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따라 더 드는 생각이, 자꾸만 나 자신의 ‘잘못된 점’ 만 부각시키려 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게 잘못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꾸만 나 스스로를 ‘잘못됬다’ ‘노력해야한다’ 라는 말만 하고, 스스로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했다.
그래서 그냥 간단히, 20대에 비해 지금은 그래도 나아진 몇 가지를 생각해본다.
1.술자리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미국에 와서 술자리를 갖는 횟수가 거의 한달에 1~2회 정도로 확 줄어들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에는 1주일에 평균 3번 정도를 술자리를 자의든 타의든 가졌는데, 이정도면 80%나 줄어든 수치. 사실 혼술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지만 적어도 술자리를 통해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문제는 거의 제로가 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술자리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한 이유는, 일단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걸 좋아한다. 그리고 안주와 막걸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과음을 하고, 간혹 술김에 상처를 주거나 받고, 이때문에 인간관계에 비상이 생긴다거나. 여러가지 이유에서 근 10년을 계속해서 술자리에 대한 생각을 앉고 살아왔다. 20대 초반에 금연하려고 시도한 3년을 (결국 성공했지만) 비교하면 거의 이와 비슷할 정도로 술자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막심하기도 했고,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고.
하지만 30대가 되니, 미국으로 어떻게 보면 도망을 온 느낌도 들고 (응?) 여기서는 적어도 ‘타의’ 라는 것이 없다 보니 자의로 해결이 어떻게던 된다. 글쎄, 열심히 참고 있으면 한국 가서 꼭 먹고싶은 것과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 어찌보면 더 좋은 셈일텐데. 이제 스스로만 잡으면 되겠지. 어쨌든, 술자리 극복은 좋은 일이다.
2. 진로
20대에는 사실 내가 뭘 해야할지를 잘은 몰랐다. 그저 막연히 실리콘벨리에 가고 싶거나, 유학을 가고싶은 생각은 있었다. 이런 생각이 계속한 가운데 27살부터 유학을 준비했으니, 유학을 준비하고 나서 어떻게던 미국에서 원하는 기업을 가고 싶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진행중이다.
더 이상 다른길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사실 복학을 하고나서는 전공을 경영으로 바꿀까도 생각했고, 학부때 광고홍보학도 부전공 하는 등 약간의 타전공(공대 제외)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지만,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많은 부분들이 CS와 기타 내가 꼭 관심있어하는 분야에 포커싱 되어서 지금의 길로 왔다. 평생, 개발자 혹은 매니저로 IT업계에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는 굳게 되었다.
3. 연구(개발)방향
2008년 처음 웹2.0을 알게 되고 나서 소셜웹, 매쉬업, 오픈소스 등 다양한 것을 접했다. 융합이라는 것이 내게는 걸맞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학부때 또한 30여개의 과목을 들었다. 하지만 도통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개발을 잡고싶은지는 몰랐다. 연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학원을 준비하며, 28살때 랩서칭 하며 정말 관심없는 분야는 쳐내게 되었고, 지금은 HCI의 일부분, SDN (클라우드)의 일부분, ML의 일부분, FP, 마이크로 서비스 그리고 풀스택 개발 등의 관심사가 생겼는데, 따지고 보면 대부분 예전보다는 덜 추상화된 셈이다. 여튼 이 연구방향은 예전에는 너무나도 “내가 뭘 해야할까” 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한결 마음이 편하다.
4. 신앙심과 삶의 의미
10대때 잘 다니던 성당을 20대에 거의 가지 못했다가 지금와서는 다시금 하느님을 찾고 있다. 정말 필요할 때만 찾는 것 같아서 나 스스로가 못마땅 하지만, 20대때에는 아무리 복잡한 일을 겪어도 기도로써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삐뚤게 가는 경향이 없지않아 컸다.
서른이 되고 가정이 생기면서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20대때에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면증도 상당했는데, 사실 서른 초반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는다. 조금씩, 미사를 드리면서 기도를 하면서 나아지고 있는 상황. 좋다.
5. 다양한 취미
일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미국에 와서는 게임도 하고, 캠핑도 다니고 요리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고 맛집도 다니고 음악도 하고 새로운 것을 공부해 보는 등 다양한 취미가 생겼다. 스무살때에는 글쎄, 술먹는게 즐기는 것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아, 여행도 다니긴 했구나 🙂
6. 건강에 대한 새로운 시각
스무살때에는 그저 다이어트, 몸만들기에만 신경썼던 건강관리가 서른이 되고, 이전처럼 움직임이 많아지지 않자 유지되지 않는 살로 인해 먹는것에 신경쓰게 되고, 운동을 정말 시간을 내서 하지 않으면 그 즉시 몸무게가 올라가게 되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실 학교 걸어다니고 회사 걸어다니고 그럴 때가 좋았는데.. 아쉽게도 미국 생활은 대도시가 아닌 이상 이를 허락하지는 않다. 위험하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내서, 의식적으로 건강관리에 시간을 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스무살때에는 의식을 그다지 하지 않고 있어서 한달 간의 장기적인 여행 등에서는 풀어짐이 허다했는데, 이제는 매순간 의식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7. 평생을 사랑할 사람
사실 남자는 술, 여자, 도박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고 한다. 나는 도박은 안하고 관심도 없다. 술은 아직까지도 전쟁중이지만, 적어도 여자문제에 있어서는 스무살 초반부터 빨리 잡지 않으면 평생의 동반자도 못만날 뿐더러,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할 것임을 직감했다. 운이 좋게도, 스무살 중반쯤에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지금도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아직도 짝을 못찾거나 만족하지 못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 그리고 후회가 단 1%도 없는, 어찌보면 얼마나 복받았는지.
8. 필력
이건 또다른 20대에 얻은 결과물인데, 책을 집필하고 이 블로그 뿐만 아니라 운영중인 세 군대의 블로그에서 글을 쓰다보니 필력이 생겼다. 쉬지 않고 수 많은 글을 써내려 갈 수 있고, 예전부터 계속해서 끌로이의 검토 덕분에 맞춤법이라던가, 문장을 짧게 만드는 연습을 해왔었다. 때문에 지금은 필력이 꽤나 좋아졌고, 글을 씀에 있어서 보다 간결하게, 함축적으로 내가 글을 쓰는 의도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9. 영어
20대에 꽤나 발목을 잡던 영어. 토플 토익 모두 최하점에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내가 20대 중반부터 주말마다, 복학하고 나서는 매일 새벽에 회화반을 듣고, 새벽반 토플 토익을 들으면서 3년의 노력 끝에 어느정도 영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도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 있다. 어느정도 듣기와 일상 회화, 업무 회화, 그리고 쓰기가 잘 되는 지금 시점에서 영어는 어떻게 보면 20대에 키워둔 중요한 것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10. 가족
20대에는 그저 내 갈길만 보다가 가족을 많이 등한시했다. 부모님과 일주일에 한두번 외에는 식사를 같이 안했고, 스무살 초반에는 사업한답시고 집을 몇년간 나와있었다. 술약속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가족과의 대화가 적었다. 그나마 챙기는 것은 부모님의 생신이나 어버이날 정도.
하지만 결혼을 하고, 미국에 떨어져 살면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생각이 깊어갔고, 지금은 한국에 가면 되도록이면 함께 있으려고 노력한다. 식사부터 해서 여행까지 모든 것을. 올해 초에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딸기를 보내고 나서, 가족이 있을때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더 그렇다. 사랑을 더 드리고 싶고 기도를 더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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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때 이룬게, 혹은 서른에 바뀐것이 이거밖에 없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스무살에 그 시행착오가 쌓여서 서른이 이뤄진 느낌이다. 그래,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 다만 정리가 안되었을 뿐이었다. 가끔 나도, 지금의 잘 안되는 것들이 있어도 내가 노력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게 나를 이끌어 주는 원동력일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