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2015년 이후 지금까지 나는 행복한 삶을 간과하며 살아왔다. 분명 나는 행복하다. 누가 뭐래도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부족한 점 거의 없이 살아왔다. 물론 부유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며, 가족의 사랑을 풍만하게 느끼면서 살아왔다.

내 모든 스트레스는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무언가에 꽃히면 그것을 얻기 전에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한 것이 아니라 어떻해서든 꼼수를 찾으려고 했었고, 어떻게던 얻고자 했다. 그렇게 10대, 20대에는 거의 실패 투성이었다. 꼼수만 노리고 있었으니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지금까지의 안절부절을 정확히 분석해보면 꼼수, 즉 지름길만 밟으려고 하다가 적은 시간에 얻지 못하고 끙끙대고, 스트레스를 만들고, 결국 그 스트레스가 스스로를 몇몇 안좋은 길로 이끌었고 그렇게 5년이 지났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대박”이란 길이 그저 난 내가 좋아하는 개발만 열심히 하면 될줄 알았고 당연히 운이 받쳐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컨데 사업을 하려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고용하고, 자금을 관리하고, 공동창업자를 찾고 등등 이런것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제품만 잘 개발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과 늪 속에서 제품은 얼추 만들었다고 치지만 결론적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폐인이 되었다. 겁이났다. 하려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노력을 했었어야 했는데, 나는 현실을 기피했다. 술과 노는 것 만이 나의 안식처라고 생각했다. 개발과 공부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많이 놀았다. 이직에서 실패하면 실패했다고 놀고, 공부하다 안되면 놀고,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다.

작년은 내게 인생의 전환점과도 같았다. 그토록 싫어하던 시험이란 것이 내게 큰 자신감을 가져왔다. 하루 이틀의 노력은 그 결과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2주, 3주의 노력은 결과가 반등되어 돌아왔다. 긍정적이었다. 나도 노력하면 되는구나 라는 것을 정말이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처음 느꼈다. 노력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고 해야할까, 하루에 세네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훈련아닌 훈련을 했는데 그게 결국 답이었다. 무거운 엉덩이가 노력의 반증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느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기했다. 그럼 지금까지 미뤄왔던 대부분의 것들이 이렇게 해서 동작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차례의 시험은 내게 노력하면 결국 된다는 것과, 시험이 삶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세삼 깨닿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내 계획이 미뤄진 이유도, 대부분의 것들이 나란 사람과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들이부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계획을 현실성 있게 줄이는 것과, 집중할 수 있는 intensive시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일기쓰고, 그런 시간은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운동과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무조건 확보를 해둬야했다. 그래서 새벽 4시 기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잠을 7~8시간 자려면 8~9시에 자야한다. 그시간에 잠이 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세시간 전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4~5시에 운동을 하고, 5~8시에 공부를 한다. 그게 전부이다.

그리고 나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이런 생활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사실 나중이 되면 4~5시에 기상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좀더 공부에 투자해야 할 시간이라서 새벽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올해에 어느정도 intensive하게 해야 할 것들을 해야하고, 한두가지의 성과가 보이면 새벽 공부를 한시간 정도 줄여도 괜찮겠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매일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건강과 맑은 정신이다. 집중력을 위해서. 시간을 정말 intensive하게 사용해야 한다. 결국 이게 정말 관리구나 싶더라. 어느정도의 내 평생의 것을 잡고 싶다. 30대에 어느정도 스스로의 그것을 잡는 것. 그게 노력의 진정한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