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삶.

개강을 한지도 벌써 한달. 한국에 다녀온지도 벌써 3개월. 시간이 가차없이 빠르다는걸 여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여기에 글을 안쓴지도 벌써 꽤 됬다. 평소같으면 글쓰면서 스스로 생각도 정리하고 그랬을 텐데, 어쩐일인지 요즘엔 좀 쉬려고 하면 쇼파와 일심동체가 되버리니 물론 쉼의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선택이라 하겠지만.

올해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는 한해이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미국에서 지난 시간들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어쩌면 욕심이 스스로를 지배하다 보니 나 조차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너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다 보니 비즈니스의 ‘비’자도 모르면서 섣불리 시작한 것의 결과는 참담했다. 가까스로 날 잡은것은 역시 가족이었고, 끌로이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게 가족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시작했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해결책이 존재했다. 결국, 그간의 나는 방법도 모르면서 욕심이나 내던 것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운좋게 내가 하고싶은 길을 (남들과 다르게) 겪어 왔다고 하지만 서른이 넘고 달라진 것은 더 이상 그런 운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노력 이외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올해가 시작되고서도 사실 벌린 일은 많았다. 대학원 붙고 나서 특히 머신러닝, 수학, 프랑스어, 불교공부 등을 벌려뒀었다. 유라임도 시간날 때 마무리하자는 생각으로 조금은 마무리했고, 오픈했다. 프랑스어도 조금씩 계속 꾸준히 했다. 그런데 머신러닝과 수학은 다른 이야기였다. 이건 단시간에 끝낼 수 없었다. 물론 올 한해 나름 집합론을 열심히 듣긴 했는데 아직도 아리송하다. 문제를 좀 풀어봐야 했었을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개강을 하니 이건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학과수업은 거의 비즈니스스쿨 정도이고, 공부할 양보다는 공부 자체가 내가 기존에 해왔던거랑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취업이 목적이므로 학점에는 크게 욕심은 없지만, 적어도 교수에게 예의를 지키고 다른 학우들에게 피해는 안가게 하려면 공부를 안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수학이랑 머신러닝은 거의 못하겠더라. 한국에서도 시간이 있었지만, 아무리 부모님 집에 내 책상이 있더라도 제대로 공부할 수는 없었다. 환경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 같다. 뭐가되었건, 지금 당장 수학이랑 머신러닝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과감하게 접었다.

그리고 또 접은 것은 음악. 음악도 간간히 피아노도 치고 즐기고 있었지만 완전히 접었다. 이건 솔직히 내 취미에 해당할 뿐이지, 이거로 먹고살 생각은 전혀 없다. 적어도 당장은 말이다. 요즘엔 샹송을 즐기고 있어서 아코디언을 연습하고 싶은데, 이것도 나중으로 미뤘다.

해외여행도 무척이나 가고 싶지만, 이것또한 접었다. 어차피 코로나이기도 하니깐. 백신이 풀리는데 내년말은 가봐야지 아는 거니깐. 그럼 내후년이나 아주 잘 하면 갈지도 모르지만.. 지금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은 일이 있는데 그 일 때문에 여행은 당분간 없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집이 소중하구나 싶다. 뭐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로드트립이나 캠핑등을 갈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접었다. 이것도 그 일과 관련이 있지만.. 뭐 나중에 가면 되지. 장비는 모두 갖춰져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날 잡고 가면 되겄지.

사진과 영상도 접었다. 유튜브도 하고싶었고, 사진도 좀더 연습하고 싶었는데, 글쎄 사진까지는 간혹 책으로 공부해도 좋겠지만 영상은 시간도 많이들고, 그냥 스스로 추억정도를 간직하는 정도로 만족하자고 싶다. 디자인 공부는 꽤 오래전에 접었다. 와인공부도, 맥주공부도, 요리공부도 접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진작이 접었어야 하는게 맞다. 그런데 미국이란곳이 너무나도 놀기 좋다보니 (?) 라는 핑계를 대본다. 뭐가 어쨌건간에, 사실 대부분 내가 벌린 일들은 현실회피였다. 스스로의 현실은 외면하면서 다른 이상적인 것을 쫓으려 하다보니 이런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내가 또하나 접어야 할 것이 있다. 적어도 한 5년정도. 바로 유라임이다. 솔직히 너무 슬프다. 그런데 완전히 접자는 것이 아니라, 간간히 시간있을 때 개발하자 정도로. 지금 유라임 신경쓰면서 개발중독에 빠져있으면 또 전처럼 될 것 같다. 솔직히 지난 3개월동안 코딩 한줄 안한게 현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웃기게도 정작 내가 바뻐지니깐 유라임을 많이 쓰게된다. 아이러니하다. 그나마 나름대로 빠른 개발환경을 만들어놔서 망정이지, 뭐가 어쨌던간에 유라임으로 뭔가를 한다는 생각 또한, 당분간은 접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모두 접으니 남은건 건강, 가족, 학교, 취업밖에 없다. 물론 학교에 취업이 그냥 포함되는거라 어떻게보면 건강, 가족, 학교 밖에 없다고 봐야할까. 학교 공부에 부차적으로 내 정확한 커리어를 위한 공부 (클라우드, 빅데이터, 대규모 서비스, 그리고 스칼라, 자바, 파이선) 정도랄까. 아니 그것만 해도 많다. 코딩공부만 해도 하루 온종일 시간이 들 것만 같은 느낌이니깐.. 그런데 난 뭘 어떻게 하려고 이런 시간속에 부차적으로 저런 것들을 벌려뒀을까? 책임감 없이 말이다.

정리된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주말마다 요즘엔 청소를 하고 운동을 최대한 많이 하고 있다. 머릿속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몸도 정리하고 싶다. 저렇게 벌려놓은 삶을 살다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커버되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몸무게가 20키로 가까이 찐 것도, 그간 스트레스속에 허우적되던 것도 모두가 그렇다.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많은 것들을 놓았을 때, 비로서 내 길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맞는 삶이다.

앞으론 무언가를 시작하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싶다. 재밌어보인다고 무턱대고 하면, 어느정도 러닝커브 앞에서 허우적되다가 포기하고 만다. 아니, 난 어쩌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 않았을까. 그게 결국 욕심이란 것이다. 더는 욕심을 버리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다가올 새로운 삶을 다시금 정리해본다.

CMU MSSM 21' 재학중. AI기반 습관관리 서비스 유라임 (urhy.me) 대표. 전 금융권 소프트웨어/데이터 엔지니어. 대학원 생활, 실리콘벨리, 유라임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데이터과학과 시각화, 대용량 아키텍처,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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