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와 컨설턴트와의 관계

웹 개발자인 나는 회사에서 개발보단 주로 현존하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유지보수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신규 개발도 안해본 것은 아니다. 허나 깊이 있는 기술보다는 넓고 다양한 기술들에 욕심이 많고, 또한 개인적으로 “까라면 깐다” 라는 식을 매우 싫어하며 개발할 때는 최소한 이걸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계속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유지보수라는 자체가 업무를 모르고서야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어서 비즈니스 로직을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유지보수를 선호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중소 IT기업이 그렇듯, 우리 회사도 수주를 내려주는 “갑”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자체 유지보수 팀이 있는가 하면, 타 외주 업체의 솔루션 혹은서버기술 등을 사용하는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외주업체에 맏기곤 한다. 내가 관리하는 사이트 역시 우리 회사의 DB와 TR(전문) 송수신 체계가 우리 회사에 구축되어 있어 이를 사용하기 위해 view단이나 DB-insert , statistic 등을 처리하는 웹페이지를 만들고, 정책상 이러한 서비스들은 우리 회사에서 유지보수 하게 된다. 

여튼 내가 운영하는 모 사이트는 거래량이 상당히 커서 비즈니스 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컨설턴트가 “갑”이라 불리는 어느 업체에 나가서 5일중 4.5일을 상주하고 업무 요건들을 들으면서 처리한다. 문제는 이렇게 나가서 받는 요건들을 보면 대부분 기존의 시스템에 총체적으로 추가되는 요건이 대부분이고, 사실상 말도 안되는 업무와 스케줄을 가지고 제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발자 출신에서 컨설턴트가 되는 경우야 어느정도로 공수가 소요될 것인지 알고 얘기하니깐 보다 더 요건을 개발자와 현업과 잘 조율해서 일을 할당해 줄 것이다.

허나, 내가 본 대부분의 컨설턴트는 영업 출신이다. 그러다 보니 개발적인 것은 전혀 모르고, 사실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마치 자기들이 “갑”인양 개발자들을 부리기 일수이다. 우리도 다 스케줄이 있고 가용 시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최소한 같은 회사라면 좀 더 신경써 줘야 하는게 정상이 아닌가? 원래 영업을 했다고 그저 업체에 기어들어가서는 요건을 최소한 개발자와 합의도 하지 않고 있는대로 받아가지고는 개발자들한테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주면 개발자는 호구란 말인가.

정말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해 놓았는데,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기술적, 업무적 이해가 없이 컨설팅을 한다는 게 말이다. 그게 어찌 컨설턴트인가? 기존의 시스템은 갈수록 산으로 가고, 개발자는 죽어나고.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회는 굽신굽신 하는 사람들만 좋아하는 걸까? 양의 탈에 가려진 노동의 현실, 아니 노동의 현실보다도 충분한 시스템적인 고려 없이 촉박한 일정에 시달려 하드코딩으로 덕지덕지 소스가 도배되고, 그렇게 되면 사실 사이트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건 일시적인 대책에 불과한데, 그리고 언젠가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사이트가 될 것이 불보듯 뻔한데.

우리나라는 너무 웹을 쉽게 알고 무시하는 것 같다. 처음에 좀 빡쎄게 사이트를 구축해 놓으면 그저 다른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에는 기존에 있던거 그대로 쓰면 된다고, 그러기에 바쁘다. 웹이 무슨 가공식품인가? 업무 프로세스가 같다고 웹도 똑같을까? 수주를 주는 쪽이 원하는 BLS를 충분히 웹에다 잘 녹여놓아야 하는데, 기존에 있다고 껍떼기만 바꾸면 다일까. 내가 다닌 업체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해서 약 6~7년 전에 작업해 놓은 프레임워크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혀 발전이 없는 사이트들, 회사 입장에서야 돈을 벌어야 하니깐 빨리빨리 하는 것은 좋지만.. 역효과가 얼마나 큰데, 그걸 그렇게 무시하는건지.

여하튼 참 이렇게 컨설턴트를 대하다 보면 죽겠다는 소리는 엄청나게 해대고, 실질적으로는 개발에 대한 것은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위에서 치이니깐 계~~속 빨리빨리 그런다. 업무 요건자체가 완전히 서비스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요건인데, 그걸 또 빨리빨리랜다. 이러니 개발자들이 일 할 맛이 나겠는가. 아싸리 SI에 그냥 껴서 마일스톤 속의 단위 업무 속에 숨어버리는게 낫지.

그래도 개발자들도 너무 현업의 말에 굽신굽신 하지 않고, 정확한 근거를 들어서 이걸 추가하면 왜 서비스가 산으로 가는지 어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국 그렇게 어필하는 것이 내가 보다 더 SM하는 서비스의 코어와 비즈니스에 대해 이해하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을꺼니깐.

사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컨설턴트의 잘못도 아니지..  좌우간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제가 어려우니 회사에서 안짤리려면 굽신굽신 해야 하니깐. 내참 이렇게까지 생각을 할 정도니.. 참 아쉬운 S/W 의 사회다. 언젠간 뜯어고치고 싶은 그런 사회다. 한국이 개발자들의 천국이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런날을 그려보며 나만의 노트에 오늘도 열심히 끄적이고 있다. 사람들이 가면을 벗고 나와 진정 자신의 실력으로 승부하는 그런 경쟁적이면서도 정직한 사회를 꿈꾸며..

(정말 컨설턴트들과 전화를 하면서 수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개발자들을 소중한 존재라 생각하고 한번 더 생각하고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그런 대화를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