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살자.

최근 많은 스스로에게 닥쳐왔던 힘든 일들에 대해 거의 끝없이 스스로가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생일인 2주 전, 모 회사의 탈락 통보 이후 정말로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다. 몇 번을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내가 실패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있을 수 없이 많은 실패에 대한 대처가 힘들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가장 컸다. 비자문제가 있을 때에도, 예전 대학원 합격 결과를 기다릴 때에도,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과 동시에 그저 스스로의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속에도 그저 나는 왜 안될까 라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를 비판 내지는 한탄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고 그저 모든 상황을 다 날려먹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게 날린 지난 시간들이 솔직히 아직도 아깝다.

결국 하나의 연습의 시간이었다. 이젠 뭔가 원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술독에 빠져살기도 싫고, 잉여하게 티비나 보면서 시간때우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나도 다른 대처 수단을 잘 안다. 운동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문제점 중 하나가 내가 가진 물건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당연히 내가 술과 TV를 보거나 야식을 먹는 행위는 그 자체가 주는 무언가의 판타지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내가 놀자고 하는 행위들이 너무 많다.

 

사실 술이란 행위는 부차적일 뿐이다. 뭐랄까, 습관이랄까? 거의 그랬던 것 같다. 주로 미디어를 좋아하는 내게 주로 맥주나 막걸리와 같은 주류는 습관이었다. 거기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사실 배부를 때까지의 그것보다는 내가 그 행위를 한다는 자체에 만족해 왔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혼술이라는 자체는 가끔이나 했었지 즐기지는 않았다. 내게 술이라는 것은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빡센 배포 이후에 회식이나 잠깐의 술자리, 학교를 다닐 때에는 10시가 넘도록 이어진 조모임 이후에 조원들과의 술자리. 학원을 다닐 때에도 간혹 눈맞은 동생들과의 술자리. 나는 그게 정말 즐거웠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일주일에 두번 이상 그렇게 보내다 보니 집에 일찍 들어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모임은 즐거웠고, 대학 4년과 회사 3년간의 시간동안 내 술자리에 대한 애착은 크게 이어져 나갔었다.

졸업 이후 사라진 술자리는 혼술이 대처했다. 미국에서 밤늦게 밖에서 술을 먹고 귀가하는 행위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술을 먹더라도 집에서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런 흥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가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겁지만, 생각 없이 먹으면 뒷감당을 하기가 한국보다 더욱 더 힘들어지니 나는 술을 마음것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집이 가장 편했지만, 나와 함께하던 술친구들이 없었다. 그래서 티비를 보게 되었고, 술을 거의 하지 않는 와이프를 피해 새벽시간을 즐겼다. 내게 내면의 평화를 만들어 왔었던 새벽의 즐거움은 이렇게 술을 통해 오염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다시금 예전의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억지로 9 to 6시라는 시간을 밖에 있도록 노력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억지로라도 나갔다. 집에서 작업이란 거은 거의 드물었다. 그런데 미국에 있다 보니 지난 2년간을 일이 없을 때 집에서 보냈던 것 같다. 최근 사무실을 멀리 옮기고 나서는 더 심했다. 재택근무를 한다 하지만 규칙적인 패턴이 점차 망가졌다. 집에 있으면 그 즐겨하던 코딩도 하지 않았다. 점차 나는 개발에서 멀어져 갔다. 넷플릭스만 붙잡고 계속해서 시간을 죽여왔었다.

미국에 오고 나서 PS4를 샀었다. ‘게임’ 이라면 사실 어려서 스타크래프트나 이후 WoW, A.V.A정도에 조금 빠진적이 있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20살이 되고 나서, 특히 게임회사를 한번 실패하고 나서는 게임이라면 치가 떨렸다. 물론 이후에도 레인보우식스 같은 FPS류의 게임을 추석 같이 시간이 빌 때에 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게임에서 손이 멀어졌다. 게임을 하는 행위에서는 내가 차갑고, 양 많은 시원한 맥주를 가지고 집에 와서 이를 마시며 주로 다큐나 추리 류의 티비를 감상하는 행위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게임을 아에 안한것도 아니지만, 해봤자 일주일에 많아야 한시간 할까, 그것도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할 뿐이지 그 이상의 게임에서의 재미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얼마전 PS4 VR을 구입하고 조금 즐기나 했지만 이내 질려버렸고 곧 다시 팔려고 생각하고 있다.

취미행위를 많이 만들어 왔었다. 천문에도 관심이 있어서 망원경과 쌍안경도 샀다. 캠핑도 좋아라 해서 텐트를 비롯해서 의자, 에어배드, 냄비, 스토브 등 여러가지 장비를 구매했다. 로드트립이 좋아서 차량용 에어배드, 청소기 등 여러 차량용 장비를 구입했다. 피아노도 샀고, 기타도 통기타랑 일렉기타를 사고 우클렐라까지 샀다. 수학공부때문에 미적 책을 여러 샀다. 코딩 공부한답시고 코딩 스킬에 관련된 책을 여러 구입했다. 이미 전자책은 100권이 훌쩍 넘은지 오래되었다. 좋아하는 미드의 원서를 구입했다. 요리에 관심이 생겨서 프로방스, 유럽 등의 요리 레시피 서적을 구입했다. Suit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된 책을 샀다. 메탈 티셔츠가 좋아서 여행을 갈때마다 하드락 티셔츠를 샀고, 좋아하는 메탈 밴드 티셔츠를 엄청나게 구입했다. 집에서 개발하며 음악듣는게 좋아서 좋은 PC용 스피커도 구입했다. 홈짐을 위해 무거운 아령 두 개를 구입했다. 미디어를 즐기니 티비도 원래 있지만 더 큰 티비를 구입하고 사운드바까지 구입했다.

그런데 이렇게 구입하고, 원할 때마다 아마존 들어가서 이리저리 구입하고 나니 내가 당최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취미라고 할까, 그것의 절반 이상은 정말로 충동적이었다. 예컨데 기타는 사두고서는 조율 한번 한 적이 없다. 배울 시간이 없다. 피아노야 간혹 치지만 새로운 곡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앞의 모든 취미를 이미 TV와 미디어가 대처를 했다. 집에서 내가 가장 크게 즐기는 것은 그저 쇼파에 앉아서 티비를 트는 것 뿐이었다. 주말에는 신문을 보고, 잡지를 보고, 나는 그런 삶이 스스로에게 낭만적인 삶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많은 생각들이 착각이었다.

그래서 많은 티셔츠를 버리고, 책도 정리하고 있다. 다행히 ‘중복’ 되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내게 당장 필요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모든 것들이 그저 내게는 충동과 욕심으로 비춰졌다. 충동적 취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간간히 떠나는 캠핑이야 계속 쓸일이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번 보고 말 것들에 대한 욕심은 내가 왜그랬는지 싶기도 하다. 어찌 보면 술에 대한 중독적인 태도보다 무서운게 충동적 구매인 것 같다. 2년간 겉잡을 수 없이 커진 내 충동이, 실상 생각없이 새벽에 먹어왔던 음주와 야식에 비춰진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쳐왔다. 배는 겉잡을 수 없이 나왔고 몸무게는 늘어만 갔다. 머릿속은 복잡해 졌고 워낙 할 수 있는 것이 무한대로 많아지니 정신이 산만해졌다. 잉여인간처럼 일이 끝나면 집에만 쳐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폐인처럼 지내왔다. 머릿속은 끝없이 “해야지, 해야지” 라는 생각들로 가득찼다. 그런데 또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또 하나의 ‘노력’ 이 필요한 그것이 휴식이라 생각되지 않자, 점차 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먼지만 쌓여가는 기타를 보면 이상하게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취업을 하던 과정도 마찬가지다. 뭔가 2%가 부족했다. 부족한 부분이 한도 끝도 없이 나왔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닌 것은 알지만, 보충하면 보충할수록 쏱아져 나오는 내 부족한 부분에 좌절을 일삼았다. 빨리빨리 하고 싶었다. 하루에 코딩 문제도 마음같아선 백개는 풀고 싶었지만, 한 문제를 풀면 딴짓을 하기 일수였다. 브런치나 미디엄에 전문적인 글을 쓰기 위해 공부도 해야하는데, 개발 서적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면접에서 떨어져 부족한 부분을 알려고 공부하면 거기서 파생된 부족한 부분이 나왔다. 정말 많았다. 언제 이를 보충하고 취업을 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 분야를 걸치고 있자고 생각한 나 스스로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선택과 집중에서 나름대로 가지치기를 많이 했다 생각했지만 이 또한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난 2-3주를 보냈다. 마음을 비우고자 LA에 찾아갔다. 답을 찾은 곳은 헐리우드도, LA의 맛집도, 카페도 아니었다. 여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문득 내 전자책을 보았다. 약 2년 전 구매해 두었던 도미니크 로크의 ‘심플하게 산다’ 라는 책을 보았다. 미니멀리즘은 정말 다른사람 이야기인 것 같았다. 시간많은 사람들, 청소할 시간 많은 사람들이나 미니멀리즘을 하는 줄 알았다. 허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니멀리즘이란 가치가 단순히 적게 가지고 있는것이 아님을 느꼈다. 물건에 가치를 느끼고,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것이었다. 사실 미니멀리즘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었는데, 얼마전 친한 형의 집들이에서 본 형의 집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시피 깔끔했지만 꼭 필요한 것은 고심을 다해서 구입한 흔적이 역력했다. 여백이 많았다. 그 여백 속에서 나는 의외의 편안함을 찾았다. 뭐랄까, 흡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공간 속에서 나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적은 수의 물건들 속에서도 하나의 물건이 주는 느낌은 강렬했다. 커다란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만든 취미활동 속에 나의 관심은 분산되었고, 쓰지 않은 물건들은 에너지가 사라졌다. 분산된 시선과 애착 속에서 에너지를 잃은 것들은 생명을 잃어만 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가 키우던 라벤더와 고추 같은 식물들일 것이다. 손이 잘 가지 않다 보니 다들 말라죽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던 배란다의 공간은 점차 물건들로 가득차게 되어 잘 가지 않게 되었고, 먼지만 가득 쌓여갔다. 주말마다 청소를 하곤 했지만, 물건이 쌓여갈수록 청소는 힘들어졌고, 아무리 청소를 해도 물건들 속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런 것들에 정성을 다해 에너지를 나눠주곤 해야하는데, 그런 시간에 나는 술과 미디어에만 노출되어 있고 잠을 취하다 보니 쓸때없는 곳에 에너지가 쏠리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나의 시선은 환경의 변화도 한몫 할 것이다.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줄곧 시간을 잘 활용하곤 했다. 주중에는 열심히 일했고, 주말에는 적당한 취미활동을 즐기며 살았다. 허나 작년 중순부터 와이프는 멀리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저녁수업이 계속되자 나는 회사보다 함께 수업으로 향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보다 카페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렇게 점차 사무실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 대학원 또한 거의 끝이 나게 되는데 나는 업무에 있어서 안정적인 시간할애가 힘들었다. 그렇게 내 학교는 끝났고, 생활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잠깐의 안정도 없는 내 삶 속에 나는 점차 삶이 불안정하다고 느꼈고, 그런 불안정을 탈피하는 수단으로 물건과 음식을 소유한 것이다.

몇일 뒤면 이사를 가게 된다. 거의 3년간 함께했던, 신혼을 즐겁게 보냈던 이 공간을 떠나게 된다. 시원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론 나의 새로운 출발을 스스로에게 응원해 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엊그제는 TV와 신문, 잡지를 모두 해지했다. 잡다한 것들을 모두 쌓기 시작했다. 짐을 꾸리면서, 많은 것을 버리고 있다. 쓸때없이 쌓여만 간 것이 참으로 많았다. 취미는 한두가지로 충분했다. 캠핑, 사진, 피아노, 음악, 책.. 이것들도 많다. 하지만 더는 필요가 없었다. 더 내가 에너지를 쏱아부을 공간은 없었다. 물건을 살때, 더 많이 고민을 하기로 했다. 정말 필요한지, 낭비는 아닐지, 더 튼튼할지, 더 오래갈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스스로밖에 없었다. 뱃속에 넣는 음식을 조절하는 것 또한 스스로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고도비만이 되고 몸에 여러 이상이 생겼을 때 그때서도 아마 정신을 못차리게 될 것이 뻔했다.

비로서 나는 출발지점을 찾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완벽이란 것은 없고 어차피 모든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나 또한 욕심은 끝이 없을 것이다. 버리고, 더 버리고, 정리해야만 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었다. 과거의 내가 그렇다. 풀리지 않은 문제 앞에서 나는 주변의 것들을 정리했다. 심플하게 살고자 노력한다. 시작은 정리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