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007 스카이폴,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

 영국을 좋아하고 그들의 문화를 즐기는 내게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작품을 꼭 한 편 내놓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007 시리즈를 꼽을 것이다. 미국에 탐 크루즈가 열심히 연기하는 이단 헌트가 있다면 영국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007의 제임스 본드가 있다.

 숀 코너리 이후 최고의 007로 평가되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어나더 데이까지 꽤나 깔끔해 보이고 영국적인 신사의 모습을 맘껏 펼쳐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나더 데이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왠지 한물 간 듯한, 그리고 조금 심하게 평하자면 마치 3류 영화의 그 어색함을 보는 것과 같았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 조차도 느낄 수 있었던 건 007요원이 또 한번 변화를 맞겠구나 싶었다.


내 생에 최고의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

(다니엘 크레이그. 1968년생. 178cm. 영국 리버풀 출신.)

 그렇게 내가 대학교 입학 시절인 2006년에 만나게 된 카지노 로얄, 일전의 어나더 데이에서 큰 실망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 영화를 2007년이 되어서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검은 머리의 점잖은 신사를 기대했건만, 내 눈에 비춘 제임스 본드는 왠지 모르게 낮선 파란 눈과 금발의 머리를 가진 마초적인 사나이, 다니엘 크레이그 였다.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를 잘 모른다. 더군다나 68년생인 왠지 나이가 많아보이던 그가 왜 이제서야 스타로 발딛음 할 수 있는 007시리즈에 합류했는지도 이해가 안갔다. 인터넷에서 확인해 본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내가 익숙한 영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영국에서만 활동하는 한 배우이구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이 과연 카지노 로얄이라는 것 자체를 잘 선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나 매혹적인 액션 신과 카지노 현장에서 보여준 그의 숨막히는 도박 한판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높은 몰입도를 가져왔다. 턱시도를 입은 그의 모습이 기존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보여주던 그런 신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세대교체를 막 하고 나온 제임스 본드같이.

 그렇듯 그는 정말 신세대의 신사 같다. 항상 느끼지만 슈트를 차려입고 나온 그의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매혹적이다. 이미  올해만 세계적인 남성지인 에스콰이어의 표지 모델로 올해만 두 차례 나온것만 바도 그가 시대의 진정한 신사를 보여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중 미카엘 역 다니엘 크레이그)

 2011년 10월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스타덤에 올라왔어도 자신은 자신의 소신이 담긴 영화를 찍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사실 카지노 로얄 이후 그는 10여편의 작품을 더 찍었다. 그 중에서도 그의 배우로써의 생각이 가장 잘 담긴 것이 작년 그가 열연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 그는 헨리크 가문에서 사라진 소녀의 진상을 밝히는 기자로써의 연기를 보인 적이 있다. 솔직히 여백이 많이 흐르는 이 영화에서 물론 돈, 여자, 섹스 등의 요소를 감지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부분이 주된 부분은 아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스웨덴에서의 잔잔함과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참혹한 고문 등은 정말이지 잠들어 있던 나의 감성적인 부분을 매혹시키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밀레니엄 이후 나는 그의 열혈한 팬이 됨과 동시에 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떠한 부분이 나를, 그리고 사람들을 이렇게 매혹시키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얼굴이 미친듯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가 어린 것도, 몸이 좋은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여타 식스팩을 갖춘 배우들과 견준다면 또한 어떠한가? 게다가 중년의 모습도 물씬 풍기고 말이다.


007 스카이폴, 왜 다니엘 크레이그 인가?

 그리고 나는 어제 그가 007 요원으로써 세번째 연기를 한 스카이 폴을 보았다. 일단 스카이폴, 간단한 감상평은 전작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소박하다는 것이다. 블록보스터급 추격신이나 화려한 무기, 본드걸, 본드의 애마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영국 런던의 모습과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자연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와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의 깔끔한 수트와 왠지 모를 중년필의 인상, 그리고 딱 봐도 역삼각형의 균형잡힌 몸매는 신사라는 것을 완벽하게 창출했다. 007은 신사의 나라 영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 속에 들어간 저 다니엘 크레이그, 그의 모습은 시각적 화려함도, 청각적 화려함도 아니었다. 나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감각을 자극하며 나를 흥분시켰고, 나를 다시금 영국적 이미지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007 본드의 애마, 클래식함.

(Aston Martin 의 명차, DB5)

자동차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자동차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007 시리즈에서는 본드걸과 본드의 애마를 빼놓으면 또 말이 안된다. 이번 007 스카이폴에서 등장하는 차는 개인적으로는 왠지 내용 자체가 소박한 007과 MI6의 내용을 다뤘다길래 영국의 기품있는 벤틀리 컨티넨셜 정도를 기대했는데 처음에는 jaguer xj가 나오더니 정말 말 그대로 소박한 007 골드핑거부터 4차례 이상 나온 에스턴 마틴의 DB 5가 등장했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의 제임스 본드와 Aston Martin DBS)

 클래식한 면은 참으로 좋았으나 솔직히 아쉬웠다. 카지노 로얄에서 그의 애마로 등장한 애스턴 마틴의 DBS는 정말 그 자체로도 멋졌기 때문이다. 그가 독약을 먹고 심장마비로 죽기 직전에 그의 차에서 꺼낸 장비로 원격지 통신을 통해 그의 상태와 구급처방을 하는 장면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장기”인 왠지 여유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숨막히도록 펼치는 그의 액션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왠지 죽을지도 모르는 그의 상황에 나 조차도 심장이 떨릴 정도로 조마조마한 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화려함, 아무렴 어떠하랴. 그래서 이번에 나온 DB5는 굳이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자동차로써 자아낼 수 있는 감성은 클래식함에서도 충분히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사뭇 느낀 것 같다. 롤스로이스의 앞부분 커다란 장식이 지금의 펜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듯이, DB5 역시 DB 1부터 9까지의 그 중간단계에 있으면서도 고전적인 곡선과 1963년 당시의 런던의 모습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어쩌면 감독은 이러한 부분을 이끌어 내기 위해 클래식한 차를 도입한 것이 아닐까.

마치며

이런 것이 트랜드라는 것일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나온 이후 그가 몸으로 활약하는 연기가 더욱 더 많아졌으며, 화려한 3D 그래픽 효과라던가 폭발이나 도발적이거나 선정적인 섹스 신 등은 거의 없었다. 좀 밋밋하다 라고 생각할 때 나타난 장면이 몇 몇 장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부분이 좋았다. 되려 요즘 너무 헐리우드 영화나 국내 영화는 그런 선정적인 장면에 좀 치우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한국영화를 비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한국영화를 사랑한다.) 

 007에서 그동안 보여준 제임스 본드가 왠지 모르게 할아버지가 된 느낌, 그것은 영국에 세계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쾌락을 찾아 쫓는 삶 보다는, 그 자체로서 여유롭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소중함을 알고, 하루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가는, 우리만큼이나 바쁘다는 영국의 현 생활 속에 바치는 무언의 주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역시나 바쁘게만 살려고 하는 나에게도 이는 소박하면서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메시지가 되어, 나도 사실 삶을 바쁘게만 살아가려고, 그저 성공을 쫓아 화려함을 내것으로 만들려고만 하는 내 삶도 조금은 여유롭게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을 소소하고 만연하게 들게 만든 영화인 것 같았다. 


007 스카이폴 (2012)

Skyfall 
6.5
감독
샘 멘데스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베레니스 말로히, 나오미 해리스
정보
액션 | 영국, 미국 | 143 분 |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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