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다보면, 아니 굳이 미국이 아니더라도 해외에 사는 것을 보면, 도시속의 화려함 혹은 대자연 아래서 누리는 여유(?) 같은 것들이 사뭇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2012년에 처음 미국여행할 때에는 대자연이 좋았지만, IT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실리콘벨리라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오기까지는 너무 힘들었고, 미국에 오기 전까지 힘든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국에 오니 멘탈이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들 철저히 자기관리 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내가 본 미국인들은 좀 게으름을 피우거나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았다. 덩달아 나도 자기관리가 안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영어조차 제대로 안되서 사실 영어때문에 초반 3년은 너무 고생아닌 고생을 했고, 대학원도 이건 다닌건지 안다닌건지, 대학원의 이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시간이 이리도 흘러버린 것 같다.
그래도 정신을 차렸다. 결국 미국에서, 특히나 이 베이지역에서 살어남는다는 것은 끝없는 공부밖에 없다. 나도 초반에는 여러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꽤나 노력했다. 하지만, 이내 네트워킹 형성은 지금 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변을 보면 네트워킹 구축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물론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결국 그것도 하나의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일이고, 시간소비 측면으로 따져봤을 때 정말 내게 어떻게 해서 다가오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면, 글쎄 어느정도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경쟁이 심한 이동네에서는 스스로의 실력양상에 비해서는 크게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도 사람 만나는거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 알아가는거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난 내 자신이 더 소중하다. 나도 물론 책도 쓰고 글도 쓰면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얘기다. 특히나,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서 얘기해주고.. 나도 한국에 갈때마다 후배들한테 유학이나 해외취업 등에 대해 얘기해주곤 하지만 정말 내가 그런 자격이 될까? 아니, 정보전달성이면 차라리 글을 쓰면 되지 어쩌면 그들 앞에서 꼰대처럼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나처럼 밀레니얼 들은 들을꺼 알아서 필터링 하고 듣고 그럴꺼긴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멘토의 목적으로 누군가의 앞에는 나가기가 너무 싫다.
처음에는 이게 자존감의 문제라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느꼈지만 나보다 날고 긴 사람들은 천국이었다. 여긴 글로벌 무대이다보니깐 더한 사람이 너무 많고, 어쩌면 사업을 위한 정석적인 코스로 뭐 MBA니 UN인턴이니 VC니 아이비리거니.. 이런걸 보다보니 내 이력은 도대체 뭘까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누군가 앞에서 얘기하면 그사람은 나보다 월등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내가 얼마나 우수울까 라는 생각. 그래서 브런치에 처음에 뭐 실리콘벨리 진출 어쩌고.. 하면서 글을 쓰다가 이것도 웃긴일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나를 그냥 미국에 있는 사람으로도 두고싶지 않을 정도로 어디선가 어이없는 잘난 척(?)을 부리고 싶지 않게 되더라.
좋게 말하면 겸손이긴 한데, 이런 겸손이 쌓이다 보니 스스로와 싸움을 하게 된다. 미래에 어떤 부분의 엔지니어 (적어도 내 향후 10년간 하고싶은 것)가 될 것인지, 쉽게 말해 돈벌이와 지적 호기심의 충당은 뭐로 할 것인지를 수없이 고민했다. 지금은 데이터/ML엔지니어로 좀 마음을 굳혀먹긴 했다. 그런데 어차피 이 내가 하고싶은 것은 미국오기 전에도 엄청 고민하던 것이긴 하다. 그런데 내가 차일피일 미뤘을 뿐이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미룬 이유는? 글쎄, 내 생각에는 중요하다 생각한 일들에 너무 목메다 보니 뒤돌아보면 남는 것이 없이 약간의 후회와 함께 그일 속에 내 시간을 가둬버린 것이 아닐까.
요즘엔 공부할께 너~~무 많다. 그런데 시간은 한정되있다. 결국 집중력이고 관리이고.. 이런 생각을 끝없이 한다. 유데미에는 들을 강의가 50개는 훌쩍 넘고, 코세라 ML도 계속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수학스터디, 영어스터디, 토플 GRE.. 개발은 xcode공부도 새로 시작하고 스칼라랑 spark도 하고 빅데이터도 하고.. R도 하려하고 파이선도 하고.. 하 정말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또 하나만 공부하고 있으면 다른게 엄청나게 미뤄져 버린다. 뭔가 꾸준히 하려고 한다면 하루에 15~30분 정도밖에 시간을 못낸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을까? 이게 내 근래의 고민이다.
결론은, 하루 2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개발 공부를 하고, 한시간을 ML/수학 중 하나를 공부하고.. 어쨌든 시간은 한정되 있고, 어느정도 분류는 추려지니깐 나눌 수 밖에 없고, 멀티테스킹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거 하나만 집중해서 끝낸다.. 라는 생각을 버리려고 한다. 막 이리저리 벌려두고 하나만 올인하다가 다른것들 모두 놓치자니, 차라리 시간관리를 철저히 해서 시간이 들더라도 조금씩 해나가는 수 밖에 없다. 마음속의 조급함이 그렇게 잡혀야 한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관리의 시간이 더없이 들어가야 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공부속에 빠져사는 것은 재미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팀 동료가 없다 보니 개발 토크를 할 수 있는 pool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인데, 나도 나름 여기서 두세명 정도 진지하게 개발 토크를 할 수 있는 인맥을 쌓았고, 많지는 않지만 한달에 한번 정도는 그럴 기회를 가지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내 베프와는 수시로 개발에 대한 내 생각을 공유하고 그런다. 결국, 난 계속해서 지적으로 충족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채우기 위한 네트워킹은 모르겠는데, 글쎄, 결국 저 위의 공부거리들은 내 절대적인 공부량과 이해도, 사고력 등이 수반되는 것이지 네트워킹을 위한 대화로 해결될 수 있을까? 네트워킹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난 네트워킹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고, 그 네트워킹에서 나는 한 80%는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가 끝나버리고 follow up을 해도 결국 마음이 맞는 사람을 제외하면 어차피 그 모임에서 100명 중 0~1명 정도밖에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공부랑 가족밖에 내 친구가 없다. 취미도 많이 줄였다. 그냥, 공부할 것은 산더미인데 마음은 놀고싶고 돈벌고 싶고.. 평생 공부라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난 언제쯤 풀릴까. 대학원은 잘 갈까? 취직은 잘 되려나. 유라임은 더 발전이 있으려나. 전처럼 푹 좌절만 하고 허숭세월 보내지는 않겠지만, 공부하려고 책상에 수시간을 앉아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얼마전 토플 점수가 좀 올랐는데 오른 것보다는 내가 한달간 공부한 것이 더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반대로 지난주에 타이머를 구입했는데, 공부량을 네다섯시간 채우면 마음이 좀 편했다. 하지만 공허한 시간에 나는 계속 생각이 들더라. 잘 풀릴까, 잘 될까 라는 의구심. 답은 알고있지만, 그냥 내가 과연 한국에서 적당히 대기업 어디 가서 플밍하고, 월급쟁이 하고 그랬으면 내가 만족했을까? 가끔 그런 친구들의 삶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잘 할까, 그걸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그런 철학적 고민은 어차피 답도 안나온다. 아직은, 공부에 좀더 투자를 해보련다. 할 수 있을 때 해보련다. 그것밖에 답에 근접한 것도 없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