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결혼 후, 처가와 우리집을 번갈아가며 미국행을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밀린 일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도 작업이 상당히 잘 된다. 집안의 그 작업환경과, 스피커에서 나오는 Hardrock을 들으며, 스스로 차분한 마음에 연신 그간 막혀왔던 코딩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왜 그토록이나 작업이 연기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꿈꿔왔던 개발 환경, 그 이상이 나의 업무와 대비했을 때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사실 나는 디지털노마드를 꿈꿔왔다. 여러 곳을 여행하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 나의 하나의 로망이라 여겨졌고, 병특 이후에 나는 주로 카페, 학교, 집, 사무실 등 장소를 불문하고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곳저곳에서 일하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약간의 여행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내가 정말 "프리"하게 일을 하는구나 라는 또하나의 만족감을 가질 수 있었다.
허나 아이러니 하게도 실제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전혀 아니다. 사실 나의 경우는 개인 사무실과 집에 모두 작업환경을 갖춰두고 있다. 내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작업 환경은 맥프레 15인치를 기본으로 쳤을 때, 24인치 이상의 모니터와 선호하는 키보드와 마우스 이다. 집에서 쓰는 것을 예로 들면, 27인치 LED모니터와 리얼포스 88u, 로지텍 G9 Laser가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환경을 카페에서 만들기 위해 모니터나 키보드, 마우스를 들고 다닌다? 그것도 참으로 웃긴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무슨 홈리스도 아니고..
그런 생각으로 그간의 나를 한번 바라봤다. 몇년 째 카페에서 한두시간씩 작업을 하곤 했는데, 작업 능률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 작진 않지만 15인치 모니터를 보고, 펜타키보드와 매직트랙으로만 작업을 해야한다니, 흡사 내가 중학교 시절 정보올림피아드를 대비하며, Compaq 15인치 컴퓨터를 들고다녔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멀티테스킹과 작업 능률의 향상을 위해, 한편으론 시력보호와 편의를 위한 배려는 카페에는 전혀 없다는 것..
2012년부터 계속된 카페에서의 작업이 나의 능률을 상당히 떨어뜨려 놓은 것 같다. 물론 "팀 작업" 측면에서는 카페업무가 꽤나 괜찮은 축에 속한다고 본다. 허나 나처럼 홀로 작업하는 경우라면, 정적인 업무환경이 없으면 능률이 전혀 오르지 않는다. 어느 카페를 찾던 콘센트를 찾는 것은 습관이 되어 버렸고, 매번 다른 와이파이며, 매번 주변 사람들까지도 달라서 시시때때로 주변사람들의 소음이 상당히 시끄럽다. 게다가 4천원이 넘는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죽치고 앉아있자니 그것도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또한, 해외여행을 하며 절실히 느꼈지만 인터넷 속도가 우리나라만한 곳이 없다는 것도 한몫한다. 특히 내 로망이었던 프로방스를 여행하고 나서, 그곳의 아름다은 절경과 반비례하는 인터넷 속도.. 정말 CDMA급 정도 되는 3G속도에 크나크게 좌절하고, 호텔로 돌아와 ISDN급의 인터넷에 또한번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와이파이가 빠르긴 하지만, 카페마다 다른 패스워드와 수시로 마주하게 되는 그 Wi-Fi광고들.. 사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광랜에 비하면 거의 저질 수준의 와이파이는, 인터넷을 통해, 특히 클라우드 서버나 원격 DB에 터미널로 접속해서 작업을 주로 하는 내게는 너무나도 작업하기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매일 아침에 내가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노트북은 기본, 무선마우스, 어뎁터, 휴대폰충전기, 휴대용 USB충전기, 에그, 아이패드, 아이폰은 기본, 개발상황에 따라 레퍼런스나 가이드북 같은 것들을 챙겨야 할 때도 많다. 기본 7kg부터 시작해 때론 10kg까지 가는 내 가방을 들고 학교를 걸어다녔다. 덕분에 내 허리는 망가지고, 아직도 백팩을 매면 허리통증에 시달린다. 멀쩡한 백팩이 남아나지 않고, 튼튼하면서도 수납공간을 중시하다 보니 저렴한 샘소나이트는 힘들고 만다리나덕이나 투미 백팩을 사용하는데, 돈이 한두푼도 아니고..
한편으론 이런 work in anywhere이 주는 가장 큰 단점은 일을 매번 물고 다닌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어디서나 일을 한다는 것이 주는 치명적인 단점이 이와도 같다. 해외에서, 뭐 구글같은 곳의 작업환경은 언제 어디서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소한 내게는 신격화 되어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그건 계속해서 언제 어디서든 일을 처리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출/퇴근이 자유인들 계속되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일을 그 만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개발의 특성상, 야근을 하면 작업양은 늘겠지만 창의성은 떨어진다는 것. 인터넷의 지속적인 연결 또한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결국 나같은 엔지니어 들에게는 디지털노마드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노마드도 맞는 업종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업 환경에 많은 공을 기울이는 내게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 차라리 내겐, 여행을 떠날 자금을 모아서 내게 맞는 작업환경을 갖추고, 그곳에서 몇 년을 앉아 작업을 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결국, 결혼을 한 내게는 나만의 집과 사무실이 차려지는 것, 그게 지금의 내겐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가 아닌, 공사를 확실히 구분하고 가족을 챙길 수 있는 그런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싶다. 꿈속의 디지털 노마드여, 그간 시행착오를 겪게 해줘서 고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