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탄시기 전례와 풍습들

[성탄시기 전례와 풍습들]


우리에게 ‘구원의 문’ 연 위대한 ‘사랑의 신비’


 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더없이 기쁜 날이다. 성탄절만큼은 신자가 아닌 이들도 흥겨운 축제 분위기에 괜스레 들뜨게 된다. 하지만 들뜬 마음을 잠시 접고,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의 거룩한 의미를 가족과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 알아두면 좋은 성탄시기 전례와 풍습들을 소개한다.



▨성탄절 유래와 성탄시기 전례


 성탄절.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그러면 아기 예수님은 정말로 12월25일에 태어나셨을까. 4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12월25일에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런데 이것이 정확한 날짜는 아니다.



 원래 12월25일은 로마 제국 시대에 태양신을 섬기던 축제일이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전래되고 공인되면서 태양신 숭배 축제일이 그리스도 탄생일로 바뀌게 된다. 태양신은 가짜신이지만, “세상의 빛”(요한 8,12)이신 그리스도야말로 진짜 정의의 태양이시라는 믿음에서 12월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내게 된 것이다.



 예수님 탄생을 기뻐 경축하는 성탄 대축일은 부활대축일과 함께 그리스도교 양대 축일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교회는 예수님 성탄을 성탄절 하루만 아니라 여러날 계속해서 경축한다. 이 시기를 성탄시기라고 한다. 교회는 예수성탄대축일 전야인 12월24일 저녁부터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까지를 성탄시기로 지낸다. 이번 성탄 시기는 2006년 1월9일까지다.



 특별히 예수성탄 대축일부터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까지 8일 동안은 하루 하루를 성탄 대축일처럼 지낸다고 해서 성탄8일 축제라고 부른다. 이 축제 기간에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12월26일)와 사도 성 요한(12월27일) 축일, 예수ㆍ마리아ㆍ요셉의 성가정 축일(성탄 다음 첫 주일, 올해는 12월30일)을 기념한다.



 성탄시기에 지내는 또 다른 축일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1월2일부터 1월8일 사이의 주일(이번에는 1월8일)에 지내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것(마태 2,1-12)을 기념하는 축일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에게 공적으로 드러나심을 기념해 공현 대축일이라고 부른다.


 


▨예수 성탄의 의미



 성탄절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그것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세주 성탄은 단순히 위대한 사건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의 신비’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초라한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멸시받고 천대받던 사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다.



 나아가 구세주의 성탄은 우리 신자들에게도 그런 성탄의 삶을 살도록 초대한다. 우리 역시 구유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신 주님처럼, 우리 자신을 낮춰 이웃에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다가서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구세주 성탄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성탄절 풍습들



 **구유와 성탄나무=성탄절하면 생각나는 대표적 상징물을 꼽으라면 아마 구유와 성탄나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구유는 역사가 오래됐다. 248년 오리게네스가 베들레헴 성당 그리스도 탄생 동굴에서 거행했던 예절을 언급하면서 구유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성탄 구유 풍습은 13세기 프란치스코 성인이 동료 수사들과 신자들과 함께 지냈던 성탄 구유 축제에서 비롯한다. 이 축제 때에 신자들은 나귀와 소로 소박하게 꾸민 구유에 베들레헴 목동들처럼 순례를 하곤 했다. 또 도미니코회 수녀원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아기 흔들어 재우기’ 풍습에서도 유래한다. 수녀들은 입회할 때 밀랍으로 만든 아기 예수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들은 수련생활을 하면서 밀랍 아기 예수에게 입맞춤하고 흔들어 재우는 등 밀랍 아기 예수를 마치 살아있는 듯 돌보며 성탄시기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예수 탄생 신비를 더욱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탄나무는 옛 게르만인들이 악령을 막기 위해 성탄절과 주님 공현 대축일 사이 열두밤 동안 푸른 나뭇가지를 집안에 걸어두던 풍습에 기원을 둔다. 푸른 나뭇가지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아 엄동설한에도 굴하지 않는 삶의 신비한 힘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탄나무를 ‘생명의 열매’가 열리는 낙원의 나무로 여겨왔다. 성탄나무에 달린 장식용 구슬들은 이 생명의 열매를 나타낸 것이다. 또 초와 전구로 성탄 나무를 아름다운 빛으로 밝히며 춥고 어두운 겨울 밤을 환희 비췄다. 성탄나무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닮은 것이다.



 **캐럴=12월이 되면 거리 곳곳에선 성탄 캐럴이 울려퍼진다. 이 캐럴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해 신앙의 즐거움을 표현한 노래다. 노랫말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사랑을 가득 담고 있는 가슴 따뜻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사람들이 동짓날 춤을 추며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한 캐럴은 5세기경부터 교회에서도 불려졌다. 초기에는 거의 구전으로 전해졌는데 종류가 500여곡에 달했다. 그만큼 부르기 쉽고 흥겨워 많은 이들이 즐겨 불렀다.



 중세시대 급속히 확산되던 캐럴은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엄격주의를 주창한 개신교도들이 캐럴을 ‘비종교적 노래’로 규정하고, 대신 ‘시편성가’를 보급했기 때문이다. 이후 18세기 캐럴 복원 운동이 일어나면서 19세기부터는 캐럴이 다시 널리 불려졌다.



 **산타 클로스=성탄절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산타 클로스다.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알려진 산타 클로스는 붉은 옷을 입고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로 상징된다.



 원래 산타 클로스는 4세기 소아시아 리키아 미라에서 활동한 성 니콜라우스를 가르킨다. 어린이들을 무척 좋아했던 성인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이웃집 자매를 도와주기 위해 묘안을 짰다. 깊은 밤 그 집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으로 금이 든 주머니를 내려보낸 것이다. 우연히도 금 주머니는 세 자매가 벽난로에 걸어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굴뚝 속 산타 클로스와 양말 속 선물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한다.


 


예수성탄 대축일 (라틴어 Sollemni-tas in Nativitate Domini. 영어 Christmas)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이며 흔히 `크리스마스’로 불립니다.


아르메니아 교회들을 제외하고 모든 가톨릭 교회와 대부분의 그리스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 기념일을 12월 25일에 지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실질적인 탄생일에 관하여 구약전승과 신약성서에는 기록된 바가 없고,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나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儀式)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2세기 말경에 알레산드리아의 성 글레멘스는 5월 20일의 특별한 축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나 4세기 말까지는 기념일의 의식이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336년, 성탄 축일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관습이 서방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로마인들의 이교적인 국가 축제일이었던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victi)을 그리스도교화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에서는 274년,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 황제 때부터 태양을 최고신으로 공경하여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그 건립일을 축제일로 지정했던 것입니다. 이 태양신에 그리스도를 대치시켜 354년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이날을 성탄으로 판정하여 그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고, 5세기초에 이 날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한 것입니다.


특히 교회는 4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神性)을 부정하는 이단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성탄축제를 통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정통교리를 고수하고자 하였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자 요한에 의한 그리스도의 세례 등을 공동으로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예배의식을 채택하여 처음에는 이러한 의식이 `주의 공현 축일'(1월 6일)에 거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12월 25일의 성탄 축일이 서방교회에서 동방교회로 퍼져 나가 안티오키아에서는 386년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는 이단에 맞서 지켜졌고, 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로 전해져 5세기말에는 대부분이 12월 25일에 예수성탄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와 예루살렘은 6세기에 네스토리우스주의와의 논쟁과 관련되어 지켜졌습니다. 단 아르메니아 교회는 오늘날까지 1월 6일을 성탄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성탄 축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외에 예수의 탄생을 단순히 기념한다는 의미보다 연중 다른 기념일과 성인들의 축일에서처럼 완전한 인격과 업적을 축하합니다. 즉 이 축일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본질을 갖고 계셨으며 예수는 이 세상에 주님으로서, 심판자로서 오셨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켰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 축일의 성격은 기쁨과 감사의 축제입니다. 중세에는 예수를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보내 준 중개자라기보다는, 인간 가운데 나타난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로 공경했기에 부활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서방교회 전례에서는 이 날 밤중과 새벽, 본일 낮의 세 대의 미사를 드립니다. 이는 5세기의 교황 순회미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카롤링거왕조시대에 로마 이외 지역에서도 행해지다가 13세기 이래로 모든 사제는 이 날 세 대의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탄축제가 시작되던 4세기에는 로마에서도 다른 축일과 같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단 한 번의 미사가 성대하게 이루어졌었다(지금의 성탄 낮미사). 그러나 여기에 부활 성야의 축제와 예루살렘의 성탄축제를 모방하여 밤중 미사가 추가되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한밤중에 베들레헴의 성탄동굴에서 드리던 미사를 모방하여 로마에서도 마리아 대성전에 베들레헴 구유의 모형을 갖다 놓고 성탄 밤중에 미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미사는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도중, 로마에 살던 그리스인들 구역인 팔라틴(Palatin)언덕 기슭의 성 아나스타시아 소성당에 들러 미사를 드리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이날은 동방교회의 유명한 성녀 아나스타시아의 치명 축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미사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덧붙여 봉헌하고 있습니다.


밤미사는 구유 경배 예절을 하면서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영원히 탄생하심을 경배하고,


새벽미사는 성자께서 영원으로부터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 육체를 가지고 성모 마리아의 몸에서 베들레헴의 구유에 태어나심을 경배합니다. 이것을 ‘빛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낮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심을 경배합니다

출저 : 평화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