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게 있어서 오랜 시간을 가장 크게 고민하게 만든 것이 바로 술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술자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고, 집에서 술먹는 것은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결혼하고 나면서 집에 있는 횟수도 늘어나고, 외식하며, 집에서 식사하며 하루 이틀 반주하던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자리하고 나서 정말이지, 꽤나 오랜 시간을 나는 술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예전에 흡연했을 때의 생각도 간혹 난다. 아니,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담배가 술보다 좀더 큰 중독성을 일으키긴 하지만, 내게 있어선 술도 중독이나 마찬가지다.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어쨌든 담배피던 시절에는 처음에는 마냥 그 느낌이 신기해서 피던 것이 어떤 상황과 연결지어서 어느순간부터 스트레스=담배 혹은 식후땡, 모닝담배 등 여러가지 원인을 들여서 담배를 습관화 들였고, 이를 끊기까지 정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결국 끊게 된 원인은 물론 끌로이의 영향도 컸지만 가장 컸던 것은 스트레스가 장기간 없어지고, 회사를 이직하며 담배를 함께 태우는 사람이 없어지자 저절로 담배를 찾지 않게 되고 어느순간 “어, 이러면 끊을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자연스래 없어졌다.
지금 술이 딱 그런 상황이다. 요즘엔 술먹는 상황이 거의 무계획적이고, 생각없이 멍때리고 싶을 때 많이 그런 것 같다. 문제는 계획해둔 것들을 미루면서까지 술을 찾게되는 것이다. 주말이 그랬다. 하고싶은 것은 엄청 많았는데, 와인 몇 잔에 나는 바로 잠을 청하면서 그 숙취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고 주말을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보냈다. 이는 15년 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내 정말로 크게 잘못된 습관이다.
최근에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의 태반이 외적 요인으로 만들어지는 스트레스의 요인에 대해서는 빠른 전환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술먹으면 절대 이게 안된다. 하나의 화에 꽃히면 거기에 더 집중하게 되지, 빠르게 전환해서 즐거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못한다. 이게 특히 혼술에서는 더 그렇다. 화가 자꾸만 나고, (지금은 안그렇지만) 예전엔 SNS에 막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 나랑 별로 관계도 없는 것들에 대해 이상한 화남의 글을 쓰곤 했다. 물론 다음날 일어나서는 부끄러움에 허둥지둥 지우기 바쁘지만.
이건 사실 예전 술자리때도 그랬다. 물론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지만, 어느 정도이상이 되면 난 대부분 술자리가 좋게 끝나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싸움까지 난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말실수를 하곤 했다. 그래서 틀어진 경우도 적잖았다. 어떤 후배는 “술먹어서 개가 되었으면 닥치고 있으라” 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했다.
어쩌면 주도를 잘못배운 것도 있을 것 같다. 무조건 원샷, 잘먹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인식. 공대생이라 그런지 이건 정말 잘못배운 것이긴 하다. 아직도 사실은 술이 무슨맛으로 먹는지 모른다. 미국에 와서는 IPA에 빠져있었는데, 정확히 말해서는 8도 이상의 고알콜 함량의 그것이 주는 ‘홉’의 맛, 그것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먹으면 예전엔 “빨리” 먹어서 취했지만 요새는 독한 것을 먹어서 취했다. 쓰고, 사실 시원한 것 빼면 맛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 먹어댔을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도 나는 독한 IPA를 계속해서 찾고 있을까.
결국 술에 대한 인식은 내 생각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한가득 했던 올해 상반기와 미국에 와서 지난 4년동안,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사색하는 시간이 깊어져만 갈수록 술에 대한 의존은 커져만 갔다. 아니, 정확히는 술을 생각하면서 곁들이는 안주들이 생각났다. 그게 발단이 되어 요즘에도 요리를 자주하곤 하지만. 어쨌든 자주 자제력을 잃은 술에 대한 생각이 최근들어서 나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의 결과, 오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술에 대한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한두시간 정도 글을 쓰고 나서 마음은 다행히 진정될 수 있었다. 사실 눈 딱 감고 그 순간만 버티면 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긴 한데, 오늘같은 상황은 뭔가 몸도 피곤하기도 하고 잠도 잘 오지 않아서 냉장고 속에 맥주가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나를 괴롭혔다. 꿈에서까지 맥주를 마시는 꿈을 꿨으니 이쯤되면 중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한 것은 조금의 변화였다. 스스로를 바꿔야 하고,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 외에는 사실 답도 없었다.
스트레스를 빠르게 전환하듯, 술과 연관된 것들을 많이들 없애고 싶다. 더는 술때문에 스트레스 받고싶지도 않다. 때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적어도 지금처럼, 해야 할 일이 많을때에는. 이뤄야 할 것이 많을 때에는 말이다. 2019년은 아직 2개월 가량 남았지만, 결국 난 좀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