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약간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겼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내 오산이었다. 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지금도 열심히 달려야 할 시간이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처럼, 꾸준히 묵묵히 뭔가를 해야 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만들고, 무엇보다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 긴 시간을 달려서 지금의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여유란게 별것일까, 적어도 지금은 전처럼 미래가 안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걱정거리들은 과거의 것들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다는것 왜이리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2015년에 오고나서 벌써 7년이 흘렀다. 아직도 영주권은 처리중이지만, 적어도 h1b비자는 나왔고 적어도 신분에 있어서는 크게 걸림돌이 없다. 예전엔 정말 신분이 안되서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찾아주는 회사가 있더라도 그토록이나 리젝을 당했던 것들을 기억하면.. 하물며 대학원도 뭐 revoke라던가 거우 해서 주립대 하나 갔는데 그걸 또 좋아라 해서 갔던 나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진했고, 한편으론 게을렀다.
미국에 처음 와서 이사갔던 곳에서 매일 Mt. hamilton을 바라보며 로제와인을 먹으며 지중해 음식을 요리하며 유럽에서의 감성을 매번 곱씹었다. 그러던 삶이 천천히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엉망이 되어갔다. 술로 오염되고, 건강은 계속 안좋아지고, 살은 계속해서 쪄서 나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온갖 기술적 집착으로 스타트업은 계속해서 딜레이 되고 덕분에 꼬여버린 신분 문제로 취직도 하기 힘들었다. 내 실력도, 영어도, 신분도 모조리 문제였다. 언제까지 미국에 있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2018년을 취준에 목메고 거의 포기할 무렵, 한 줄기의 가능성을 엿봤지만 그건 결국 나의 절박함을 노린 사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나는, 이세상에 절대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깨닫고,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했다.
마침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물리적 제약이 생겼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집에만 틀어박혀서 공부만 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막 밤새서 공부하고 그런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대학원에 붙어서 거기서 또 좋은 멘토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직장을 구했다. 모든것이 정상화가 되었다. 직장 또한 뼈를 깎는 커리어 align을 통해서 덕업일치를 시켰고, 회사의 성장이 내 커리어의 성장과 100% 일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의 육아 전쟁을 겪고, 지금의 여유를 찾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난 여유를 잘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미래를 위해 내가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그렇다. 지금의 회사가 너무 좋아서 평생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로 안주해서는 안되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에 가고싶은 것도 아니다. 지금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최대한을 배워서, 어떤 상황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쉽게 쓰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지금의 팀에서 배우는 모든 스킬이 행복하고, 즐겁고,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좀더 빠른 개발을 위해서 더없이 전진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평생 개발을 주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싶다. 풀타임으로 개발을 못하더라도 어느정도의 시간은 계속해서 개발을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첫 단추는 잘 꿰맨 셈이다. 특히 빅데이터와 풀스택 개발, 데이터 시각화, 머신러닝 등의 내가 본래부터 관심있고 공부하고 싶던 것들은 계속해서 가지고 가고싶다. 그런데 솔직히말해서, 지금까지는 이를 공부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 아니, 내가 너무 안이했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취직 후 약 4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 안이했다. 긴장이 풀렸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육아가 시작되고 나서 나는 육아와 커리어 모두를 신경쓰려고 지속적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 나는 어떠한 긴장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머릿속에는 적어도 저 개발분야에서는 계속해서 기술을 습득하고 적용하고 싶다. 한편, 요즘엔 또 다른 목적도 생겼는데 바로 음악이다. 주업으로 개발을 한다면, 개인적으로 부업으로 음악을 하고 싶다. 그게 어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은 어려서부터 내가 하고싶던 꿈이다. 그런데 이 또한 요즘 계속해서 공부하며 느꼈지만, 꾸준히 해야한다. 계속해서 음악을 듣고, 플러그인과 툴을 익히고, 트랜드를 알고, 역사와 장르를 공부해야 한다. 또한 어떤 정서를 녹아내릴지, 그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음악을 할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요즘의 안정은 되려 억지로라도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억지로라도 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을 만든 것 같다. 안정이 오히려 불안의 요소로 작용할 때도 많다. 지금처럼 경기가 안좋을 때, 나는 더 묵묵히 공부를 하고 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놀고싶은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더 내가 쌓아가야 할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묵묵히 하는 것, 그것이 모든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일 것이다. 요즘엔 그래도 월-목에는 뭔가 1~2시간씩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금~일에는 내가 하고싶은 것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 같다. 육아휴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는 만큼, 의미있는 행동에 시간을 쏟고 싶다. 그런 생각을, 7년전 바라보며 정리했던 마운틴 해밀턴을 다시금 바라보며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