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1일, 드디어 대학원 졸업을 하였다.
사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 마지막 프로젝트 성적도 안나왔고,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긴 했지만 이에 대한 수준도 의구심이 들었었고, 어디에도 내가 ‘졸업’ 했다고 나오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걱정 말라고 했다. 그렇게 졸업 가운을 입고, 수료증 비슷한것을 받았을 때 비로서 내가 졸업했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축사와 함께 시작한 미국 대학원의 졸업식. 정확히는 모르지만, 35년전에 HP에서 경력을 시작했던 졸업생 여사분의 말씀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GPS관련된 기술로써 40년 넘게 경력을 이어나간다는 말씀. ‘평생 공부’ 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에 잠시 생각이 깊어졌다. 나 또한 평생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실상을 돌이켜보면 지속적인 공부가 생각보다는 힘들었다. 솔직히 말해, ‘공부’ 라는 용어가 너무나도 싫었다. 억지로 해야한다는 것이 과연 공부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기간도 싫었다. 거의 학부 석사 통틀어 내가 진심으로 꾸준히 했던 과목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학원 시절 통틀어 기억나는 과목도 몇 되지 않는다. 그나마 SDN에 관심을 가지고 작년까지는 꾸준히 이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는데, 지금은 또 끊겼다. 그저 내 관심사는 졸업에만 있었다. 이미 한번 주요 과목 몇 개를 메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올해에는 내가 정말 아카데믹 하게 공부한게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이 Computer Engineering이다 보니 어느정도 로우레벨을 다루긴 했는데 영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파이프라이닝부터 해서 instructor들의 그 정렬과 순서, 물론 소프트웨어적인 것에 비해 당연히(?) 빠르고 날렵하겠지만 2012년에 들었던 그 Computer Architecture과목에서의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그런데 학부시절 내가 가장 관심없었고, 성적도 가장 안좋았던 과목이었는데, 이 과목을 다시금 Advanced Computer Architecture, Computer Architecture Design 등 계속해서 이어나갔으니 지속적으로 내 관심사는 떨어질 수 밖에.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물론 네트워크의 기본과 소프트웨어적인 이해는 개인적으로 즐거웠다. 하지만 스위칭 등 실제로 하드웨어 내지는 이와 비슷한 레벨로 공부하는 자체는 아무리 즐기고 싶어도 즐겁지 않다. 그렇다고 하드웨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98년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뜯어봤고, 그 이후에는 조립식 컴퓨터에 대해 어떠한 열망 내지는 야망이 엄청났다. 허나, 중학교때 처음으로 노트북을 사용하고 나서는 사실상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도는 지속적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어느정도 스펙을 이해하고 사용할 정도.
그래서 그런 하드웨어 베이스의 과목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학과에서, 당연히 나는 방향을 잘못 잡았었다. 매번 이 블로그나 일기에서 공부가 싫다고 느낀 부분은 당연 그런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SE나,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것들은 즐거웠다. 물론 수학이 깊게 관여된 Automata라던가, Programming Language와 같은 과목에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동시에 또 즐겁기도 했다.
사실, 지난주 졸업작품이 마무리 되고 나서는, 아니 취업을 결심하고 나서는 꾸준히 MIT OpenCourseware와 Coursera를 듣고 있다. 스스로 Syllabus도 찾아보고, 내게 맞는 스케줄을 만들고 조금씩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나도 나 스스로를 잘 안다. 나는 느리고, 호불호가 너무나도 명확하다. 관심있어 하는 것에서는 지속적인 흐름을 가져가는 것을 즐기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10분도 집중하기 힘들다. 산만하다. 나도 잘 안다. 공부를 시작하면 15분 정도 집중하고는 머리를 한번은 식혀줘야 한다. 요즘에는 한 20분 정도 공부하고 과목을 바꾼다. 계속 벌리게 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는 편이다.
어쨌든 공부의 모든 속박 속에서 벗어나는 일은 참으로 속이 후련한 일이다. 어차피 평생 공부이지만, 더 스스로는 원해서 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선택이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섯부른 판단이 불러오는 결과는, 글쎄, 2년간 나 스스로를 너무 큰 자괴감 비슷한 것에 빠져살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런 마인드로 내가 정말 phd를 가려 했다니, 스스로도 너무 자신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어쨌든, 이제는 ‘공부’ 라는 단어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볼 뿐이다. 세상에 그렇게나 공부할 것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선택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데 요즘 Cryptocurrency나 머신러닝이 그토록이나 인기인데 아직 나는 손에 붓들지 않고 있다. 물론 알아두면 좋고, 재밌을 것 같고 하지만 배움의 길에 있어서 우선순위로 따져봤을 때에는 하나의 관심있는 그것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이다.
취업을 하지 않고 졸업해서 그런지 실상 마음은 썩 편하지는 않다. ‘학교’ 내지는 ‘학생’ 이라는 소속이 사라졌을 때, 취업도 안된 상태에서 결론적으로 스스로가 백수가 되는 느낌이 아니던가. 5년간 달고 살았던 학생이라는 스스로 만든 옷 비슷한 그것, 그런 생활이 끝났다는 느낌은 참으로 묘하다. 잠깐 다른 삶을 살다 온 느낌도 나고.. 아무 생각없이 모든 것을 실험할 수 있는 단계가 끝났다는 것이 말이다. 삶을 방해한다 생각해왔던 팀플이나 시험같은 것들이 없다 생각하니 시원섭섭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뭐 살아가며 얼마나 이만큼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부나 팀플같은 것을 해보겠나 싶었다.
앞으로의 삶, 수 많은 선택이 기다리는 곳에서 나는 근 6년간의 학교 생활에서 정확히 내 관심사를 찾은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한다. 성적이고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내 장점인 분야가 있고 보안해야 할 분야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미국 대학원을 다니며, 원서 몇 권을 읽고 페이퍼를 읽을 수 있는 힘 (아직도 길러야 하지만..), 영어로 프로젝트 몇 개를 진행해 나가는 것, 영어 의사소통, formal한 이메일, 채팅 등은 내가 얻은 결과 들이다. 한글처럼 편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skimming은 되는 느낌. 그런것들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얼마나 크게 작용을 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취업도 사실상 나의 자리를 잡아가는 일련의 과정일 것이고, 지금 해왔던 스타트업도 나를 시험하고, 내가 원하는 머릿속의 그것을 끄집어 내기 위한 것이다. 마음 한 편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학교, 공부에 대한 부담이 이제 송두리째 없어져 버렸다. 더 이상 방학이란 존재도, 내 인생에서 정말로 학생이라는 것이 없어짐에 내심 기대가 크다. 또 다른 나의 삶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제약’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얼마나 흥분되는지.
새로운 인생, 그리고 그것을 잘 만들어 나가기 위한 그간의 노력, 학부 4년 석사 2년반, 고생 아닌 고생한 나 스스로 그리고 나를 뒷바라지 해준 끌로이와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