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약 3주정도 다녀왔다. 즐겁게 방문한 한국행이, 마지막에 우리 딸기를 하늘나라로 보내서 상당히 슬프게 출국했고, V문제도 있었고, 하필 midterm기간이 겹처 발만 동동 굴리던 시간도 있었다.
지난번 여권 분실 후, 한국 방문을 하기 힘들어 일년만에 방문했다. 일년만이라.. 일년간 물론 카톡 전화 등을 많이 드리긴 했지만, 변변찮게 효도한번 못한게 그간 한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모님 제주 일을 도와드리기도 마음 먹고, 제주 내려가 밭일도 하고 CCTV도 달고 굴뚝도 교체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간 얼마나 부모님, 특히 어머니 혼자 일하시는 것을 가슴아퍼하며 지켜봤는지 모른다. 이번 제주에서 일을 거의 다 끝내서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반면, 친구들을 만나보려 시도했는데 역시나, 미국을 가니 한번 싹 정리가 된 대인관계는 이제 만날 수 있는 사람인게 크게 많지는 않다. 졸업 당시 1학년이던 후배들이 벌써 졸업반이라니, 그러고 보니 벌써 내 동기들도 대리를 달 시점이구나. 사실 동기들은 연락되는 친구가 두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고등학교 친구들 몇명이 연락될 정도, 물론 상황은 내가 이렇게 만들긴 했지만, 뭐 나름대로 깔끔하다고 해야할까..
민주주의
서울의 현실은 엄청나게 격동적이었다. 촛불집회나 탄핵, 대통령 파면, 세월호, 싸드, 싸드보복 등.. 미국에 있을때는 크게 피부에 와닿지 않던 것들이 몸소 느껴졌다. 아직도 제주공항에 도착했을 때에 그 서늘함은 잊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가 매우 한적해 진 감도 있다. 하지만 웃기게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너무나도 심해서 기관지가 좋지 않은 우리 아버지가 엄청나게 걱정됬다. 자주 제주에 내려가시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하지 않나..
대통령이 파면됬다. 어머니와 나는 이정미 재판관의 선언을 라이브로 제주에서 봤다. 나는 지난 대선때 문재인을 뽑았고, 사실 지금까지 세 번의 투표 모두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런데 내 20대에는 민주당이 운이 없던지, 계속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당선됬다. 이명박 박근혜등..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결국 10년간의 그들의 횡보에, 국민을 더 잘먹고 잘살게 해줘야 하는데 자기들만 배를 채우는 것이 결국 들통나서 (아마 이명박 4대강 사업 등도 조만간 심판받지 않을까) 지금처럼 대통령 탄핵 등이 된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을까. 참으로 자랑스럽게 이 광경을 지켜봤다. 나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실 노무현 정권에 내심 실망하긴 했는데, 그래도 깨끗하고 바른 정치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말만 거창한 뭐 창조경제니 747정책이니, 이런것보다 뭐 BBK나 4대강 사업 비리부터 해서 지금의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나 그런것들에 이어지기까지, 20대를 바쁘게 살아가서 사실 잘 눈치를 못챘지만 지금의 내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그렇게나 취업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어쨌건간에 앞으로는 정권 교체될 것이고 이젠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니깐.. 이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더 정리해 보는게 좋겠다.
V
한국방문은 사실 무리해서 온 것이었다. 학기중에 중간고사가 두개나 있는데도 무리해서 한국에 방문했다. 어쨋든간에 불체는 싫으니깐. 그런데 한국에서 발만 동동 굴리던 시간 생각하니, 미국에서의 그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고 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공부를 하던지, 취업을 해서 GC, GC 하는지를 알게됬다. 솔직히 미국에 아주 눌러살 생각은 없는데, 워낙 좋은 기회들이 체류권한 혹은 일할 수 있는 권한에 따라 갈리니 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나는 유라임만 잘 만들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가장 컸다.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 말이다. 사실 작년에도 V때문에 4월에서야 마무리되고, 또 바쁘게 학기를 보내다가 6월에서야 부랴부랴 유라임 개발을 시작하고, 8월쯤에야 어느정도 완성을 했다. 그래서 계획상으로는 연말에 PT를 열심히 돌며 올 초부터는 특허등록하고 투자자나 제휴사를 모집할 예정이었는데, 11월 부터 꼬이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게 계속되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막연히 이것도 저것도 하고싶다는 생각에 결국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부한것? 글쎄, 2015년에 Angular공부한것, 2016년에 그나마 React를 공부한게 다라고 해야할까, 논문이나 읽자고 했는데 읽은 논문은 페이퍼 몇 개 뿐. 사실 학교 공부 따라가기도 급급했는데 더 중요한것은 주중에 너무 놀았다. 보통 저녁에 있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집에서 쉬기 급급했는데, 9시쯤 끝나는 수업 이후에 몰려오는 공허감에 야식을 많이 먹었다. 덕분에 살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1년 전에 비해 무려 10키로나 찐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량
정말 놀았다. 무슨 미국사람이라도 된 양 말이다.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인데, 그게 마치 이 낮선 땅에서 내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커밋 갯수만 봐도 6월에 커밋 5건, 7월에 19건, 8월에 110건, 9월에 50건 정도. 10월부터 1월까지는 학교 바쁘다는 핑계와 또 멘붕에 커밋도 없는 것이 두드러지게 확인됬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내 불찰이다. 소중하게 주어진 시간에, 정말 하루가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어야 했는데, 아직도 한국에서의 습관이 고쳐지지 않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미국에 와서 느끼기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중에 아주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아에 논다. 선택과 집중이 어찌나 잘되는지, 생활 자체가 규칙적이고 열심히다. 그런데 나는 그깟 잠깐 미국산다는 생각에 그렇게나 놀아댄 것이다.
생각하며 살자.
그래서 결국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잠시 방문해보니,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살더라. 그래서 무척이나 큰 긴장감을 가지고 다시금 돌아왔다. 내가 정말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까? 솔직한 심정으로 작년 한 해를 저녁 내내 술로 오염된 삶을 살았다. 무엇이 그리 스트레스였을까, 사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일기도 적지 못하고, 내 생각을 어디다 표출하지도 못했다. 그렇게나 많이 하던 블로그도 잘 안하고, 가끔 필받아서 쓰는 브런치 이외에, 이 블로그도 예전에는 그렇게나 많이 조금이라도 글을 썼었는데, 작년 6월부터는 고작 9개의 글을 썼다.
결국 생각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에, 잡념에 잠이 오지 않고 생각이 많다면 일기를 쓰던 글을 쓰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술로 풀려 했고, 잠이 오지 않으면 술먹으며 영화나 미드를 봤다. 사실 이 맥주 한두잔 먹으며 미드 등을 보는 습관은 예전부터 간혹 있던 일이긴 한데, 미국 와서는 이게 주객전도가 되어 매일을 그렇게 보낸 것이다. 미국오기 전인 1월과 2월에도 사실 너무나도 복잡한 상황속에 술로 보낸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공허함과 공부
그래서 생각해보면, 공허함이 컸다. 결혼하고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크나큰 간섭 없이 가질 수 있었지만, 그런 자유에 따른 책임이 크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이전까지 내가 꼬였던 모든 것들이 내 준비의 불찰이었다. 만약 학부시절, 막연히 공부해야지, 개발해야지 혹은 연구해야지 라고 말했던 것들이 하루하루 꾸준히 이뤄졌다면 미대학원 어드미션때문에 마음졸이던 그 5개월이라는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남들은 2~3년씩 미대학원 준비하는데, 나는 그 흔한 페이퍼 하나 없이 고작 경력하나 믿고, phd하나쯤은 되겠지 하는 거만한 생각이라는게 말이다.
이 블로그에서 엄청나게 얘기했지만, 예전에 병특 구하기 전에도 그랬고 전직할때도 그랬다. 하루하루 앞날을 모르는게 현실이고, 그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말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 하루하루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결국, 실력을 키우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실력을 키우고 검증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자격증, 학력, 연봉, 회사 등등.. 그런데 뭐 하나 딱 해서 집중할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것들 사이에서 공통 분모를 찾고, 이를 위해 꾸준히 할 수 밖에 없다.
목표
그래서 공부와 자격증, 연구에 대한 목표를 간단하게나마 세워봤다.
- 공부
- 학과공부(2016.05까지)
- GRE
- Cloud Computing / HCI / SE
- Coursera 이수 – FP, Calculus, ML, PMP (UCI)
- Udemy이수 – DS, ReactJS, Hadoop
- 연구
- CSCW, SIGCHI 주요 논문읽기(2015~)
- P교수님이랑 Cloud Computing/MSA 관련 연구(paper작성)
- 자격
- Project Management Professional (PMP) – 2017
- Oracle Certified Associate, Java SE 8 Programmer – 2017
- Google Certified Professional – Cloud Architect – 2017
- Adobe AEM 6 – 이건 생각중
- 사업
- 유라임 계속 (~2018.08) – 개발은 9월 전에 끝내기.
그렇게 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단순하다. 취업 혹은 공부 계속. 어차피 사업이라는 자체는 경험이라기 보다는, 내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더 크다. 그렇다면 다른 것들은 결국 내 삶에 있어서 지적인 부분을 충족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래야 이 삶의 공허함이 채워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평생 공부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요즘에서야 나는, 공허한 시간을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으로 때우기 시작했다. 우리 인류가 이루어둔 많은 업적들을 하나하나 알아감에 따라 삶의 즐거움도 커지는 것 같다. 그래, 내가 미국에 온 이유도 이런 지적인 것들을 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공부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사회속에, 글쎄 나는 다시한번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앞으로는 그저 잡념속에 사로잡혀서 있는 사람보다는 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나로 거듭나기를, 2017년이 1/4가 지난 이 시점에서야 다시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