간이다. 중요한 것을 먼저 이루고, 그 다음에 재밌는 거리들을 즐기도록 노력해야겠다.

Software Engineer @Google in Silicon Valley, Carnegie Mellon University MSSM 21' AI기반 생활습관 서비스 스타트업 유라임 (Urhyme) (전)대표. 전 금융권 풀스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실리콘벨리, 스타트업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대용량 분산처리 (주로 데이터, 머신러닝) 웹 서비스 설계와 데이터 시각화,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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