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푸며, 느끼며 사는 인생.

손님을 맞이하는 주말을 보냈다.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오랜만의 롱위캔드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생각보다 일찍 잠에 들었고 오랜만에 2시도 안되서 일어났다. 크게 피로하지 않았고, 수면도 7시간 이상 되었기때문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

최근의 나는 부단히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떤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결혼한지는 꽤 되었지만 내 삶, 내 관점의 주안이 오로지 ‘나’였다면 이제서야 ‘가족’으로 만들어지는 이 삶의 전환점에서 내가 과연 평생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싶었다. 어쩌면 그간의 집착으로 만들었던 나의 삶이었고, 그 삶이 옳았다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찾던 그 규칙적인 삶은, 오로지 내가 삶의 주안점이라는 생각을 버렸을 때 아이러니하게 찾아왔던 것이다.

사실 최근에 술을 끊으면서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하던, 어떤 방법을 써도 결국 백해무익한 스스로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삶의 모든 실패가 그랬다. 가장 최근의 스타트업에 대한 나의 집착도 그랬다. 펀딩이 실패하고 개발이 지연되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지금은 취업이 잘 되었지만 그전에 잘 안되었던 것은 오로지 나의 문제였다. 전회사를 다니며 오너에게 배신을 당했다 생각했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한 나 자신이 문제였다. 살이 20키로 넘게 쪄버린 것도 누가 만든 것인가, 어떤 핑계를 대도 입에 들어가는 것을 누가 억지로 먹이지는 않았다. 다 내가 음식을 쥐고 내가 먹었을 뿐이다.

그런것을 나는 삶에서 잘 안되는 것을 외부적으로 돌렸다. 그러다 보니 삶에 제약이 없어지고, 허락된 자유가 무궁무진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이 안좋아지고 근 몇 년 간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를 고치려 한게 아니라 환경을 고치려고만 했다. 익숙한 환경을 만들었지만 마음속의 공허함만 커져갔다. 이 공허함은 아무리 술을 찾거나 아무 생각없이 놀아도, 반대로 운동하고 공부하고 하루종일 쉴틈없이 일해봐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럼 그 공허함은 무엇인가? 그건 다름아닌 나를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의지였다.

사실 삶이란 것이 미칠듯이 기쁜 것과 미칠듯이 슬픈 것이 같다고 해야지 맞는 것 같다. 희노애락이 없는 삶이 어디있을까 라는 생각과, 또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삶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삶은 정적이다. 이 정적인 삶이 모여서 성취가 되고, 또한 정적인 삶이 모여서 인생이 망가진다. 매일 술을 먹으면 몸이 망가지겠지만, 매일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쩌면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수 백가지의 선택을 하지만 결국 무엇이 우리를 더 좋게 만들어주는지 알고 있지만 귀찮음과 온갖것을 핑계삼아서 반대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정말 원천적으로 그 선택은 누가 만드는가를 생각해보면 결국 나이고, 그걸 바꿀 수 있는것도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는, 정적인 삶에서 내가 무엇을 통해 작은 성취를 느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다시 앉은 책상 앞에서 나는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고 있다. 음악도 해보고, 친구들과 대화도 해보고, 도움도 주면서 말이다. 우선은 가족에 집중하고 싶다. 지금의 easygoing한 삶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체되고 싶지는 않다. 삶을 더 느끼고 싶다. 묵묵히, 꾸준히 살고싶다. 가족과 함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그게 좋고, 그게 살아가는 것인 것 같다. 더 행복하게, 더 묵묵하게 노력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