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 수록 생각정리를 잘 안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시간만 나면 블로그에 글을 쓰곤 했다. 적어도 이 블로그라는 공간은 남의 눈치 안보고 쓸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글세, 일전의 일련의 글들을 통해 나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철저하게 베일을 만들어 뒀다고 스스로 믿기는 하는 것 같다.
벌써 이 블로그에 글을 쓴지도 한 13년 정도 된것 같다. 블로그 글쓰기는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줬다. 적어도 한글로 글을 쓰는데에 있어서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줬고, 생각의 흐름을 정돈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블로그가 시간이 갈수록 더 적어지는 이상한 현상은 어쩌면 사실 내가 요즘 고민중인 너무 많은 생각의 늪이라는 것을 대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너무 스스로가 proactive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최고의 대학원을 붙었고 최근에는 개인적으로도 크게 기뻐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마음속은 영 아니다. 목적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금 정확히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무엇을 삶에 우선순위로 두고있는지에 대해서 더 고찰을 하게 되었다.
학교 수업에 Launching your career in the SV라는 코스가 있다. 일종의 취업과 관련된 수업인데, 매주 졸업생들을 초청해서 그들이 학교다닐때 어떤 생각으로 취업 준비를 했고 커리어 준비를 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4주정도의 수업을 들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과연 지금까지 내가 했던 길은 올바른 길이었을까. 맹목적으로 미국에 오려고 학교의 기준은 생각도 안하고 와서 막상 하던 일은 스타트업이었고, 그마저도 잘 되지 않자 계속해서 스스로 움츠러들었고, 결국 폐인이 되려던 찰나에 취업이라는 루트를 준비했었고, 정말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넣다 보니 백여개를 넣었음에도 수없이 실패를 거듭했었다. 그러다가 구원의 손길이라고 믿었던 것에 크게 배신당하고 나서 더 이상은 내가 생각한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의미는 이는 본래부터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요즘엔 자기관리서적을 계속해서 보고있다. 어쩌면 지금의 나의 목적성은 13년 전의 그때보다 더 못한 것 같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도 예전만큼이 아니고, 다이어트도 수없이 실패하고 있다. 아마 그 부분이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계속해서 곱씹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 와서 나는 reactive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주변을 탓했다. 비자문제가 있었을 때에는 미국 시스템과 대통령을 탓했고, 연달아 대학원에 탈락했을 때에는 내 성적보다는 운만 연연하고 있었다. 당시 성적은 어디 주립대 갈 성적이나 되었는데 H대학에 한번 인터뷰 봤다고 마치 붙은 것마냥 (정말 지금생각해도 부끄럽다.) 매번 어드미션이나 기웃거리던 나의 모습을 극복하는데에는 5년이 걸렸다. 5년 후 다시 대학원을 넣었을 때, 결국 내가 만든 답은 그거다. 내가 실력이 그정도 되면 성적도, 결과도 다 그만큼 나올것이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막상 진짜 주립대에 가서도 그랬다. 학교는 날 챙겨주지 않았고, 학생들도 그저 빠른졸업 후 취업이나 하려고 학교를 다니는 듯 했다. 역사는 오래된 학교였지만 치안도 안좋았고, 학교가 매번 늦게 끝나다보니 야식이라는 아주 못된 습관도 생겼다. 무엇보다 조모임 속에서는 다들 그저 바라기만 하고있고 자기 욕심만 챙기고, 그래서 정말 학교다니던 2년 내내 조모임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무턱대고 얼씨구나 해서 학교에 갔던 내가 잘못이었고, 무턱대고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얘기했던 것도 잘못이었다. 이 학교에서 만난 분 통해서 나중에 함께 일을 하고 배신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얘기는 듣지 않고 (특히 와이프는 극구 반대했었다.) 직급만 보고, 내 문제점 다 해결해줄꺼라는 믿음만 가지고 내가 허비한 시간들. 이게 당시에는 그저 그분만 엄청나게 욕했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던가. 더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취업에 도전하던지, 대학원에 다시가던지 하면 됬을 문제였는데 난 결국 그 상황속에서 그저 편한 길만 택한 것이었다.
취업준비를 했을 때에도 연이은 낙방에 그저 내 문제가 단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난 나를 너무 믿었지만 그런 믿는것에 비해 난 영어실력도 코딩실력도 그저 내가 ‘좋아하는’대로만 설계되어 있었다. 뭐 정말 극악의 환경속에서 온사이트 10군데를 간 것만 해도 어쩌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결국 이것도 내가 실력만 있으면 다 해결될 문제였는데. 왜 나는 뭐 내 상황이 좋지않고 학교도 한 학기 늦게 졸업하고 시간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타트업 했을 때에 난 대단한걸 했다 라는 믿음이 너무나도 컸다. 실제론 결국, 그냥 개인 프로젝트 하나 한 것 밖에 더 있던가? 정말 냉정하게 내 실력을 판가름하지 않았고 이를 사실 올리는 데에 수개월이 걸린게 사실이다.
세상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닌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의 적어도 10배는 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벌써 몇 년을 안되는 상황에서 책보다 술을 잡은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탓할께 필요해서. 결국 정말 전형적인 reactive한 사람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문제점을 나열하고, 하나하나 쳐가고 부족한 점을 보안하지 않고 그저 뭐 툭하면 안된 상황에 대해서 신세한탄하고 술친구나 찾고 없으면 혼술이나 야식에 빠지고 그게 결국 내가 나를 놓았고, 점차 나를 안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중요한 결과였다.
5년의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 덕분에 삶에서 더는 없을 중요한 교훈들을 얻었다. 글쎄, proactive라는 것이 난 뭔지도 잘 몰랐다. 자기주도적인 삶, 내겐 분명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사라진 것은 내가 너무도 될 수 없는 혹은 희박한 것을 목표로 삼은 것에 있을 것이다. 난 이것을 ‘남들과 다른 도전’ 이라고 칭했지만 사실은 수 없이 많은 시간과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게 없으면 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즉, 폐인이 아니면 이뤄낼 수 없는 것. 마치 죽고나서 유명해지는 많은 예술가, 수학자, 과학자 들이 만든 그런것들 말이다. 하지만 끝 없이 절망하는 스스로를 보고 나서는 점차 폐인이 되어간다. 술에 의존하고 몸을 망치게 된다. 지난 10여년간 내가 본 나의 모습이 그랬다. 처음 반은 그럭저럭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나중의 반은 극도의 실패였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 같다. 주도적인 사람이 되려면 계속해서 성취감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허황된 목표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 같다. 스타트업 해서 대박낸다 이런것보다 단 한명의 유저라도 소통해서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 그걸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사업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내가 생각한 비즈니스의 세계는 이렇게나 달랐는데, 나는 벌써 두번씩이나 사업을 애들같은 생각에서 했었다. 정말 결국에 내 문제는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 일단 해보고 안되면 말고의 식이 너무나도 컸다.
최근 다시 읽고있는 stephen covey의 seven habits를 보고 있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읽는 것 같은데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존재한다” 라는 말이 있다. 내게는 어떤 외부의 물리적 혹은 정신적인 자극이 오더라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걸 10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 결국 그거다. 내가 당장 뭔가를 먹고싶어서 먹는다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다이어트 등의 이유로 먹지않는다고 반응한다면 그건 내가 그 공간을 내 의지와 내 목표 중심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안되는 상황들 속에서 마치 유혹처럼 올라오던 것들,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이 그랬다. 내 반응의 공간을 그저 당시의 유혹속에서만 선택하고 만 그 결과들이었다.
신중한 선택을 위해, 이게 충동적인 선택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결국 나 스스로가 확고한 사명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최근에 내가 가장 불분명해진 것이 그부분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아침의 시작을 사명서를 읽으면서 시작했지만, 꽤 오래전부터 목적성을 잃었다.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지금 살고있는지. 취직? 돈벌기? 물론 목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내 평생을 좌우할 목적인 것일까.
유라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 기술력으로 AI기술이 사람을 돕는 플랫폼을 만들겠다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내 기술력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너무 완벽한 것을 만들려 한것도 문제였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것을 만들었다 보니 실속이 너무나도 없었다. 이게 무슨 서비스인가, 데이터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아서 제공하려 했는데, 정작 내게는 인사이트를 찾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수학스터디를 시작하고 AI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이게 내 인생의 ‘주’가 될 수는 없었다. 재밌긴 했지만, 하면 할수록 개발과 동떨어진 이 길에서 계속 방황했다. 프로그래밍이 재밌었지만 정작 나는 개발을 하루에 몇시간이나 하고있는가? 와 같은 생각들.
최근에는 프랑스어 공부를 한지 한 반년정도 되었다. 프랑스어는 정말 무턱대고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15-20분 정도만. 더도 덜도 없다. 가장 부담 안되는 선에서 딱히 장기간의 어떠한 목표는 잡고있지 않다. 그냥 뭐 프랑스어가 들리거나 읽힐 정도만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해서 한 5년 정도 잡고 있다. 이런게 취미인 것이다. 사실 내가 AI에 관심가지고 공부하고.. 이런게 과연 인생의 ‘주’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기존에 내가 좋아하는 글로벌 서비스 개발과 데이터 ETL에 더 주목을 해야할 것인가. 당연히 후자다. 어느순간에는 취미가 삶의 ‘주’가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당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에도 막 AI엔지니어가 되고싶고.. 이런 생각은 엄청 많은데, 그렇게 또 무턱대고 발을 담그거나 해당 커리어 찾으려고 한다면 난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과정속에서 난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엔 잘 졸업해서 원하는 곳에 원하는 일을 하는 ‘엔지니어’로 취업하고, 나중에는 서비스 기획도 하고, 더 나중에는 내 사업도 하고. 글쎄 또 세상이 워낙 빠르게 돌아가서 동시다발적으로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워낙 일을 오래해서 (그리고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구성원들 속에서 스스로를 테스트해보며, 시너지를 내고 하나의 큰 미션을 가지고 움직이고 싶다. 그 미션은 무엇일까, 조직 구성속에서 난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를 끌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내 단점은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긍국적으로 엔지니어 내지는 내가 원하는 인더스트리에서 무엇을 성취하기를 바라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내리는게 지금의 목표이다.
한번의 대학원을 통한 잠깐의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큰 의미를 가져오는 것 같다. 다음글에 이어서 좀더 스스로의 장단점과 원하는 바에 대해서 긍국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어쨌든간에, 삶은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으면 방황하게 되는것만큼은 사실이다. 잃어버린 내 5년의 시간, 이를 발판으로 적어도 50년은 반듯하게 살고싶은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