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하던 일이 마무리가 잘 안됬지만, 어쨌건 이사를 잘 마무리했다.
이사를 하고나서 가장 하고싶었던 일 중 하나는 걷기 출근. 물론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7시간이란 자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집에서 기차역이 가까워진 만큼 그곳까지 걸어가는데 10분, 기차(칼트레인)가 가는데 30분, 도착해서 사무실까지 20분, 도합 1시간 좀 넘는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건 걸어서 간다는 사실에 사뭇 신났다.
오래전 생각이 났다. 분명 미국에 오기전까지 나는 걷는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음악을 들으며 걸을때도 있었지만, 보통 듣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좋아하긴 하지만, 걸으면서 보고 듣는 그것이 더 좋았다. 내가 자주 오가는 길에는 추억이 깃들어져 있었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의도 회사시절 걷던 여의도 지하차도, 상암동 출근시절 걷던 월드컵경기장변 도보와 누리꿈스퀘어 부근의 길, 선릉 출퇴근시절 걷던 선릉로, 3년간 학교를 다니던 장승배기로, 금천과 구로 출퇴근 시절 걷던 신대방 자전거도로 등.. 걸으면서 계절을 체감했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했었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 이상은 걸어서 다녔는데, 그런 추억이 미국와서는 많이 없어졌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내게는 걷기만한 명상도 없다. 걸으면 살도 빠진다. 걸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든다. 수 많은 사람들, 바쁜 사람들. 산호세에 있을 때에는 원체 시골인지라 도로변에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사무실에 내가 출근을 하던 말던 출근길 정체는 있을지언정, 출근을 위해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을 보는 것은 거의 드물었다. 그런 동네에서 샌프란으로 사무실을 옮기니, 비록 작디 작은 사무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만족스럽다. 모든게 셀프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돈도 절약된다. 무엇보다, 하루에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산호세 부근을 떠나니 이제야 사람사는 느낌이 든다.
왜 희안하게 바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떤 무언의 경쟁의식과 긴장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서울에 오래 살아서 그럴까, 모두들 바쁘게 사는데 나만 뒤쳐져 가는 느낌이 한도 끝도없이 들었다. 정말 심할 정도로. 지난 3년의 미국생활과 제주 생활이 특히 그랬다. 물론 학교를 다녔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너무 긴장의 끈을 놓고 살았다. 집-학교-회사 를 오고갔지만 집에서 쉴때가 더 많았다. 아무리 재택을 한다해도 집에서는 작업이 잘 되지 않았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내가 있건 말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막이 쳐지니 누가 작업을 하던 말던 보이지도 않고 신경쓰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유라임은 지체됬고, 나는 계속해서 살이 쪄갔다. 현실 회피와도 같았다. 그저 사무실에 몇 시간 앉아있었다는 자체로 나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모든게 허사였다. 난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시골 속에서만 조용히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자꾸만 뒤쳐지는 느낌이 들고 예전과 다르게 프로그래밍 자체도 늘지도 않았고, 꾸준한 삶이 예전처럼 지속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작년 말, 나는 사무실을 샌프란으로 옮겼다. 그리고 올 초, 나는 집을 샌프란 부근으로 옮겼다. 출퇴근에 두시간이나 소요되지만 운동삼아, 그리고 어차피 운전을 안하기 때문에 되려 그 시간에, 최소 한시간은 전철에 있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전처럼 매일 자가 출근을 해도 되지 않아서 너무 좋다. 그때가 피곤했다기 보다는, 남들은 다들 대중교통 타고 출퇴근 하며, 아무리 피로해도 그런게 어떤 공동체적인 일상인데 내가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차를 타고 3년이란 시간동안 출퇴근 했을까. 얼마전 만난 모 회사의 20년차 멘토님은 아래 직원을 20여명 이상 케어하는 위치에 있지만서도 산호세에서 칼트레인을 타고 1시간 넘게 출퇴근을 하신다. 그런거만 봐도 내가 얼마나 배가 부르게, 어리석게 다녔는지 알것만 같더라.
시작이 반이다. 어쨌든, 걸으면서, 특히 월요일에 출근을 열심히 했다는 그 ‘맛’이 너무나도 좋다. 물론 오늘은 예상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었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정말 예전 생각이 난다. 회사에 8시간 이상 앉아있으며 html5와 관련된 구상을 했던 그때, 그때가 벌써 7년도 넘었다니.. 참으로 그립다. 회사 생활 자체가 그립다. 하지만, 이 미국이란 곳은 큰 자유가 보장된 만큼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되려 나는 이런 부분에 익숙한 느낌이다. 회사생활을 파트타임까지 합치면 9년 이상은 했으니,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그 공간 속에서 말이다. 다시금 매일 걸으며, 생각도 정리하고, 몸도 줄이고, 건강도 되찾고 내 삶을 되찾고 싶다. 그런 좋은 출발선을 오늘 넘은 느낌이다. 다시금 스스로에게.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