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깊히 생각하고 발전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결국 그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답이라는 것은 결국, 2년전에 내가 내린 답이나 뭐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마인드컨트롤“을 조금 더 심화시켜 생각한 결과, “화에 대한 억제” 라는 답을 내릴 수 있었다. 2008년에 생각한 이러한 개념을 난 이제와서 나에게 맞게 구체화 시키고 있다. 허 참.. 그간 나는 뭐 하고 지낸 것인지. 어쩌면 마음을 손에서 놓은 채 삶을 가는 대로만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최근 회사 이직등등 일련의 여러 사건들이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당장 눈 앞의 해소거리(술이나 고기 같은.) 만 찾다가 그러한 것들이 나도모르게 내 몸에 익숙하게 습관처럼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을 난 무시하고 지냈던 것이다.
“화”라는 것의 종류.
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답은 간단하다. 화가 나는 것, 욱하는 것, 열받는 것, 성질 돋구는 것 등등 살다보면 이런 일은 참 많다.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나는 보통 저런 상황이 되면 얼굴에 표가 나는 편이며, 포커 페이스를 잘 유지하기 힘들다. 최대한 억제한다 치더라도 뒤에 가서는 뒷담화를 일삼는다. 특히 나도 모르게 욕(심하지는 않지만)을 막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그 상황을 나도 내가 그랬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술을 먹다가 화내는 경우는 정말 나는 깽판을 쳤을 지도 모르는데 다음날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 참 그야말로 나 자신이 이렇게 무섭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위키백과에서는 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3. 못마땅하고 성난 기분. 어원 한자 火 활활 타는 ‘불’을 사람의 감정에 비유하여 생긴 말. • 화를 벌컥내다. •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 화를 다스릴줄 알아야 비로소 어진 사람이 된다. 비슷한 말 성, 불화, 불만 파생어 화내다
난 참 위키백과에서 저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화를 다스릴줄 알아야 비로소 어진 사람이 된다.” 같은 말들을 하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화라는 것이 단순히 성질난 것에서 벗어나 평정심에 살짝이라도 흐트러짐을 가하면 그것이 바로 화가 아닐까? 평정심이라는 덩어리가 있다고 치면, 평정심이 흐트러짐은 곧 하나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떨어져 나간 조각은 화의 정도에 따라 멀리 멀리 떨어져 나가버린다. 이를 다시 주어담아야만 평정심이 온전한 형태로 유지가 되는데, 다시 주어담는데에 대한 시간은 똑같이 화의 정도에 따라 비례된다.
평정심 조각을 주어 담는다는 의미.
예전 중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자연스래 헤어지게 되었고, 대학에 진학해서야 겨우 연락이 되서 다시 만나보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사업 이외에 시간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해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예전의 그러한 친구로 생각하고 거의 매일같이 연락을 해서 놀자고 한 것이다. 가까운 곳도 아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4호선 끝자락에서 말이다. 결국 나는 그 즉시 연락처에서 삭제해 버리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또 한 예로는 고등학교 때 참 어리게 산다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라기 보다는 그냥 같은 학교 아이일 뿐이었지만, 여하튼 그 친구에 대한 인상은 참 왜 저런 행동을 하며 저러고 다니는 것이었지만, 그때보다 시간이 지나 지금 사회에 대한, 혹은 대학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면 참으로 많은 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뭐 극단적인 상황은 위의 나의 사례에서는 없지만, 전자의 경우는 내가 대화한번 시도하지 않고 극단적인 조취를 취한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편견에 의해 흐트러진 평정심 조각이다. 전자는 잦은 압박에 의한 평정심의 흐트러짐 정도라 보고 싶다. 결국 ‘욱’해서 행한 행동이고, 어쩌면 돌이키기 힘든 상황까지 가지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관심은 없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연락하기가 두렵고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다. 예전 사업을 하던 당시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 저곳에서 듣던 때에, 내 나름대로 판단한 일종의 “문제아” 라는 사람이 후에 큰 문제를 일으켰을 때, 아무리 그 사람과 친했더라도 지금까지도 그러한 감정이 남아있다 보니 쉽게 연락을 취한다거나, 친한 행동을 하는 것이 힘들다. 사실은 참으로 친했던 존재였더라도 말이다. 물론 편견에서 비롯된 이런 사례들이긴 하지만, 사실상 나의 평정심에 흐트러짐을 주었다는 자체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이고, 이를 마무리 하기에는 아직까지는 그 불화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도 불화는 꺼지지 않고, 평정심 조각도 제 자리를 못찾는 것이 아닌가.
나에 대한 화.
가끔도 아니고 매우 자주, 나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 화가 날 때가 많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이 좋은 기회를 나는 왜 그냥 놓쳐버린 것이지? 이것들 역시 돌이켜보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해서 그랬고, 화와 욱함을 제때 바로잡지 못해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내가 또 한번 화를 내게 되면 또 다시 나는 흐트러진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또한 돌이켜 보면 후회가 남을 행동이 되고 … 이러한 사이클이 무한 반복이 되면 진짜 인생의 중요할 때에 돌이켜 보면 나의 이러한 태도에 정말 자살충동까지 일으킬 지도 모른다.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단지 한숨만 내뱉지 말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매로 다스리면 면역이 생기고 화만 돋굴 뿐이지만, 쓰담으로 다스리면 순해지고 강해진다는 것이다. 남보다 소중한 것이 나 자신이고, 남에 대한 화를 생각하기 전에 나에 대한 화를 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결론적으로 마인드컨트롤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만 된다면야, 자신이 설계한 것을 굳은 의지로 지켜낼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성공의 지름길이고 참 이러한 행동이 화와 평정심과 연관되어 있다니, 인생 참 아이러니 하지만 우리는 지킬 수 밖에 없다. 약육강식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내세우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화를 다스리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미친듯한 열정을 부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그게 이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라고 깊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