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신년 계획을 세워보면서 스스로 느끼게 된다. 이건 정말로, 불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2010년부터 엑셀 기반 자기관리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엑셀에 내가 생각하는 계획들을 모조리 입력하고, 잘 분류해서 매일같이 체크하고, 회고하는 시스템이다.
2014년쯤 대학원을 준비할 때, 나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박사 유학을 하려고 했다. cognitive computer science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뭐 이런쪽으로. 그런데 정작 내 발목을 잡은 것은 영어실력과 대학원 유학을 위한 기본적인 소양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 방향을 틀어서 스타트업을 했고, 결국 이 방향도 제대로 되지 않자 내가 하고싶은 프로덕에 집중해서 대학원에 다시 갔고, 다시 하고싶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입사한 회사는 한 2012년 쯤에 막연히 나도 프로그래밍 잘하니깐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생각에는 첫 단추가 잘못됬던 것 같더라. 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할 때에는 그저 학원에서 기초적인 알고리즘 방법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죄다 기출문제와 답만 알려줬다. 아마도 이게 한국식 교육의 문제점이겠지만, 이런 ‘공부’방법론은 내게는 정말 최악을 안겨줬던 것 같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일까, 나는 ‘답’을 연구했지 ‘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이런 문제해결방법론의 전환점을 가져온 것이 3년 전이고 이후로 내가 모든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던 것 같다.
결국 ‘내려놓음’ 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내가 생각한 엑셀 자기관리 시스템이나, 이를 웹버전으로 만든 ‘유라임’ 이나 모두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10년 넘게 내가 누적한 데이터와, 매주/매달 했던 ‘회고’들 때문일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전혀 관리가 안된다. 목표란게 정말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게 인생이고, 내가 봤을 때에는 그 주기가 엄청나게 빨라진다. 10년 전에는 MBA나 박사과정 해야지 라고 목표를 했다면 지금은 why?가 우선이다. 내 인생에 어떤 필요성에 의해 이를 해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새로운 상황들도 생긴다. 직장인이 되고, 애아빠가 되는 경험과, 이를 통해 바뀌는 인생 또한 그렇다.
존경하는 사업가 팀쿡이나 스타브잡스가 모두 말하듯이, 자신들은 절대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기껏해야 3~4년 정도가 maximum이라는 것이다. 기업도 결국 생각해보면 ‘사람’이 확대된 DNA이고, 그게 커져서 어떤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이다. 정말 작년 초에 DNA의 미세한 차이가 생물을 결정한다는 것과, 사람이 어떻게 지식을 전파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인류가 지구의 majority가 되었는지에 대해 배웠을 때, 그게 결국 어떤 강대국이나 기업에까지 전파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존경받는 기업들이 그러지 않을까? 돈을 바라보고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심장이 뛰는 그것을 한다는 것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 엑셀기반 체크리스트나 유라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 방법론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고, 이에 대해서 전혀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적어도 유라임에 대해서는 이런 인생설계를 돕는 어떤 웹 기반의 시스템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그건 막연한 생각이고, 아직 어떻게 구체화를 해야할지는 감잡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그런 소양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하나 둘 투자할 뿐이라 생각해야 하나.
어쨌든, 뭐 100년의 미래를 설계한다.. 참 6년 전에 VC들 앞에서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고 다녔는데 참으로 웃기다. 그나마 좀 빠르게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 생각건데 난 절대로 미래를 ‘설계’대로 살 수 없는 것 같더라. 애초에 이게 불가능하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뭔가를 ‘하고자’ 할 때에 이게 자동적으로 되면 그것은 최상의 내가 하고싶은 일일 것이다. 예컨데 회사에 출근해서는 회사의 온갖 기술문서들을 보는걸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난 즐겁게 하고 있다. 요즘엔 퇴근을 해서도 개발서적을 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개인시간에 자주 전자음악 작곡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 한편으로는 개인개발 파이프라인을 만드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마음을 안끄는 것도 많다. 혹은, 지금까지 안된것들. 왜 그것들이 안됬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나 술을 끊자고 끊자고 말했던 것이 딱히 어떤 계기도 아니고 깊은 고찰도 아니고, 하루의 ‘보상’을 작은, 다른 것으로 돌리니 술을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럼 결국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족, 건강 그런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운동이나 식사조절 같은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가족을 챙기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육아나, 경제활동(=회사), 운동 등을 하고 나면 남는 시간이 사실 생각보다는 많다. 자기전에 30분 정도 멍떄리는 시간(=유튜브) 도 있고, 뭐 하루종일 코딩만 하는 것은 아니니깐. 그런데 직장이나 가족이 ‘주’가 된 이상, 더 이상 막 3시간, 5시간 이런 ‘긴’ 시간이 매일같이 주어지지도 않는다. 결국 이렇게 5~30분씩 짧게짧게 주어지는 시간동안 내가 뭔가를 하고싶은 게 있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해야 하는데, 거기서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되려면, 결국 삶을 ‘심플’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주말을 제외한 260일의 시간, 즉 72%의 시간을 회사에 사용한다면 가족을 위해, 그리고 기본적 삶의 소양(ex. 운동)을 위해 사용한 시간을 빼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이다.
계획을 완전히 세우지 않는게 답인 것 같긴 하다. 회사에서는 감사하게도 적어도 회사가 설계한 career path가 존재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넓혀나가면 된다. 사실 회사에서 필요한 소양이 내가 본래 공부하고자 하는 것들이라 회사를 좀더 즐기면서 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축복받은 회사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평생 이렇게 개발의 최전방에서 기반기술을 공부하고 이를 leverage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이자 어떤 제품, 시스템, 파이프라인을 설계 및 구축하는 데에 있고싶다. 한편, 내가 커뮤니케이션에 욕심이 있는 것은 사람을 매니지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지금의 조직이었으면 좋겠다. 영향력이 있으려면 결국 성과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좀 낭비긴 하다. 꼭 내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 솔직히 설계는 말이 안된다. 난 그런 고민이 많다. 뭔가 지금의 수 많은 기술, 정보,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에 너무나도 당연히 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이 모순 말이다. 결국 이 모순이 내가 지금까지 끝없이 생각했던 그 괴리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 생각은 끝없이 될 것 같다. 그것이 어떤 form으로든 말이다. 데이터 시각화던, 개발이던, 웹이던, 음악이던.
결국 난 큰 틀을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도 잘 알고 있다. 그건 굳이 노트에 5년, 10년내로 뭐가 되자 그렇게 적지 않아도 된다. 난 글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스스로를 고찰한다. 그게 머릿속에 남는다. 사실 그래서 지금 내가 SWE가 된 것이 아닌가. 미래는 결국 내가 무엇에 이끌리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게 운동이나 다이어트이면, 그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계획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내가 마음이 끌리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내 마음을 알아내는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것때문에 글을 쓰는 이유도 있다. 난 참으로 생각이 많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봤자 틀어지고, 지키지 못하는게 훨씬 크다. 그걸 스스로 잘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2023년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그것은 결국, 지금까지의 나를, 계획적인 나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인 동시에 정말 ‘냉정’하게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결과이다. 10년 넘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왔지만, 그것이 쌓여가는 것에 큰 즐거움을 얻었지만, 어느 순간 내 삶은 그저 하루하루 했다는 체크박스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거기에 목메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계획없이 하루하루를 살면 삶이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계획보다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그 ‘보상’이 존재하는게 좋을 것 같다. 회사라는 체계는 그 목표와 보상이 너무나도 확실해서 내가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개인의 삶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체력적 소비를 넘어서서 내게 큰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온다. 육퇴를 하고 뭐 그런것도 없고, 그저 이 한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자체에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건강은 주로 몸무게로 나타나는 수치인데, 미국에 와서 7년간 이루지 못했던 두자리수의 몸무게를 이제는 이룰 수 있는 고지에 서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보면 건강은 일단 외적으로 충분히 보상이 되고 나이가 들수록 anti-aging이란 자체가 주는 의미를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고지에 앞서서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더 충분한 보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하기로는 몸무게 목표를 이루면 몇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윈도우 게이밍 PC를 맞추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결국 삶이란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점점 수동적 삶을 능동화 시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해야하는구나 싶다. 그리고 사실, 머릿속에 펼쳐진 그 청사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걸 굳이 목표나 계획으로 구체화 시키는 행위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이제서야, 그래도 2023년이 시작되는 지금, 나는 깨우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오늘 하루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